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전 레터를 보냈던 때에 비하면 요즘은 그림을 꽤 열심히 그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다시 아이패드로 디지털 드로잉을 주로 하고 있고, 처음 스케치 할 때에나 연필을 잡습니다. 물감이나 색연필이 종이에 닿는 감각은 언제나 멋지지만 아이패드가 아무래도 자유롭긴 합니다. 처음 본격적으로 그림을 취미로 삼기 시작할 때 아이패드를 이용했다보니 익숙한 것도 있고 무엇보다 수정이 자유롭고 되돌릴 수 있다는 점이 과감하고 다양한 시도를 가능하게 합니다.
다시 디지털에 재미를 붙이게 만든 중요 요인이 유료 브러시였습니다. 디지털의 매끈한 표현이 지나치게 딱딱하게 느껴지는 저로서는 손그림처럼 다채로운 텍스처가 살아있는 브러시를 구매해 사용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실행에 옮겼습니다. 새로운 미술 재료를 사서 배송을 기다릴 때처럼 오랜만에 참 설레더군요.
100가지가 넘는 휘황찬란한 브러시들을 테스트해보는 데에도 시간이 꽤 걸렸고 과정 자체가 즐거웠습니다. 테스트는 테스트일뿐이고 직접 내 그림에 적용해봐야 감이 잡히더군요. 여러 장 그리다보면 곧 선호하는 몇 가지 브러시가 추려집니다.
브러시 만큼이나, 아니 보다 더 그림을 꾸준히 그리는 데에 도움이 된 것이 있습니다. 바로 매일 일지를 기록하는 것입니다. 매주 월요일 아침에 새로운 문서를 하나 생성합니다. 그리고 하루하루 날짜를 쓰고 그날의 작업, 그린 그림과 사용한 브러시, 그린 과정과 결과에 대한 생각을 짧게나마 기록하는 것입니다. 문서의 제목은 ‘Art Journey 00주차‘ 라고 지었습니다. 나의 예술 여정을 주차별로 기록하는 취지입니다만 그림을 안 그린 날은 뭘 하느라 게으름을 피웠는지에 대한 잡담들도 섞여 있습니다. 아침 노트북을 켜자마자 이 문서부터 여는 습관이 들어 그림 작업을 잊지 않고 이어나가는 데에 큰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이번주가 어느덧 14주차 였는데요. 시간이 참 빠름을 실감했습니다.
최근에 ‘꾸준’이라는 여행 유튜브 채널을 알게 되어 예전 영상들까지 몰아보기도 했습니다.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다소 자극적인 썸네일과 상반되는, 소소하고 무해한 영상들인데 왜 시간가는 줄 모르고 집중해 보게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내가 여행해본 도시는 더욱 재밌게 몰입이 되더군요. 내가 걸었던 거리나 식당이 나오지 않을까 기대하게 되기도 하고요.
존댓말로 말하듯이 써내려간 오늘의 레터였습니다. 뭔가 읽는 분들에게 더 다정하게 말 거는 느낌이 들어서 약간 오글거리기도 합니다만 이메일로 발송되는 형식에 좀 더 적합한 것 같기도 합니다. 아마 요즘 무라카미 하루키의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를 읽고 있어서 그 특유의 문체에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언제 다시 딱딱한 독백체로 바뀔지 알 수 없지만 그때에도 부디 어색해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그럼 많이 추워지기 전에 또 뵙기를 바라며, 이만 줄입니다.
소설가는 많은 경우, 자신의 의식 속에 있는 것을 '스토리'라는 형태로 치환해서 표현하려고 합니다. 원래 있었던 형태와 거기서 생겨난 새로운 형태 사이의 '낙차'를 통해서, 그 낙차의 다이너미즘을 사다리처럼 이용해서 뭔가를 말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건 상당히 멀리 에둘러 가는, 손이 많이 가는 작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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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적으로 말하면 '소설가란 불필요한 것을 일부러 필요로 하는 인종'이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소설가의 입장에서 말하자면, 바로 그런 불필요한 면, 멀리 에둘러 가는 점에 진실, 진리가 잔뜩 잠재되어 있다, 라는 것입니다.무라카미 하루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양윤옥 옮김, 현대문학 (2016)
🖌️슬로마인드 작가님의 procreate 브러시 : https://smartstore.naver.com/theslowmind/products/11453397395
🎥꾸준 여행유튜브 채널 : https://www.youtube.com/@kkuj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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