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주간모기영 75호

[이정식의 시네마 분더카머] "영화 <애프터 양>(2022)", [모기수다 시즌2] 3월의 영화 <단지 세상의 끝>(2017)

2023.02.25 | 조회 5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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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모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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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식의 시네마 분더카머

🚪 두 번째 방 : 영화 '애프터 양'(2022)

‘음화의 손’(main negative)이라는 단어, 들어본 적 있으세요? 음화의 손이란 구석기인이 동굴 벽에 남긴 손 이미지를 지칭하는 인류학, 고고학 용어인데요. 양화의 손과 짝을 이루는 단어입니다. 안료를 칠한 손바닥을 벽에 대어 찍은 자국이 양화의 손이라면, 음화의 손을 만들기 위해선, 먼저 맨손을 벽에 대고 물에 섞어 묽게 만든 붉은 흙가루를 입에 머금고, 그 손을 향해 뿌려야 한다고 해요. 벽에서 손을 떼어냈을 때, 남은 자국이 음화의 손입니다. 손이 닿았던 자리는 어떤 색도 없이 깨끗하게 비어있지만, 그 손의 윤곽을 따라 벽에 묻은 붉은 흙이 거기에 손이 있었음을 증명해 주어요.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마르그리트 뒤라스는 이 단어를 제목으로 단편영화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유튜브에서 ‘Les mains negatives’라 검색하시면 뒤라스의 영화를 관람하실 수 있을 거예요. 언어의 장벽을 넘어야 한다는 점이 있긴 하지만요.)

출처: ‘음화의 손’(main negative) <br>https://fr.wikipedia.org/wiki/Main_négative
출처: ‘음화의 손’(main negative)
https://fr.wikipedia.org/wiki/Main_négative

 양화의 손이 아닌, 음화의 손이 제 마음에 깊이 각인된 이유에 대해 궁리했습니다. 아마도 음화의 손이 제작되는 원리인, 가장 결정적인 것을 오히려 누락하고, 누락된 것이 주변의 짙고 밝은 색과의 대비로 인해 명료하게 드러난다는 것이 제게는 무척이나 매혹적으로 느껴졌어요. 그리고 이점은, <애프터 양>에 제가 매혹된 이유와도 닮았습니다.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영화는 양(저스틴 H. 민)을 과감히 괄호 안으로 집어넣습니다. 양은 사라졌지만, 그가 남겨놓은 흔적을 더듬거리며 주변 사람들은 그의 삶의 윤곽을 그려요. 그럴 때 그들은 저마다 자신이 생각하는 ‘양’이라는 음화의 손을 그리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이런 식의 서사진행 외에도 제가 음화의 손을 떠올린 이유가 하나 더 있습니다. 양이 남겨놓은 기억 영상 때문인데요. 흥미롭게도 양이 저장할 수 있는 기억은 3초에 불과합니다.(참, 양은 사람이 아닌 안드로이드라는 걸 말씀드려야 했군요.) 단 3초.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된 원인이나 그 일이 대체 어떻게 끝을 맺는지 알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 말을 길게 하는 사람이라면 한 문장이 끝나기도 전에 종료되는 시간. 그 3초의 시간이 양에게 허락된 기억의 시간인 거예요. 그러니 양이 떠난 이후 남겨진 제이크(콜린 파렐)와 키라(조디 터너-스미스) 부부와 딸 미카(말레아 엠마 찬드로위자야)가 그려야 할 양의 (음화의) 손은 생각보다 까다로운 작업이었을 거예요. 양이 포착한 3초의 시간으로 그가 무엇을 바라고, 욕망하며, 꿈꾸었는지를 헤아려야 했으니까요.

출처: 네이버 영화
출처: 네이버 영화

양이 남겨놓은 기억 영상의 목록들
1. 제이크와 키라, 미카는 가족사진을 찍기 위해 포즈를 취한다. 카메라 구도에 잠깐 살펴본 양은 타이머를 걸어두고서, 자신을 위해 마련해놓은 자리로 달려가는 대신 한동안 그들을 응시한다. (3초)
2. 어느 콘서트 장, 눈을 감고 노래를 따라 부르는 한 여인을 응시한다. (3초)
3. 아직 갓난아기인 미카를 안고 울음을 달래주는 키라를 응시한다. (3초)
4. 새하얀 벽으로 문득 하오의 가냘픈 빛이 부딪히며 일렁인다. (3초)
5.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바라본다. (3초)

*영화의 후반부에 이르면 서사 진행에 있어 결정적이라고 할 수 있는 영상들이 나옵니다.

 다행히 그들이 의지할 수 있는 건, 양의 기억 말고도 있습니다. 바로 저 자신이 양과 공유한 기억. 그와 함께한 시간, 그 장소의 정취, 햇살의 농도, 바람의 기척, 자세히 듣거나 보지 않으면 알아차리기 어려울 정도로 미묘하게 달라지는 양의 목소리와 표정들. 양이 남겨놓은 단 3초의 기록 영상이 텅 빈 음화라면, 양을 둘러싼 저마다의 기억들은 그 주변을 에워싸는 다채로운 색깔일 거예요. 그렇게 엄지가, 검지와 중지, 약지와 소지가 조금씩 형태를 갖추어 갑니다.

