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파고스 제도, 우리에게 익숙치 않은 신비한 동물이 많은 섬입니다. 그리고 갈라파고스 증후군은 일본 기업이 자국시장에만 맞게 제품을 만들어서 글로벌 기준과 맞지 않는 상황을 말합니다. 그리고 오늘날은 한국만의 동떨어진 문화를 K-갈라파고스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기록
직원을 교육하기 위해 기록에 대해 어떻게 설명하는게 좋을까 고민합니다. 직원들에게 기록관리는 어디까지나 처리하기 번거로운 업무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교육시간에 기록이 소중하다는 원론적인 이야기만 한다면 실무적인 내용을 기대한 직원들에게 실망을 안길 뿐이고 듣는 이의 집중력이 금방 떨어집니다. 직원들은 기록을 항상 어렵다고 하고 법적절차를 복잡하고 불필요하다고 느낍니다.
기록을 귀찮아 하는 것은 어느나라나 사정이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우리나라의 사례로 이 답을 ‘기록’이라는 단어에서 찾아 보았습니다.
한국어에서 ‘기록’은 너무나 보편적인 단어로 여러 뜻을 가지고 있는 단어입니다. 영어로는 Record, Archive, Document 와 같이 세분화 됩니다. 역사라는 개념으로 사용될 때는 Memory까지도 포함 시킬 수 있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의미를 가진 단어이다 보니, 내가 ‘기록’을 말하고자 할 때 상대방은 내가 설명하고자 하는 의미의 ‘기록’으로 듣지 못합니다.
직원들이 자주하는 이야기 중 하나가 ‘이거 중요하지 않은 것인데…’ 라는 말입니다. 직원 스스로가 기록의 생산자이다보니 그 기록에 대한 가치를 충분히 잘 알고 있고 내 것이기에 내가 적당히 취급해도 되는 것으로 인식하기도 합니다.
이것은 ‘기록’이라는 단어를 역사로 생각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생산자 입장에서 ‘이거 역사적 가치 없으니까 대충 취급해도 되지. 이게 무슨 기록이야.’ 라는 생각으로요.
그래서 필자는 ‘기록'이라고 다 역사는 아니다. 우리가 하는 기록관리는 서양식의 원본 기록관리이고, 증거로 쓰일 수 있게 끔 보존기간에 따라 관리하는 것이다. 그리고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는 기록을 보라, 지금은 꼭 역사서를 편찬해야 하는 시대가 아니다. 이제는 원본이다. 공무원의 이름이 담긴 원본이 남는다.‘라고 이야기 해 보기도 합니다.
그러면 조금은 이해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Archives, Museum, Library
기초지자체 기록관에서 근무하다보면 100년 전 기록물을 취급할 일도 있고, 그러다 보면 우리 기록관에서 이렇게 오래된 기록을 보관할 역량이 되는가 스스로 의문을 가집니다. 그리고 다른 직원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오래된 기록물 이야기가 나오면 '그 기록물 박물관으로 가야 하는거 아니냐?' 라는 질문을 받기도 합니다.
필자 또한 기록학을 접하기 전까지 기록은 박물관에서 보관하는 것으로 알았습니다. 우리나라 박물관에는 기록이 함께 있으니까요.
5년도 더 지난 일이지만 우연한 기회에 파리에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여러 박물관을 둘러 보았습니다. 루브르 박물관(Musée du Louvre), 오랑주리 미술관(Musée de l'Orangerie), 오르세 미술관(Musée d'Orsay), 국립기록보존소박물관(Musée des Archives Nationales)을 둘러보고요.
루브르 박물관에는 유물도 있지만, 회화와 조각상이 상당히 많아서 박물관 보다는 미술관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놀라웠던 것은 박물관에 기록물(Archive)이 없다는 점이었습니다. 기록물은 프랑스 국립기록보존소에서 운영하는 박물관에 가서 볼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Archives에서 Museum을 운영하는게 그리 놀랍지는 않지만 당시에는 상당히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책’인 외규장각 의궤가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발견되었던 것을 보면 프랑스는 대혁명 이후 박물관(유물, 예술품), 도서관(책), 기록관(기록물)의 기능을 명확히 구분해서 운영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미국에 갔을 때에도 워싱턴D.C.에 있는 미국NARA의 국립기록관박물관(National Archives Museum)을 보고 미국 건국시기부터의 기록물을 아카이브에서 관리하고 있다는 사실이 우리나라와는 달라 신선하게 느껴졌습니다.
