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주간 안녕하셨나요? 장마가 끝났다고 하더니... 주말인 어제, 제가 사는 지역엔 많은 비가 내렸습니다. 아침에도 우산을 쓰고 찝찝한 출근길에 올랐는데요. 점심 먹을 때쯤 비가 그치더니 습해도 너무 습해서 힘든 하루였습니다.
찝찝한 날씨와는 별개로 반가운 소식들이 많이 들려옵니다. 코로나19로 운영이 어려웠던 서울의 밤도깨비야시장이 재개된다고 하는데요. 반짝이는 불빛 사이, 맛있는 냄새 잔뜩 풍겨대는 아기자기한 푸드트럭들의 모습이 절로 상상되네요.
즐거운 곳에 가면 반드시 있는 귀여운 푸드트럭들. 이 푸드트럭들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스낵카'가 오늘 준비한 장아찌 조각입니다. 김이 모락모락 나던 그 시절, 그 스낵카로 함께 떠나볼까요?
건설노동자들의 구세주, 스낵카🚌
한국의 푸드트럭, 스낵카의 역사는 1970년대 말부터 시작됩니다. 주로 폐차된 버스를 개조한 식당이었는데요. 이 버스는 재개발이 한창이던 때, 건설노동자들의 열악한 식사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동식 분식점이었다고 합니다. 정부 주도의 개발이 한창 이어지던 만큼, 정부에서 버스를 개조해 식당 영업을 하는 것을 허가했다고 해요. 건설노동자들을 위해 만들어진 간이식당인 만큼, 공사장 인근에서 자주 발견이 되었습니다.
'분식집'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취급하는 음식들도 라면, 김밥, 우동 등 우리가 김밥천국에서 쉽게 접할 만한 메뉴들을 판매했습니다. 판매하는 메뉴들은 비슷했지만 어떤 버스들은 쉽게 견인할 수 있도록 일부를 개조하는 등 독특한 외관으로 개성을 뽐내기도 했습니다.
70년대 재개발의 역사에 배경으로 함께했던 원조 푸드트럭은 80년대 스포츠 전성시대에 또 한 번 그 존재감을 드러냅니다. 이전까지 폐차를 개조하여 만들었던 푸드트럭은 이 시기를 계기로 서울시의 도움을 등에 업고 업그레이드됩니다. 서울시는 무슨 생각으로 스낵카의 발전에 힘을 실어주었을까요? 큰 스포츠 행사가 있을 때 이동식당을 쉽게 이용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 신형 스낵카 점주들은 평소엔 서울 곳곳에서 장사를 이어가다가 전국체전과 같은 행사가 열릴 땐 그곳으로 가 영업을 이어 나가야 했습니다.
허울뿐인 '서울미래유산' : 굿바이 스낵카
70, 80년대 발전의 순간으로 여지없이 이동했던 스낵카는 90년대를 지나며 대부분 그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그래서 서울 도심 일대에서 우직하게 수 십년 간 한 끼 식사를 책임지던 영동스낵카와 콜롬버스 스낵카는 더욱 귀했습니다. 서울시에서도 그 귀함을 인정해 2015년 두 스넥카 모두를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했습니다. '서울미래유산' 100년 뒤의 보물이 될 만한 가치가 있는 유산. 후손들에게 남겨두고 보여줄 만큼 그 가치를 인정한다는 말, 아니었나요?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한 지 10년도 지나지 않은 지금, 흔치 않아 귀했던 그 스낵카들은 이제 거기 없습니다.
서울시 근처에서 사람들의 추억을 책임지던 콜롬버스 스낵카는 신림 경전철 공사로 인해 퇴거 통보를 받았습니다. 오랜 역사가 있는 스낵카를 계속해서 경영하고자 가치를 인정했던 서울시 등에 호소하였으나 돌아오는 대답은 방법이 없다는 말뿐이었습니다. 결국 32년을 이어온 유산은 미래유산에 등재된 지 고작 2년 후 고철값 40만 원이라는 허탈한 결과만을 남긴 채 폐차장에서 끝이 났습니다.
