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여행을 앞두고 머리카락을 바짝 짧게 잘랐다. 머리를 감고 말리고 정돈하는 시간을 대폭 줄이려는 의도였다. 유럽은 석회 물이 나와 머릿결이 상한다는 이유도 더해졌다. 잘려 나간 것은 몇 센티미터쯤 되는 머리카락 몇 줌뿐인데, 몸도 마음도 가뿐해졌다. 손질이 끝나고 미용실 벽면 거울을 바라보았다. 낯설지만 낯설지 않은, 한껏 들뜬 내 얼굴이 보였다.
여행을 다녀온 뒤에도 헤어스타일은 한동안 유지하기로 했다. 한두 달 동안 내 눈에 익어서인지 너무 길어진 느낌에 미용실에 갔다. “또 자르시려구요? 어휴, 너무 짧은데.” 미용사는 망설였다. 나는 괜찮다는데 자꾸만 주저하는 것이 보였다. 왜 그런지 이유를 몰라 다른 방법으로 슬쩍 떠보니, 그건 무난하게 다들 하는 스타일이 아니기 때문이란 속내가 보였다. 나도 내가 무난하게 사는 사람이 아니란 걸 은근하게 티 냈다. 그제야 미용사는 반복되는 내 선택이 이해된다는 듯, 자기가 아는 쇼트커트를 한 여자들 이야기를 꺼냈다.
미용사만 내 헤어스타일을 탐탁잖게 여긴 것은 아니다. 난데없이 요가원에서 만난 아줌마가 “아니, 예쁜 얼굴 놔두고 왜 머리를 자꾸 그렇게 잘라?” 통성명도 안 하고 대뜸 말했다. 시아버지도 우리 며느리는 머리를 왜 이리 짧게 잘랐냐며 한마디했고. 그런 얘길 들을 때마다 나는 ‘그렇게 이상한가?’ 하고 거울을 들여다봤다.
언제부터 내가 이런 헤어스타일을 하고 싶었나 기억을 더듬어 올라가면, 일본 애니메이션 <세일러문>이 있다. 부모님과 여동생, 나까지 네 식구가 반지하 집에서 살 때, 나는 가끔 TV를 틀면 나오는 그 만화영화를 재미있게 봤다. 엄마의 화장대 위에 올라서서 만화 주제가를 따라 부르며 방방 뛰었던 기억이 있다. 그때부터 내 마음속 최애는 쇼트커트를 한 여자, 머큐리였다. 노란 생머리나 갈색 웨이브 머리보다 왠지 아주 짧은 남색 머리의 그녀가 눈에 들어왔다. 그 후로도 영화 <레 미제라블>에서 팡틴이 짧게 머리를 잘랐을 때, 혹은 <중경삼림>에서 나오는 독특한 캐릭터 페이의 헤어스타일을 눈여겨보았다. 내 마음속 오래된 워너비는 짧디짧은 쇼트커트였다는 것을, 나는 꽤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자각했다. 분명 그런 헤어스타일을 선택할 기회가 있었음에도 나는 쉽게 결정하지 못했다. 여고생 시절에도 같은 반에 쇼트커트를 한 친구들을 볼 때면 눈길만 줄 뿐, 정작 나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남들과 너무 다르지 않게, 비슷하고 튀지 않게, 무리에 묻어서 별일 없이 살고 지나가는 것이 미덕인 줄 알았다. 특정 범주 안에 들어야 한다는 강박적인 세계 속에서 나도 그게 맞다고 믿으며 그 보이지 않는 기준선을 넘지 않으려 애썼던 때가 있었다. 쇼트커트이긴 하지만 앞이마와 귀를 덮을 정도의 넉넉한 길이로 자르는 헤어스타일처럼. 하지만 금세 답답함을 느꼈다.
정말 내 마음에 들어서 선택한 것인지, 아니면 나 아닌 누군가의 시선을 끊임없이 의식한 것인지. 내가 직접 해보지도 않고 지레짐작으로 덮어버린 결정들은 언제나 뒤끝이 길었다. 사실은 잘 알지도 못하는 것들에 대해 이러니저러니 후회만 남기고 소득은 없었다. 그 일에 대한 책임은 아무도 나 대신 져주지 않는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나서야 나는 질문하게 되었다. 나의 기준은 어디에 있는가? 나의 내부와 외부 중에 단 하나만 고를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어디에 더 무게를 둘지 판단과 선택은 내가 할 수 있다. 나는 오래 머물던 그 세계에서 빠져나왔다.
거울을 보았다. 어쩐지 눈이 슬퍼 보였다. 시선을 거뒀다. 눈을 감고 생각했다. 반지하 집 화장대 위에 올라가 만화영화 노래를 부르며 방방 뛰는 어린아이가 보였다. 지금 내 모습을 보여준다면 그 애는 뭐라고 말할까. 그 애의 답을 듣고 나는 다시 눈을 떴다. 거울 속에 보이는 여자는 10년, 20년 뒤의 나에게 또다시 답을 건네줄 사람이었다.
정말 내가 좋아하는 것은 뭘까? 나 자신만이 답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을 때, 너무나 후련하고 홀가분하지만 두렵고 떨리기도 했다. 선택에는 그만한 책임이 따른다는 말의 무게가 느껴졌다. 누군가의 눈이 아닌, 나 자신의 눈에 의해 내린 결정들을 받아들이고 감수하는 연습을 시작했다. 머리카락은 사실 잘려 나간 뒤에도 시간이 흐르면 다시 새로운 선택을 할 수 있는, 비교적 쉬운 선택이 가능한 영역 아닌가. 여행을 핑계로 과감히 내렸던 결정은 꽤 마음에 들었고, 한국에 돌아와도 여전히 고수할 만큼의 가치가 있었다. 여전히 나와 다른 세계에 거하는 사람들의 몇 마디 말을 듣는다고 해도.
‘그렇게 이상한가?’ 의심하는 눈으로 거울을 바라보다가도, 온전히 내 선택으로 결정한 헤어스타일을 보며 ‘아무렴 어때, 내 맘엔 들어.’ 슬그머니 입꼬리가 올라가는 얼굴을 본다. 다른 사람이 아닌 내가 평가하는 나. 실수하거나 실패하더라도 온전히 나의 것. 예쁘거나 예쁘지 않거나, 그건 중요하지 않다. 거울 속 내 얼굴을 바로 마주한다. 완벽하진 않아도 완전한 하나의 얼굴이 보인다. 이제야 조금씩 자신을 믿으며 선택해 나가는 이의 얼굴이. 나는 그 얼굴에 편안한 미소가 담긴 것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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