우리나라는 어떨까요?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있던 외규장각 의궤는 우리나라에 와서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보관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만 박물관에서 고문서를 보관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옆 나라 일본도 박물관에서 고문서를 보관합니다. 1970년대에 들어서야 봉건시대 기록의 보존을 위해 아카이브 건립과 지역사 편찬이 이루어 졌다고 합니다.
유럽은 아카이브가 일찍 발달해 왔고, 봉건제가 오래되어 지자체 기록관에서 중세시대 기록을 보관합니다. 우리나라에 도서관, 박물관 제도가 들어올 때 기록관도 함께 제도가 정착 되었다면, 유럽이나 미국처럼 기록관, 박물관, 도서관의 기능과 역할이 분명히 구분될 수 있지 않았을까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지금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더 정확히 인식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기초지자체 기록관
기초지자체 기록관에서 근무하면서 가장 놀랐던 점입니다.
현행 공공기록물법에서는 기록관은 영구기록물관리기관으로 이관을 하도록 하고 있고, 지자체 중 광역지자체는 영구기록물관리기관의 설치가 의무로, 기초지자체는 영구기록물관리기관의 설치가 재량으로 정해져 있습니다.
기초지자체에 영구기록물관리기관의 설치가 할 수도 있는 재량권은 있지만 필수 조항은 아니므로 기초지자체에 영구기록물관리기관을 당연히 설치해야 한다는 담론이 형성되지는 못했습니다.
기초지자체에 Records Center인 기록관 설치는 의무지만, Archives 설치는 재량으로 하고, Archives 미 설치시 상급 지자체로 이관을 의무화하는 나라가 한국 외에 있을까요?
첫째, Records Center라는 제도는 보편적인 제도가 아닙니다. 미국 제도로 유럽에서 사용되는 제도는 아닙니다. 국가기록관리 체계에서 국가기록원을 중심으로 생산기관인 각 부처의 처리과 단계부터 효율적인 기록관리를 위해 중간단계인 Records Center의 필요성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국가기록원과 같은 지위를 광역지자체에 상정하고 기록원(광역) - 기록관(기초자지체) - 처리과 형태로 반영된 것도 현재 제도가 만들어진 이유 중 하나가 아닐까 추측해 봅니다.
둘째, 기초지자체가 상위 지자체(지방정부)에 이관하는 체계는 없습니다. 박찬승(2000)은 프랑스, 영국, 미국, 일본의 사례를 조사하였고 각국 모두 정부, 상위지자체(지방정부), 하위지자체가 각각 아카이브를 설치하여 관리하는 것으로 확인 하였습니다. 국가기록원 홈페이지에 있는 해외 법령을 살펴봐도 우리나라와 같은 지방기록물 이관체계는 없습니다.
지방의 기록은 지방의 역사로 그 지방에서 관리되어야 한다는 당연한 명제를 왜 그동안 몰랐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필자가 내린 결론은 기초지자체에 필요한 것은 Records Center가 아니고, 지방의 역사를 보존하는 Archives 라는 것 입니다.
기록관리에서의 K-갈라파고스가 무엇인지, 한국적 기록관리 특징을 이야기해 보았습니다. 한국적으로 변화한 것이 장점이 될 수도 있고, 단점이 될 수도 있습니다. 다만, 모든 것을 이해하고 판단을 내리는 것이 중요하기에, 그 동안 필자가 고민하고 경험한 내용을 공유해 보았습니다.
현재 공공기록물법령은 개정 과정에 있습니다. 우리 모두 기존 법 체계에 얽매이지 않고, 우리나라에, 우리지역에,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고민해 보았으면 합니다.
참고문헌
- 박찬승, 한국기록학연구1, 「외국의 지방기록관과 한국의 지방기록자료관 설립 방향」,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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