1985년부터 시작해 무려 48년의 세월 배고픈 사람들의 끼니를 해결해주었던 영동스낵카 역시 사정은 다르지 않았습니다. '100년 뒤 보물'로 인정받은 스낵카의 보존 가치를 무시할 수 없었던 박윤규 사장님은 긴 세월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스낵카를 서울시에 기증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습니다. 그것도 무상으로. 어렵게 복원작업도 마쳤습니다. 하지만... 100년이 아직 지나지 않아서 그런 걸까요? 서울시가 미래유산으로 지정했던 그 스낵카는 현재 애물단지가 되어버렸습니다.
이유는 마땅한 활용방안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한 달간 본래의 모습으로 복원을 마쳤건만 서울시는 기증 절차를 미루었습니다. 앞서 기나긴 역사를 뒤로하고 40만원에 폐차된 콜롬버스 스낵카를 보며 영동스낵카 사장님은 기증을 결심했다고 합니다. 미래의 사람들이 그 시절의 스낵카를 기억할 수 있도록 하려고요. 그 작은 바람마저 이뤄줄 수 없는, 그토록 가벼운 영광이 서울미래유산인가요.
영감의 원천, 고마운 석수 스낵카🚎
'스낵카'라는 주제로 장아찌를 담글 수 있어 기쁩니다. 이 주제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한 가지예요. 제가 자주 가는 석수역 앞에 감사하게 아직도 건재한 스낵카가 있거든요. 바쁜 출퇴근 길에 지나기에 아쉽지만, 아직 한 번도 국수 한 끼 먹어본 적이 없어요. 하지만 늘 오가며 석수역에 묻어나는 세월을 가늠하게 해주는 1등 공신입니다.
카드는 받지 않고 현금만 받는다고 합니다. 모든 스낵카들이 그렇듯 분식집에 팔 법한 음식들이 잔뜩 있어요. 비가 오는 날, 이곳에서 우동 한 그릇을 먹는다면 너무 낭만적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사라지기 전에 가봐야겠어요' 내지는 '사라지기 전에 방문해보세요'라고 말해야 할 것만 같은 현실이 속상합니다. 아무튼, 저도 꼭 가볼게요. 여러분도 지금이 아니면 언제 갈 수 있을지 모를 낡은 공간에 방문하는 것에 망설임 없으시길 바라요!
오늘은 그 시절 그 사람들의 한 끼 식사를 책임졌던 스낵카에 관해 이야기해보았습니다. 이건 다른 얘기지만 제가 사는 동네는 좀 촌스럽습니다. 촌스러운 글자로 적힌 대문짝만한 '군자수퍼' 간판과 언제 세워졌나 궁금한 세탁소와 미용실이 많아요. 낡은 석수역이 어색함 없이 잘 어울립니다. 오래됐고 낡았어요.
갓 태어나서 제맛을 낼 수 있는 게 과연 세상에 있을까요? 모든 '그것'들은 '그것'이 되기 위한 시간을 수반합니다. 그런데 세상은 갈수록 '그것'과 '이것'을 다르게 하는, 차이점이 생겨나는 틈을 허용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생긴대로 살아남을 수 있는 개성 있는 도시를, 골목을, 관계를 간절히 바라봅니다.
흩어지는 '그것'들을 포착해서 다음 주에도 장아찌 만들어올게요.
개성 강한 경험들로 가득한 한 주를 보내고 계세요!
댓글 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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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hyecute
안녕하세요. 덕분에 스낵카의 역사에 대해 자세히 알 수있어서 너무 흥미로운 글 입니다. 혹시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콜롬버스 스낵카 사진 출처를 기재하고 사용해도 괜찮을까요?
낭만 장아찌 주문배송 (77)
안녕하세요. 죄송하지만, 콜롬버스 스넥카 사진의 출처는 제가 아니라 [한국일보]입니다. 확인하실 수 있는 출처도 함께 공유드립니다.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201909041507099965 출처를 기재하신다면 '한국일보'로 작성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많은 분들이 구독하는 뉴스레터가 아니었던 터라, 저작권에 대해 깊은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이 오해를 만든듯 하네요. 댓글보고 매우 부끄러웠어요. 검색을 통해서도 유입되는 분들이 계시다는 걸 덕분에 배웁니다. 앞으로 게시하는 글들은 출처 표기를 더욱 명확히 하여, 확인하시는 분들이 오해없도록 하겠습니다! 관심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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