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과삶] 하루에 대장내시경 2번이나?

공감이 필요했습니다

2024.06.01 | 조회 17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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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과삶의 주간 성찰

일하고 배우고 느낀 성찰을 나눕니다

건강검진 매년 받으세요? 40살이 넘으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두려워 건강검진을 하지 않는다는 분도 주변에 꽤 있더군요. 저는 착실히 검진을 받지만 위내시경은 수년째 연기하고, 대장내시경은 한 번도 하지 않았습니다. 핑계이긴 한데요. 수면내시경에 대한 두려움과 한 번에 3L의 물을 마시는 걸 상상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무슨 이유였을까요? 올해 큰 결심을 했습니다. 용기를 내어 위내시경과 함께 생애 최초 대장내시경을 신청한 거죠. 대장내시경 검사는 대기가 많아 2달을 기다려 드디어 검사받았습니다. 검사 전날 3L의 물만 마시면 되는 줄 알았는데 검사 3일 전부터 먹지 말아야 할 음식이 많더군요. 제가 좋아하는 채소, 과일은 물론이고 잡곡, 해조류, 김치류도 먹으면 안 된다고 했어요. 거의 죽이나 카스테라같이 부드러운 것만 먹어야 했어요. 검사 2일 전에 저녁 약속이 있어 다들 맛난 음식 먹는데 저는 감자그라탕만 뒤적거렸습니다.

하루 전날 오후 6시, 오후 8시, 그리고 검사일 새벽 5시에 장 정결제와 물 1L씩을 마셔야 했는데요. 더운 날 갈증을 해소하던 생수가 이렇게나 느끼하고 토나오는 맛이었나요? 매우 깨끗하고 깔끔함이라는 정결의 의미에 걸맞게 장운동이 활발히 일어났습니다. 화장실을 수없이 들락거리니 검사 전일 오후부터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한편으로는 모든 걸 비우니 나쁘지 않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검사 당일 새벽 5시에 장 정결제와 물 1L를 마시니 잠도 오지 않아 건강검진센터에 일찍 갔습니다. 한참 동 기다려 드디어 수면내시경을 시작했습니다. 입에 뭔가를 막고 수면제를 놓는 기억이 났는데 끝났다고 하더군요. 이렇게 간단한 걸 피하고 미룬 게 조금 부끄러웠습니다. 그런데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위내시경에서 뭔가를 떼어냈고 잘 마무리했는데, 대장 용종은 1cm여서 검진센터에서는 처리 못 하니 다른 병원에 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때까지도 상황판단이 안 되어 '그런가 보다'하고 다른 검사를 마쳤습니다. ' 힘든 공복과 장 정결을 또 해야 하나?' 정도의 고민만 있었죠.

기다리는 동안 대장 용종으로 검색해 보니 "보통 0.5cm 이하의 작은 용종이 1cm 크기의 용종이 되는데 2~3년, 1cm 이상의 용종에서 대장암으로 진행하는데 2~5년이 걸린다고 보고되어 있다."라고 나오는 게 아닙니까? 살짝 놀란 상황에 검진센터와 연계된 병원에서는 당일 용종 제거가 어렵다며 다른 병원을 소개해 줬습니다. 다행히 전화하니 바로 용종 제거가 가능하다고 해서 해당 병원으로 갔습니다. 다시 수면내시경을 하는 게 황당했지만, 공복과 장 정결 안 하는 것만으로 다행이다 싶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수면제 투입과 동시에 내시경은 끝났고 용종도 제거되었습니다. 계속 "보호자분 안 오셨나요?"라고 질문을 받았는데 갑작스레 이뤄진 일이라 경황도 없었습니다.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새벽부터 수면내시경을 2번이나 하는 해프닝을 거치고 터벅터벅 집으로 왔습니다. '하필 나에게? 왜'라는 의문이 드는 순간 '이번에 대장 내시경 안 했으면 어쩔 뻔?'이라는 생각이 저를 설득하고 합리화시키더군요. '다시 물 3L 안 마셔도 되는 게 어디야? 빨리 잘 제거했다. 다행이야.' 이런 내면의 목소리가 불안해하는 저에게 빈틈도 주지 않고 달랬습니다. 

얼떨결에 시간이 지났습니다. 2주 동안 과로, 운동, 사우나를 피하라고 해서 헬스도 수영도 다 중단하고 쉬었습니다. 뭔가 불행 중 다행인 것 같은데 마음이 편하지 않았습니다. 부정적인 생각이 들려고 하면 충분히 시간을 가지고 그 감정에 빠져야 하는데 말이죠. 너무 깊게 빠지면 안 되지만, 그런 기분을 느끼기도 전에 긍정의 힘으로 자기최면을 거는 저를 바라보게 됩니다. '이건 아닌데...'라는 생각이 조금 들었습니다. 꼭 이번만이 아니라 늘, 습관적으로 안 좋은 일이 생기면 인공지능 챗봇처럼 즉각적으로 긍정적인 면을 찾아 '어쩔'로 부정적인 생각을 틀어 막습니다.

찜찜한 시간을 보내던 중 지난 토요일 심리상담을 하며 알아차렸습니다. 저는 애도의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기분 나쁘면 부정적인 느낌을 충분히 만끽해야 했습니다. 부정적인 생각을 몰아내기보다는 머무를 공간을 마련해야 했습니다. 불안해하는 감정을 알아차리고 공감했어야죠. 타인하고만 공감하는 게 아니라 자신과의 공감도 필요하고, 애도의 시간도 필요합니다. 긍정적인 생각은 그러고 나서 채우면 됩니다. 서두르지 않아도 되는데 말이죠.

용종제거 후 자극적이지 않은 음식을 먹고, 운동 대신 열심히 걷고 있습니다. 커피를 마시지 않으니 숙면합니다. 매일 2시간에서 5시간 투자한 운동을 하지 않으니 무척 여유롭습니다. 덕분에 책도 많이 읽고요. 주말에 한강역사탐방도 참여하고 평일 저녁에는 선선한 바람을 느끼며 천천히 산책합니다. 이 또한 감사한 시간입니다. 

석촌호수(좌) 석촌동 제3호(중) 노을진 선정릉(우)
석촌호수(좌) 석촌동 제3호(중) 노을진 선정릉(우)

검사 일주일이 지난 이번 화요일에 결과를 통보받았습니다. 선종이 맞긴 하지만 큰 문제는 없다고 합니다. 다만 2년마다 한 번씩 꼭 검사를 받아 경과를 지켜보라고 하네요. 큰 걱정은 하지 않았습니다만, 걱정하고 결과를 물어봐 준 가족에게 감사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건 축복입니다. 건강하게 이 기쁨을 누리며 살아야겠습니다. 그리고 제 감정을 충분히 느끼고, 애도할 시간을 좀 더 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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