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의 독일에서 살게 될 줄은

예상치 못한 변수, 온도 차이_독일에서 살게 될 줄은_메이

2024.04.24 | 조회 9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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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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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 온 지 3년차가 되어도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는 것들이 있다. 실내에 있어도 너무 춥다는 것이다. 특히 집 안에서도 옷을 몇 겹씩 껴입고 손끝이 시려서 라디에이터 근처에서 몸을 따뜻하게 데워야 할 때면 한국 생각이 나곤 했다. 아무리 추운 한파가 와도 집에 오면 뜨끈한 보일러로 달궈진 바닥에 등을 대고 누우면 온몸이 사르르 녹는 그 한국 특유의 아늑함이 없다보니 날이 추워지면 영 집이 집 같지 않고 편안하지 않았다. 난방비는 한국에 비해 무섭게 높아서 차마 실내 온도를 한국처럼 높일수도 없고, 라디에이터 특유의 답답한 공기에 비해 따뜻함은 덜해서 그냥 옷을 따뜻하게 입고 따뜻한 음식을 먹으며 추운 날들을 겨우 버티곤 한다.

대부분의 독일 집은 일부 신축 건물을 제외하고는 바닥 난방이 되어있지 않고, 지어진 지 오래된 집들이 많아 단열도 영 안 되는 곳이 많다. 또한 원래도 난방비가 비싼데다가 러시아 전쟁으로 인해 가스 공급이 끊기면서 폭발적으로 가격이 올랐고, 심지어는 흔치 않은 강추위까지 더해져서 재작년과 작년은 꽤 힘든 겨울을 보냈다. 독일 날씨는 여름을 제외한 나머지 계절이 대체로 춥고 흐린 편이라 두터운 겨울 자켓을 일년에 7-8개월씩 입고 살다보니 늘 추운 곳이라는 인상이 강하다.

출처: 셔터스톡
출처: 셔터스톡

그래서인지 작년 말에 한국을 방문하면서 유독 들떴다. 얼마만에 겨울을 한국에서 보내는 것인지. 비록 바깥 날씨는 독일에 비할 수 없이 무시무시한 한파가 몰아치겠지만, 실내로만 들어가면 뜨끈뜨끈한 난방 덕분에 겨울에도 아이스 커피를 마시는 사치를 부릴 수 있지 않은가. 30년을 넘게 살아온 내 고향에서 뜨끈한 겨울을 보내고 오면 어쩐지 독일 생활의 한기가 조금은 가실 것 같다는 기대도 했다. 하지만 웬걸, 도착하자마자 발바닥까지 후끈해지는 보일러 난방이 생각보다 유쾌하지 않았다. 그새 추운 공기에 익숙해진 걸까. 오래 그리던 따뜻한 겨울인데 도착한 지 하루만에 보일러 온도를 낮추고 있었다. 어딜가나 많은 사람들이 실내에서는 패딩을 벗고 얇은 옷들을 입고 있었고, 반팔 티셔츠 한 장만 입고 있는 젊은 사람들도 꽤 보였다. 독일에서 산 두꺼운 니트를 겹겹이 껴입었던 나는 백화점이나 카페를 가면 화장실에 가서 내복과 니트를 여러벌 벗기 바빴다. 독일에서는 춥다고 힘들어 해놓고는 이제와서 더워서 힘들다는 스스로가 어이없고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처음 독일에서 겨울을 맞을 때, 당황스럽도록 추운 실내 온도에 만나는 독일인 친구들마다 하소연을 한 적이 있다. “너는 이 추위를 어떻게 견디니?”라고 물으면 그들은 수십년 간의 추위를 견딘 노하우를 들려주곤 했다. 집보다 사무실이 더 추워서 옷을 7겹을 입고 갔는데, 자기 동료는 8겹을 입었다며 누가 더 양파같은지 대결했다는 농담이나, 난방비가 아까우면 헬스장에 가서 땀을 내고 공용 샤워실에서 따뜻하게 샤워하라는 조언도 들었다. 오히려 너무 더우면 건강에 좋지 않다며 일부러 창문을 열고 잔다는 사람부터, 사랑하는 남편과 꼭 껴안고 자면 따뜻해진다는 사람도 있었다. 그 모든 말들은 사실 실제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았고 그저 추위에 익숙해지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다.

출처 : 셔터스톡
출처 : 셔터스톡

그리고 거의 모든 사람이 공통적으로 했던 말이 있다. “지나친 난방은 환경에 좋지 않아. 견딜 수 있는 정도라면 에너지를 아끼는 게 좋다고 생각해." 일리있는 말이지만 일단 내가 살고 봐야된다고 굳게 믿었는데, 따뜻한 온도는 인간적인 삶의 필수 요건이라고 굳게 믿었던 내가 그 생각마저도 흔들리게 됐다. 아무리 힘들고 지쳐도 뜨끈한 바닥 보일러로 에너지를 충전했었는데, 이번 겨울은 가족들에게 내복을 입고 보일러를 낮추자고 잔소리를 한걸 보면 절대 바뀌지 않는 것은 없나보다 싶다. 집을 덥게 만들어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느니, 차라리 조금 추운 곳에서 따뜻한 커피를 마시는 게 겨울답다는 말을 하며 스스로가 참 기만스럽기까지 했다.

30년 넘게 살아온 한국을 떠난지 겨우 3년이 안 되었는데, 독일에서도 한국에서도 적응하지 못하는 이상한 시기가 오고야 말았다. 당연했던 것들은 어색하게 느껴지고, 낯선 타지 문화는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는다. 4월인 지금도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은 영하 1도까지 내려가는 추운 날씨인데다 글을 쓰는 손가락 끝마디가 시려서 손을 녹여가며 쓰고 있지만, 그렇다고 뜨끈한 한국 집이 그립지도 않다. 추운 겨울 실내 온도는 어느 정도가 적절한 선일까 생각해보면 한국보단 조금 더 낮고 독일보단 조금 더 높은 애매한 지점을 떠올린다. 어떤 독일인 교수가 한국 대학의 초청을 받고 방문해서 자신의 아내와 함께 왔는데, 교수 회관의 중앙 난방으로 한국의 뜨끈한 바닥 보일러를 경험한 아내는 너무 더워서 바로 다음날 숙소를 바꿨다는 말을 듣고 어쩐지 묘하게 웃음이 났다. 타지에서 산다는 건 수많은 문화 차이를 끊임없이 극복하고 견디며 살아가는 것일텐데, 온도 차이가 이렇게 힘든 일인 줄은 몰랐지.


* '독일에서 살게 될 줄은' 글쓴이 - 메이

유학생 남편과 함께 독일에서 신혼 생활을 꾸리며 보고 듣고 경험하는 이야기. 프리랜서로 일하며, 독일어를 배우면서, 일상의 풍경들을 낯선 시선으로 관찰하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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