 이 영화의 백미는 따로 있습니다. 단지 정보 데이터만 갖고 있는 안드로이드라 생각된 양이, 실은 인간처럼 어떤 정서를 감각하고, 생생한 감각의 주인이 자신이라는 자의식마저도 자각한 것은 아니었을까, 추측하게 되는 대목인데요. 3초가 지나면 멈춰버리는 기억 탓에 그 무엇도 확언할 수 없지만, 양과 깊은 관계를 나눈 복제인간 에이다의 말을 통해 이 의혹은 설득력을 갖습니다. ‘우리 감각은 매번 다르게 저장되고, (…) 그들은 존재했었다. 그러므로 우리도 존재하고 더 나아질 수 있다.’ 그렇다고 한다면, 양은 어디까지 나아질 수 있었다는 걸까요. 인간처럼 사고하고 감각하며, 경험하는 것이 가능할 수 있었을까요. 그토록 소망하던 생동하는 삶의 감각을 갖는 데 성공할 수 있었을까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확실히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자신에게 허락되지 않았으므로 그는 끝내 삶의 생생한 감각과 정서를 완전히 알아내는 것은 어려웠겠지만, 그 형태만큼은, 삐뚤빼뚤한 필압선으로 따라 그리려 했다는 것을요. 그것은 영원히 자신을 비껴갔지만, 그럼에도 그는 안간힘을 다해 손을 뻗었다는 것을요. 그럴 때마다 번번이 놓쳤을 겁니다. 어긋났을 거고요. 하지만 그 누적된 실패의 흔적이 윤곽이 되어, 그가 간절하게 꿈꾸었던 소망의 형태가 역설적이게도 비로소 명료하게 드러나게 된 것은 아닐까요. 그렇게 완성된 그림은, 소망의 또다른 형상은 아닌지요.

 고개를 아래로 숙여 제 손을 바라봅니다. 이 손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어디까지 나아질 수 있을지. 내가 소망하는 것에 영원히 다가서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3초, 그다지 멀리 내다볼 수 없는 현재에 갇혀 있는 저는 그 무엇도 확언할 수 없지만, 그래도 계속해서 그리려 합니다. 내가 성취한 것으로 양화를 그리는 날도 있을 것이고, 이루지 못한 실패의 흔적이 그리는 음화를 그저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하는 순간도 있을 거예요. 양과 음을 오가는 동안 삶의 연필은 뒤뚱거리며 흘러갑니다. 이 그림이 완성되는 날, 환한 웃음과 함께 당신에게 펼쳐 보일 수 있기를. 그러니 당신도 당신 그림의 드로잉을 포기하지 마시기를.

문득 궁금해집니다. 당신 손의 생김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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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기수다 시즌2]

 3월의 모기수다는 자비에 돌란 감독의 <단지 세상의 끝>(2017)과 함께 합니다. 늘 젊은 천재 감독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니는 자비에 돌란 감독과 마리옹 꼬띠아르, 레아 세이두, 뱅상 카셀 등 프랑스를 대표하는 신구세대 배우들의 날선 연기 앙상블로 화제가 되었던 <단지 세상의 끝>은 천국과 지옥, 구원과 절망, 행복과 불행의 양극단이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뒤엉켜 스며들어 있는 ‘가족’이라는 보편적인 이야기를 통해 각자가 서 있는 삶의 자리를 돌아보게 만드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박준용 영화해설가 / 모기영 실행이사)

모기수다 모임은 매월 두째주 토요일에 진행됩니다. (3월 모임 - 3/11) 모임 장소는 경복궁역 인근의 '바람이 불어오는 곳'입니다. 오후 3시부터 5시까지는 영화를 감상하고 감상 후에 영화에 대한 생각을 자유롭게 나누는 시간을 가집니다. 매 회 모임 때 마다 너무도 즐겁고 유익하다는 참여자들의 후담이! 더 가까워진 공간에서, 많은 분들이 함께 즐거움을 나누게 되기를 바랍니다 :)

* 2월 이후의 모기수다 모임부터는 공간과 음료, 간식 등을 위한 최소한의 회비를 책정하게 되었습니다.  (회당 5천원, 2~10월 일시 납부시 3만원, 모기영 정기후원자 무료)

▲ 모기수다 시즌2 오픈카톡방에에서 모임 공지와 소통이 이루어집니다. 
꼭 모든 회차에 참석하지 못하시더라도 입장을 환영합니다! (입장코드 : cfffe23)


모기영 후원안내 ( ▲ 이미지를 클릭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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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 적은 ‘음화의 손’에 대한 사유를 저는 윤경희 문학평론가의 『그림자와 새벽』에서 빌려왔어요. 책을 다시 펴니 고인류가 왜 ‘음화의 손’을 벽에 찍었는지에 대해 뒤라스가 한 말이 적혀있네요. 인용해 보겠습니다.

나는 외친다, 너를 사랑하고 싶다고, 너를 사랑한다고. (…)
이름이 있는 너여, 정체성을 부여받은 너여, 나는 무한정의 사랑으로 너를 사랑한다. (…)
나는 너보다 더 멀리 너를 사랑한다. (…)
30,000년 전부터 나는 하얀 유령 바다 앞에서 외친다. 나는 너를 사랑할 것이라 외치는 사람이다, 너를.

Marguerite Duras, "Les Mains negative," Le Navire Night et autres textas, Gallimard, 1986, pp. 97, 99, 100, 101. 윤경희, 『그림자와 새벽』, 시간의흐름, 2022, 쪽. 재인용.


말하자면, 고인류가 벽에 손을 댄 것은 그가 타인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나온 행동이었다는 것.벽에 손을 얹은 사람의 마음을 생각합니다. 그 한없이 고요하고 잠잠한 마음에 대해서요.
그 마음의 윤곽을 당신께 건넵니다.



글 : 이정식
편집 디자인 : 강원중

2023년 2월 25일 토요일

모두를위한기독교영화제 주간모기영

 

제4회 모두를위한기독교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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