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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가능성’이라는 허구와 같은 말 너머에

※허구: 사실에 없는 일을 사실처럼 꾸며 만듦.

2024.10.05 | 조회 9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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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니스트

기록과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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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가능성은 환경적 측면에서 제기된 용어이지만, ‘생태계지속(유지)’에 초점을 맞추어 여러 분야에서 자주 쓰이는 개념이다. 기록학 논문에도 몇 차례 등장하기도 했고, 필자도 2021년 공동체 아카이브의 지속성에 대한 연구(Newman, 2010)를 프레임워크로 해서 마을기록과 지역기록을 하는 동료들과 연구를 진행한 바 있다. Newman은 지속가능성에 영향을 주는 요소로 거버넌스, 자금조달, 전담인력, 협업, 접근과 이용가능성, 보존, 기록 관행, 공동체 참여, 기록물, 기록관리전문가, 외부 지원이라는 11가지를 제시했다. 현장인터뷰에서는 지속을 위한 요건에서 제일 많이 언급되는 것은 자금조달 즉, 재정이었으나, 재정이 많다고 사업이 잘 되는 경우는 보지 못했고 당시에 거버넌스는 서울의 마을아카이브 시범사업과 이제 갓 시작한 청주문화도시의 기록 사업밖에 없었으니 언감생심 필요한 요소라고 해도 일방적인 의지만으로 가능한 일도 아니었다.

최근 부산 영도에서는 시민들이 목소리가 연일 지역 언론에 노출되고 있다. 영도는 전국에서 제일 먼저 지역소멸이 일어날 것이라 예상될 만큼 노인 인구가 많고, 주요산업인 조선업을 이끌고 있던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를 비롯한 조선소들의 폐업 등으로 쇠퇴의 속도가 빠른 지역이다. 이러한 배경에 활력을 잃고 있는 영도는 문화로 지역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문화도시사업에 도전하여 20201차 문화도시가 되었다. 영도문화도시는 아이부터 노인까지 여러 세대를 아울러 다양한 시민이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을 진행했고, 2024년에는 전국 최우수 문화도시로 선정 될 만큼 전국적으로도 많은 관심을 받았다.

이들의 사업 중에는 시민들이 참여하는 기록동아리 사업, 기획자들이 진행하는 아카이브 사업, 주민들의 사진과 물건 등을 수집하는 기억전당포 사업, 디지털 아카이브 <아카이브 영도> 구축 사업, 그리고 아카이브 위원회 운영 등이 있었다. 기록과 아카이브에 진심인 크루(영도문화도시센터의 활동가들을 크루라고 부른다)들이 기록 대학원에서 전공으로 공부하지는 않았지만, 전공자만큼이나 공부하면서 일구어 온 사업들이다. 그리고 앞서 제시한 아카이브의 지속가능성 요소를 모두 충족하는 곳이 있다면 바로 이곳이었다. 국책사업이니 거버넌스와 이에 따른 재정 확보는 기본 전제이지만 이에 더해서 공무원들과의 간담회를 여러 차례 열며 사업의 중요성을 공유했고, 구의원과 협업하여 도시역사문화 아카이브 구축 및 운영 조례를 만들기도 했다. ‘연결을 테마로 가능한 많은 주체들과의 협업과 공동체의 참여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그러나 국책사업의 한계는 지원의 기간이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영도문화도시센터는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고 지원사업이 종료된 후에도 지역의 문화사업과 기록 사업을 지속할 수 있도록, 제도적·인적·물적 역량을 구축하고 확보하고자 무던히도 노력했으나, 영도구가 얼마전 문화도시 사업 종료 후의 예산을 편성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힘으로써 그동안 쌓아왔던 성과들이 물거품이 되기에 이르렀다.

지속가능성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국책사업이라도 결정권자의 변심으로, 또는 결정권자의 교체로 수시로 바뀌는 정책 속에서 지속가능성은 그야말로 허구의 말이 아닌가를 점점 더 깨닫게 된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할 수 있다고 그동안 믿어온 것은 아니었는지, 그래서 작은 공동체 아카이브에도 지속가능성이라는 말을 쉽게 붙이고 있었던 건 아니었는지. 그동안 시민들과 함께 수집한 기록물과 기억과 기록을 저장해놓은 디지털아카이브의 책임 소재는 어디가 될 것이며, 보고 싶을 때 볼 수 있는 기록이 될 것인지 의문이다.

