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기 싫은 일을 꾸역꾸역 하다 보면, 문득 누군가가 “잘하고 있다”는 말 한마디 해주길 바라게 됩니다.
지난주부터 출산휴가 대무를 맡으면서 제 담당 업무 외에도 팀의 크고 작은 이슈까지 챙겨야 하니, 요즘은 출근길 발걸음이 천근만근입니다. ‘내가 이 일을 왜 해야 하나’ 싶은 생각도 하루에 몇 번씩 되뇌이죠.
이쯤 되면 누군가 옆에서 잘하고 있다고 한마디 해줄 법도 한데, 지금 제 연차쯤 되면 그런 말을 듣기가 힘듭니다. 그만큼은 해내야 하는 몫인 거겠죠.

일하면서 유독 화가 나는 순간도 있습니다. 누군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너무나 당당하게 해서, 오히려 제가 잘못 알고 있는 건가 싶은 기분이 드는 날입니다. 그런 날이면 퇴근 후에도 기분이 쉽게 풀리지 않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상대가 던진 말 자체보다 그 자리에서 제대로 반박하지 못했던 제 자신에게 더 화가 날 때가 많습니다.
‘그때 이렇게 말했어야 했는데. 왜 말하지 못했을까.’ 이미 지나간 일인데도 혼자 머릿속으로 온갖 말을 되짚어 봅니다. 퇴근 후까지 이러고 있으니 피곤할 수밖에요.
거기에 요즘은 AI를 업무에 쓰면서 느끼는 답답함까지 더해집니다. 나름대로 고민해서 질문을 보내면, 상대는 AI로 딸깍 만들어낸 한 바닥 분량의 답변을 1초 만에 보내오곤 합니다. 글은 그럴듯한데 정작 궁금했던 핵심은 빠져 있고, 결국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일도 진행되지 않습니다. 일을 빠르게 하려고 AI를 쓰는 건지, 일을 하나 더 만드는 건지 모를 지경이죠.
이런저런 일에 치이다 보니 지금 필요한 건 완벽한 해결책이 아니라, 누군가 건네는 “고생했어요”라는 말 한마디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부터 함께 일하는 동료들에게 그런 말을 건네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저도 그런 말이 듣고 싶으니까요!
이번 뉴스레터는 이렇게 훈훈하게 마무리해 봤지만, 사실 그저 일에 치여 혼자 속을 끓이다 쏟아낸 긴 푸념 글이 되었네요.
요즘 저는 이렇게 매일 아침 제 멱살을 잡고 출근해서, 스스로의 멱살을 잡고 일하는 중입니다.
요즘 여러분에게도 누군가의 한마디가 필요한 순간이 있나요?

🎙️부기장의 한마디
말씀 듣고 보니 과거에 비해 직장인의 애환이 많이 바뀐 것 같습니다. 사람이 스트레스인 건 똑같지만 그럴듯하게 AI로 포장된 논리를 든 사람은 스트레스를 2배 3배 가중시키죠. 정보량은 훨씬 늘어나고, 복잡하게 만든 다음, 자기는 자기 일이 아닌 것처럼 쏙 빠져버리거든요.
그뿐인가요. 요즘은 그렇다고 이렇게 짜증 나는 상황을 함께 들어주고 풀어주는 동료라는 존재도 없고, 저녁 회식으로 도망치듯 내일을 도모하는 일도 생기지 않습니다. 사람 사이에 생길 수 있는 부정적 마찰이 있다면 모두 없애는 게 지금의 시대정신이니까요.
AI로 직장이라는 게 많이 사라질 수 있다는데 이게 진정한 직장의 아포칼립스 아닌가 해요.
그래도 여름에 에어컨 나오고, 겨울에 히터 나오고, 한 짬에 커피라도 할 수 있으니 그래도 오늘만큼은 고맙다고 생각하려고 합니다. 고맙다 이 새끼야.
🔭 보란더의 시선
그 고마운 새끼 덕분에 이번주는 정신이 없어서 요가 수업을 토요일이 되어서야 다녀올 수 있었네요.
현실에서 잠시 벗어나 온전히 몸에 집중하는 이런 시간이 주중에도 필요했는데, 이번주는 일에 너무 매몰되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요가를 하고, 연극 《문라이트 오키나와》도 보고 왔습니다. 20년 전 오키나와에서 실종된 연인이 여전히 살아 있을 미래를 상상하며 기다리는 극작가의 이야기입니다. 연극을 보는 동안은 물론, 공연이 끝난 지금도 현실을 한 걸음 떨어져 보게 됩니다. 머릿속을 맴돌며 저를 괴롭히던 일들도 조금은 멀어지는 것 같네요.
월요일이 되면 또다시 괴로워지겠지만, 그래도 주말만큼은 일 말고 다른 것들로 채워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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