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가 가기 전에 레터를 보내고 싶었습니다. 그런 생각을 한 건 12월이라는 시간을 인지하고였습니다. 오랜만에 메일리 페이지에 들어오니 올해 발행한 레터가 단 두 통이더라고요. 시리고 추운 1월의 아침 루틴 이야기와, 옛 사진을 보고 그린 수채화 이야기 두 가지 였습니다. 지난 겨울에 입던 두툼한 패딩을 꺼내 입은지 며칠 되었습니다. 아침 루틴은 그때와 비슷하게 재현되고 있는 중입니다.
어릴땐 해가 바뀔 때마다 '내가 이제 00살이구나!' 하며 호들갑을 떨었지만 무덤덤해진지 오래입니다. 놀라울 게 많은 나이는 아니죠. 처음 피부로 겪은 계엄은 놀랍긴 했습니다. 광장에 모인 사람들의 평화 시위는 더욱 놀라웠고요. 빠르게 상황이 진전되어 연말을 연말 답게 보낼 수 있으니 참 다행입니다. 아직 산 하나 넘은 것뿐이지만요. 계속 두 눈 부릅뜨고 지켜봐야죠.
내 일상이 사치처럼 느껴지는 2주 남짓이었습니다. 그림은 거의 못 그렸고 뉴스와 실시간 라이브 방송들을 보는 시간이 대부분이었습니다. sns에서 접하는 개인들의 이야기는 참 아름답더군요. 그 밤에 거리로 나간 사람들, 선결제, 택시비를 받지 않은 기사분들, 응원봉, 핫팩과 간식 나눔, 시위 뒤 쓰레기 한 점 없는 거리 등 놀라운 악과 그보다 더 강한 선이 공존하는 시간 속에서, 멍했던 정신이 번쩍 뜨이는 것 같았습니다. 날이 서게 살아있는 느낌이었습니다.
몇 년 전에 보았던 영화 1987을 다시 봤습니다. 사복 경찰의 불심건문, 시위 진압대의 곤봉과 최루탄이 아주 일상적으로 그려지는 장면들이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역사책과 드라마, 영화 속에만 있을 것 같았던 풍경이었는데요, 2024년에 그 풍경을 볼 뻔 했다니 아찔합니다.
요며칠 아침에 눈을 뜨면 달리고 있습니다. 몸을 움직이지 않은지 오래라 잠깐 가볍게 뛰는데도 숨이 차오릅니다. 볼에 닿는 공기는 차지만 몸은 금세 후끈해져 겉옷을 벗게 됩니다. 아침 시작을 힘차게 시작하니 이후에도 나도 모르게 긍정 기운이 뿜어져 올라옵니다. 날이 추워지면 더 움츠러들고 무기력해지기 쉬웠는데요, 달리기 시작한 건 아주 좋은 결정이었던 것 같습니다.
불안이 나를 잠식해버려 새벽 4시에 잠이 깨어 이불 속에서 일기 앱에다 나오는 대로 주루룩 글을 써내려갔고, 그것의 연장선에서 달리기로 마음 먹은 것이었습니다. 저녁이 되면 이성이 힘을 잃고 감성이 우세하게 되어 의지가 약해지고 이성적이지 못한 행동을 하는 것. 그것이 체력과 깊은 관련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입니다. 밤에 잠들기 전까지는 늘어지지 않고 말똥말똥한 정신으로 깨어 있는 것이 좋습니다.
좋아하는 일러스트레이터의 온라인 강의도 시작했습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강의 플랫폼 사이트를 방문해보았는데 크리스마스 시즌이라 그런지 한시적으로 $0.99에 강의를 들을 수 있더군요. 짧게 짧게 나누어진 영상 여러 개를 보며 필기도 하고 공유 받은 자료에서 인상깊은 부분을 따로 정리해두기도 하면서 나름 열심입니다. 재미있어요. 여기 저기서 주워 들은 것들 말고는 체계적인 커리큘럼으로 그림을 배워본 적이 없기에, 기초부터 차근차근 가보는 과정이 꽤 마음에 드네요. 다양한 강의들을 들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럼 여기까지 12월의 안부 레터였습니다. 다음에 또 반가운 소식들로 안부 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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