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스틴, 지난 주말 어떻게 보냈어요?”, “헤일리, 이번 주 수요일 몇 시에 미팅 괜찮으세요?”
영어 이름으로 소통하는 회사가 꽤 많이 늘었다. 특히, 스타트업 중심으로 이러한 경향성이 더욱 큰데, 아마도 실리콘밸리 스타트업 문화를 좇아가면서 ‘영어 이름 부르기’가 수평적 조직문화 형성에 도움이 되리라는 믿음 때문이 아닐까 싶다. 필자 역시 멘토링 하는 후배들과 이야기 나눌 때 서로의 영어 이름을 부르는데 이 역시 조금이나마 수평적으로 대화하기 위해서였다.
영어 이름을 부르는 것이 곧 수평적 조직문화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다만, 이름과 직책을 붙여 부르다 보면 자연스럽게 생기는 위계를 조금이나마 없애고 좀 더 수평적이고 열린 대화가 가능하리라는 기대가 있다. 여기에 더해, 회사에서 평어(반말)를 사용한다면 어떨까?
참여한 독서 모임에서 얻은 힌트
다양한 독서 모임 가운데 어떤 모임에 참여할지 고민할 때 떠올리는 기준은, 어떤 책을 읽고 나누는가? 어떤 이가 모임을 이끄는가? 함께 참여한 이들 간의 상호작용과 무드는 어떠한가? 정도가 아닐까 싶다. 그 기준에 부합하는 독서 모임이 있었는데, 평소 좋아하고 끌리는 마음으로 따르는 코치님이 클럽장을 맡은 독서 모임이었다. 이 모임에는 뭔가 특별한 게 있었다.
단순히 책을 읽고 책에 대한 감상과 의견을 나누는 것을 넘어서서, 책에서 빚어진 여러 질문을 참여한 이들과 일대일 또는 소규모로 나누고 전체 모임에서 다시 공유하는 형식이었다. 보통 회사에서 하는 워크숍과 유사한 느낌이었는데 이를 독서 모임에 적용하니 좀 더 풍성하고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어서 좋았다. 모임을 이끄는 코치님의 퍼실리테이션 역량이 워낙 탁월해서 더 밀도 있는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는 건 틀림없었다.
거기에 더해 이 독서 모임의 또 다른 특징은 ‘서로 평어를 쓴다’는 것이었다. 쉽게 말해서 서로 반말로 이야기한다. 나보다 열 살 많은 코치님에게도 ‘호, 지난달에 어떻게 보냈어?’라고 묻고, 열 살 어린 독서 모임 멤버에게도 ‘정연아, 이 책 읽으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어?’라는 질문을 듣는다. 처음에도 어색하고 아직도 조금은 어색하지만 조금씩 익숙해지는 중이다. 그런 평어 사용의 여정에서 새롭게 발견하게 된 것이 있다.
단순히 수평적인 대화의 무드가 형성되는 데 그치지 않고, 다양한 주제와 소제에 대해 좀 더 열린 대화를 격의 없이 할 수 있게 되었다. 대화의 양과 질 모든 면에서 더 풍성해졌고, 격식을 차려 우회하는 질문이나 답이 아닌, 좀 더 진솔하고 직선적인 커뮤니케이션을 가능하게 했다.
평어 사용을 통해 얻은 인사이트를 회사에도 적용해 볼 수 있을까? 생각해 봤다. 장유유서와 같은, 연공서열적인 유교적 토양 위에 구축된 사회, 그 사회 속에서 운영되는 회사에서 평어 사용은 쉽지 않아 보였다. 그럼에도 특정한 목표나 과제 수행을 위한 프로젝트팀이나 워크숍에서는 한번 시도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다양한 생각을 수렴하고 포용하는 측면에서 평어 사용의 긍정적 효과가 기대되기 때문이다.
언어가 사고와 관계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믿는다. 어떤 호칭 체계를 사용하고 어떤 언어(존대어/평어)를 사용함에 따라 우리의 생각과 대화, 함께 하는 이들과의 관계가 달라질 수 있다. ‘회사에서도 평어를 쓸 수 있을까?’ 즐거운 상상이 담긴 질문을 던져보는 목요일 아침이다.
* 글쓴이
인생여행자 정연
이십 년 가까이 자동차회사에서 HR 매니저로 일해오면서 조직과 사람, 일과 문화, 성과와 성장에 대해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몸으로 답하는 시간을 보내왔다. 지층처럼 쌓아두었던 고민의 시간을 글로 담아, H그룹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며 칼럼을 쓰기도 했다. 10년차 요가수련자이기도 한 그는 자신을 인생여행자라고 부르며, 일상을 여행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며 글을 짓는다. 현재는 H그룹 미래경영연구센터에서 조직의 나아갈 방향을 고민하며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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