하지만 2021년 동료들과 한 연구에서의 결론은 그랬다. 재정이 제일 문제이긴 하지만, 더 중요한 건 공동체 구성원들의 참여와 의지라고. 영도에서도 주민들이 나섰다. 주민들은 문화도시영도를 지키는 시민대책위를 꾸리고 골판지 피켓을 만들고, 기타를 들고 나섰다. 영도문화도시가 그간 했던 중심 활동이었던 문화는 그렇게 발현되었다.

이 사업이 주민의 의지로 지속되기 위해서는 그간의 사업이 어떤 성과를 얻었는지 주민의 말로 표현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 이미 시민대책위에서도 시민들의 글들을 모아서 SNS에 올리고 있다. 필자도 지난겨울 기록동아리 활동을 했던 주민들을 인터뷰하면서 들었던 말들을 옮기며 시민대책위 활동에 지지를 보내고자 한다.

 

“저는 여기에 살았던 토박이도 아니고, 그냥 아이들 학교만 보내고 왔다 갔다 했는데, 그래도 주변을 계속 다니고 관심 있게 보니까, 내가 지금 살고있는 지역 이곳이 제2의 고향처럼 편안하고, 애정을 갖게 되는 마음이라고 해야 되나요? 그런 것도 더 생긴 것 같아요”

영도 봉래산의 식물을 기록했던 동아리 구성원의 말

“인터뷰하면서 공동체 선배님 한 분은 자기도 대표하면서 너무 힘들었다는 거야. 우시더라고요, ‘치유가 됐네.’ 내가 이랬어요. 저는 입 밖으로 내는 행위 자체가 되게 치유가 되는 게 기록이 가지는 의미라고 생각해요. 감사한 마음 많이 생겼어요. 진짜 좋은 사람들, 정말 괜찮은 사람들하고 살고 있구나. 이런 감사한 마음이 엄청 커졌어요.”

자기 공동체의 활동을 기록하는 동아리 구성원의 말

"어릴 때 얘기하면 다 미소를 짓거든요. ‘아이고 그때는 그랬다.’ 그리고 원망도 있겠죠. ‘우리 아버지가 왜 나를 공부를 안 시켰을까.’ 사람은 그래요. 한 번 훑고 나면 속이 시원해져요. 맺히는 게 없지. 다 돌아보니까 그때는 시대적으로 어려웠구나 하는 거를 조금 아시는 거예요. 다른 어르신들과 함께 얘기를 나누다 보니까 ‘내뿐만 아니고 다 그랬구나.’ 그러면서 서로가 위로가 되는 거죠. 그게 집단 상담이에요. 전문가가 보면 형편없지만 우리는 너무 귀한 거예요. 진짜 한 가족이 됐어요. 우리는."

마을 어르신을 인터뷰한 기록동아리 구성원의 말

"영도에서 다른 프로그램에 참여하면, 여기 기록에 참여하셨던 분 몇 분을 만나게 돼요. ‘저희는 이런 활동을 합니다. 어떤 활동을 하세요?’ 서로 공유하다 보면 더 가까워지는 것 같았어요. 학습자로 만났다가 기록자로 또 알게 되고. 사업이 끝난 후에도 우연하게 만나면 그 이야기를 또 하게 돼요. ‘어디에 관심이 있으세요? 저희는 이런 거 해보고 싶어요.’ 이렇게 이어지는 거 있잖아요. 그런 게 좋아요."

영도에 있는 절을 기록했던 동아리 구성원의 말

 

참고기사

전국서 모범 사례로 꼽힌 ‘문화도시 영도 사업’...재정 이유로 중단 위기

https://www.busan.com/view/busan/view.php?code=2024092011220019830

[기고] 문화도시 영도, 멈춰 선 안된다

https://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0500&key=20240923.22016006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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