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수수수양수수"
요즘은 수우미양가를 매기지 않지만, 제가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에는 학생별 학업성취도를 평가하는 방법이었어요. 대학교 성적의 ABCDE처럼 과목별 성적을 다섯 개의 등급으로 나눈 방식이죠. 다른 과목 성적은 우수했지만 항상 미나 양을 받는 과목이 딱 하나 있었어요. 선생님이 글로 써주는 평가에도 "성적은 우수하지만 OO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글이 많았죠. 부모님도 저에게 "공부는 잘하는데 이걸 못해서~"라며 아쉬워하셨어요.
성적표 단골 메뉴로 항상 미진하고 부족한 과목은 바로 '체육'입니다. 당시 대학 입시를 위해 체력장을 통과해야 했는데 힘들게 커트라인을 넘긴 기억이 납니다. 성인이 된 지금의 저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운동감각이 아주 떨어지는 자전거 분야라면 모를까 그 외에는 정말 아니거든요.
아이들이 어렸을 때 저는 만능 체육인이었습니다. 엄마의 힘이었을까요? 인라인도 같이 타고, 겨울에는 스케이트, 스키, 보드를 함께 즐겼습니다. 탁구 파트너도 되어 줬고, 농구는 제가 제일 잘했어요. 아들을 위해 축구 골키퍼까지 했답니다. 산책도 즐겨서 많이 걸을 땐 2만 보 가까이 걷기도 합니다.
특히 최근엔 헬스의 재미에 빠졌지요. 6개월 이상 헬스장을 다니며 별별 일을 다 겪었어요. 어느 날 운동과 샤워를 마치고 나오려는데 신데렐라도 아닌데 신발이 사라진 겁니다. 그리 좋은 것도 아닌 허름한 신발을 도대체 누가, 왜 신고 간 걸까요? 손님이 붐비는 맛집도 아닌데 말이죠. 할 수 없이 코치님께 말하고 실내 운동화를 신고 집에 갔는데요. 다음날 다행히도 찾았습니다. 다른 고객이 자기 실내 운동화인 줄 알고 가져갔다가 아닌 걸 알아차리고 반납했더군요. 그 이후로는 꼭꼭 신발을 락카에 넣어 보관합니다.
헬스의 즐거움 중 하나는 규칙적인 운동을 하며 즐기는 고요함과 사색입니다. 수다를 떨며 하는 운동은 아니기에 정해둔 운동 루틴에 따라 땀을 쫙 뺀 후 샤워를 즐기는데요. 일과를 복기하고 정리하는 시간이라 좋더군요. 헬스장이나 샤워실에서 시끄럽게 통화를 하는 사람이 가끔 원망스럽습니다.
집중해서 런닝머신을 달리는데 옆 사람이 스피커폰으로 통화를 하더라고요. 이어폰으로 통화해도 거슬리는데 스피커폰이라니요.
"오늘은 뭘 하고 놀았어?"
빨리 끊으면 좋으련만 어린 아들과 다정하게 통화하더군요. 꼬마 아이의 목소리는 얼마나 귀엽던지. 찌푸림과 미소가 교차했어요. 아무리 그래도 헬스장에서 조용히 이용하면 좋겠습니다.
황당한 사건은 샤워장에서 종종 일어납니다. 자기 집 욕실이라고 생각했는지 영어방송을 스피커로 크게 틀고 샤워를 하더라고요. 샤워하는 순간까지 놓치지 않고 영어 공부하려는 열정은 높이 사지만 그건 좀 아니지 않나요? 뭐라 말도 못하고 묵묵히 같이 방송을 들었습니다.
누군가가 샤워 도중에 자기 남자친구와 스피커폰으로 용감하게 통화하더군요. 뭔가 남자친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곳저곳에 전화를 돌리는 느낌이었어요. 그날은 샤워실에 이용자가 많았거든요. 누가 좀 말려주면 좋겠다고 생각한 순간 코치님이 달려와서 샤워룸에 노크했어요.
"손님, 죄송한데 다른 분들이 조용히 해달라고 해서요."
저 같으면 부끄러워 당장 끊고 사과했을 텐데요. 당당하게 코치님께 수건 하나 더 가져다 달라는 뻔뻔스러운 요구를 하더군요. 정말 대단한 분이지요.
10회 PT를 받으며 친해진 코치님은 잠시 쉰다며 헬스장을 그만뒀어요. 운동하다가 다른 코치님께 모르는 걸 물어보기도 어색하지만 그래도 혼자 즐겁게 다닙니다. 헬스장에 다니는 게 그닥 재미없을 것 같다고들 하는데요. 루틴을 정하고, 사색하며, 땀을 흘리는 과정이 딱 제 스타일이더라고요.
무엇보다 요즘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하늘빛을 볼 수 있어서입니다. 저녁 7시 19분 해 질 녘 하늘을 본 적이 있나요? 어두워지기 직전 파랑이 절정에 달하는 순간, 잠시 하늘은 젖 먹던 힘까지 동원해 강력한 빛을 발합니다. 그 순간이 좋더라고요. 창가로 전해지는 하늘빛을 보며 운동하는 제 모습이 좀 멋있어 보여서요.
지금의 체육 성적을 매긴다면 수나 우 정도는 아닐까요? 다시 초등학생으로 돌아가서 성적을 고쳐 달라고 우기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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