요즘은 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 기간입니다. 20대 시절 자원봉사자로 참여하면서 처음 알게 된 축제인데, 그때부터 매년 이맘때면 다양한 연극과 무대를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가 생깁니다.
오늘은 올해 예술제의 개막작인 티아고 호드리게즈 연출의 연극 《사이의 거리》를 보고 왔습니다. 2077년을 배경으로, 화성으로 떠난 딸과 지구에 남은 아버지가 서로 소통하며 겪는 이야기입니다. 서로 다른 행성에 살게 된 두 사람의 관계를 통해 세대 간의 간극과 서로 다른 미래를 바라보는 시선을 다룹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건 무대 연출이었습니다. 두 인물이 멀리 떨어져 있는 상황을 표현하는 방식도 흥미로웠지만, 무대가 빙빙 회전하며 시간의 흐름과 속도를 표현하는 장면이 좋았습니다. 무대가 빠르게 돌아가는 동안 인물들이 보내는 시간과 그 사이의 거리가 감각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이 작품을 연출한 티아고 호드리게즈는 프랑스 아비뇽 페스티벌(Festival d’Avignon)의 예술감독이기도 합니다. 그가 아비뇽 페스티벌의 예술감독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니, 자연스럽게 10년 전 그곳을 여행했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10년 전, 제 인생 첫 해외여행지가 바로 프랑스 아비뇽이었습니다.
어느 날 TV 프로그램 《걸어서 세계속으로》에서 아비뇽 축제의 활기찬 풍경을 보고 한눈에 반한 후, ‘언젠가 꼭 저곳에 가겠다’고 마음먹었고, 결국 그 결심을 실행에 옮겼습니다. 여행 중에는 남프랑스 레 보 드 프로방스(Les Baux-de-Provence)에 있는 빛의 채석장(Carrières des Lumières)에도 방문했습니다.
지금은 대형 미디어 아트 전시를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지만, 당시 제게는 거대한 석회암 채석장의 벽면을 가득 채운 빛과 영상이 무척 낯설고 경이로운 경험이었습니다. 화면으로만 보던 그 공간 한가운데 제가 실제로 서 있다는 사실이 한동안 실감 나지 않았습니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그곳의 서늘한 공기와 눈앞을 가득 채우던 빛의 잔상이 생생합니다.

당시 아비뇽을 떠나며 스스로에게 약속했죠.
“10년에 한 번씩은 꼭 다시 와야지.”
아쉽게도 약속한 시기에 맞춰 돌아가지는 못했지만, 언제가는 아비뇽을 다시 찾아가 보려고 합니다. 10년 전 처음 그곳을 꿈꾸게 했던 축제의 풍경을, 이제는 조금 달라진 시선으로 마주하고 싶습니다. 같은 장소를 다시 찾는 일이지만, 그곳을 바라보는 마음까지 예전과 같지 않을 테니까요.
10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 사이, 그리고 지구와 화성 사이처럼 아직 멀리 놓여 있는 무언가가 있으신가요?
이번 주말에는 오래전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약속 하나를 떠올려 봐도 좋겠습니다.

🎙️부기장의 한마디
연극 ‘사이의 거리’를 보다가 저는 많이 울었습니다.
닿기 어려운 먼 곳으로 떠나, 스스로 기억마저 지워가는 딸. 그리고 그걸 바라봐야 하는 아빠. 그렇게 조금씩 끊어져 가는 부녀의 대화가 극을 이끕니다. 그 대화 사이에서 아빠는 수많은 사진을 늘어놓고, 어떻게든 사랑하는 딸의 기억을 붙잡고, 되살리려고 애쓰는데요. 그런 아빠의 모습을 보고 어찌 울지 않을 수 있을까요? 어찌 함께 아파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저는 ‘어쩔 수가 없다’는 말을 좋아합니다. 영화나 연극에서 인물의 딜레마는 관객으로 하여금 마치 자신이 그 사람인 것처럼 느끼게 만드는데요. 그때 떠오르는 말이 바로 ‘어쩔 수가 없다’입니다. 누구도 쉽게 틀렸다고 말할 수 없고, 누구의 선택도 이해하지 못할 이유가 없는데, 결국 서로가 서로에게 비극이 되고 맙니다. 모두가 이해되는 말을 하고 있는데, 왜 우리는 스스로 비극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는 걸까요.
오늘은 정말 어쩔 수 없이, 목 놓아 울었습니다.
🔭 보란더의 시선
저는 가끔 연극을 볼 때 이런 표현을 쓰곤 합니다.
“오늘 연극은 나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극에 완전히 몰입하지 못한 채, 자꾸만 밀려오는 졸음을 온 힘으로 이겨내야 하는 순간을 비유하는 말인데요. 사실 이번 연극도 초반에는 꽤나 치열하게 나 자신과의 싸움을 치러야 했습니다. 외국어로 진행되는 작품이라 자막을 계속 따라가야 했고, 대사가 쉴 틈 없이 이어져 집중력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았거든요.
부기장님은 연극을 보며 목 놓아 울었다고 하는데, 저는 끝내 숙면(?)에 빠지지 않고 무사히 관람을 마쳤다는 데 의의를 두기로 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끝까지 자리를 지킨 제 자신에게 소소한 박수를 보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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