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은의 취미와 취향 : 개봉영화 권해드림]
<콘클라베>(2024): 확신의 봉인을 해제해야 할 이유
2024년 12월 3일 내란의 밤 이후 4개월여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이르면 2월 말이면 결정이 날 거라던 헌재의 심리가 장기화하면서 불안과 혼란의 시기가 이어졌지요. 8인의 재판관들이 전원일치 판결을 위해 분투하고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철통보안이 유지되는 사이 억측이 난무하기도 하고 “이게 무슨 콘클라베냐!”라며 더러 비난 섞인 한탄을 내놓기도 했던 것을 기억합니다. 콘클라베, 얼마간 성스럽고 고풍스러운 이국의 종교 용어는 2025년 대한민국에 이처럼 일상 아닌 일상의 어휘로 훅 다가왔습니다. 마침 에르바르트 베르거의 영화 <콘클라베>가 개봉하기도 했고요.
교황 선종 직후 로마교황청 추기경단장인 로렌스(랄프 파인즈)에게 차기 교황을 선출하는 콘클라베를 주관할 임무가 주어집니다. 3주 후 열린 콘클라베에서 사도궁무처장 트랑블레(존 리스고), 국무원장 벨리니(스탠리 투치), 베네치아 추기경 테데스코(세르조 카스텔리토)와 나이지리아의 아데예미(루시언 음사마티) 등이 유력한 후보자로 지목되었는데요, 벨리니는 진보적인 신학으로 모든 면에서 보수적인 테데스코와 대립하며 어떻게든 테데스코만은 막아야 한다는 입장이고, 아데예미는 테데스코 만큼 보수적이지만 최초의 흑인 교황이 될 수도 있다는 기대를 받는 인물입니다. 한편 야심가 트랑블레에게는 선종 직전의 마지막 면담에서 교황에 의해 파면되었다는 의혹이 있습니다.
로렌스는 콘클라베가 열리는 동안 보안과 안전을 유지하는 동시에 추기경들 사이의 알력과 음모를 파악하고 은밀한 비밀까지도 다루어야 하는 난제를 껴안습니다. 107명의 추기경단에 더해 교황이 비밀리에 임명했다는 108번째 추기경으로 카불의 빈센트 베니타스(카를로스 디에스)가 등장하고 로렌스 자신이 뜻밖에 유력한 교황 후보자로 부상하게 되자 콘클라베는 난맥상을 이루게 되었어요. 추기경단장으로서 로렌스의 언행이 진정성을 의심받는 지경에 이르렀고요, 같은 편이라 믿었고 가장 신뢰하던 벨리니마저 당신의 내면을 똑바로 들여다보고 욕망을 인정하라며 로렌스를 다그칩니다.
스릴러 영화로서 <콘클라베>는 성직자라고 예외일 수 없는 인간의 추함과 나약함이 영상의 압도적인 아름다움과 기묘하게 공존하는 작품입니다. 외부와 완벽하게 단절되어 모든 과정이 비밀스럽게 진행되는 가운데 신의 뜻과 은총은 가장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봉쇄를 뚫고 기어이 모두에게 고루 도달하고야 맙니다. 오랜 세월 사람들의 시야에서 벗어나 있어 목소리를 빼앗긴 존재들에게까지, 무엇보다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방식으로 말이지요.
닫힌 문과 뚫린 하늘
콘클라베는 라틴어로 콘 클라비스(con claivis), ‘열쇠를 지니다’ 또는 ‘열쇠로 걸어 잠근 방’이라는 뜻입니다. 베드로에게 천국의 열쇠를 맡긴다는 마태복음 16장 19절의 예수님 말씀이 교황제도의 시초가 되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지요. 13세기부터 가톨릭교회는 추기경들이 교황을 선택하기 전까지 식사와 잠을 제외하고는 투표가 이루어지는 성당을 벗어날 수 없도록 했습니다.
닫힌 시공간으로서의 콘클라베 이미지는 영화 초반 선종한 교황의 방에서 시신이 나간 후 굳게 잠긴 문과 붉은 밀랍으로 봉인된 붉은 리본을 통해 충분히 암시되었습니다. 이미 너무 많은 비밀을 듣게 되었다며, 더 이상 비밀을 캐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던 로렌스는 후에 ‘증거’를 찾기 위해 서거한 교황 방의 인장을 뜯어냅니다. 교황청의 오랜 관습과 금기를 깨뜨리는 로렌스의 행위는 견고한 확신을 향한 도전이었습니다.
영화를 보기도 전에 여기저기서 먼저 접하게 된 <콘클라베>의 유명한 대사가 있습니다. 콘클라베 첫날 로렌스의 강론 내용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성모 교회에 봉사하는 동안, 제가 무엇보다 두려워하는 죄는 바로 확신입니다. 확신은 통합의 강력한 적입니다. 확신은 포용의 치명적인 적입니다. 그리스도조차 종국에는 확신을 두려워하시지 않았던가요? ‘주여, 주여, 어찌하여 저를 버리시나이까.’ 십자가에서 9시간을 매달리신 후 고통 속에서 그렇게 외쳤죠. 우리 신앙이 살아 있는 까닭은 정확히 의심과 손을 잡고 걷기 때문입니다. ... 오로지 확신만 있고 의심이 없다면 신비도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물론 신앙도 필요가 없겠죠.”
“의심하는 교황을 보내주십사, 주님께 기도합시다. 바로 그 의심 덕분에 가톨릭 신앙은 계속해서 생명을 얻고, 그로써 전 세계에 영감을 줄 것입니다. 죄를 짓고 용서를 구하고 또 실천하는 교황을 주십사, 주님께 기도합니다.”
불행히도 어떤 사람은 자신의 죄를 합리화하는 데 위 구절들을 인용해서 낭패를 보기도 합니다만, 신은 가장 적절한 순간 로렌스의 그릇된 신념에 균열을 내며 자신의 뜻을 알려옵니다. 그 순간이 미리 보수해서 잘 봉쇄된 시스티나 천장의 유리창이 폭음과 함께 깨지는 것으로 표현되었다는 것이 흥미롭습니다. 폭파의 결과로 희고 붉은 추기경단의 아름다운 복장은 흙먼지에 오염되고 말았지요.
여기서 로렌스는 또 한 번 금기를 깨고 봉인을 제거합니다. 콘클라베는 오로지 신의 뜻에 따른 것이어야만 하므로 투표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일체의 정보를 금하는 것이 교황청의 법이었지만, 교황청 담장 너머 바깥에서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추기경들에게 알리기로 한 것입니다. 그는 차기 교황을 점지해줄 신의 음성이 세계로부터 단절된 시스티나 성당 안에서만 들려올 거라는 확신을 깨뜨리고 외부의 소식에 귀를 열기로 합니다. 그리고 서로 논쟁하며 타인의 목소리를 경청한 후에야 추기경들은 비로소 자신들이 선택해야 할 교황의 얼굴을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불경하게도(?) 우아함을 잃고 먼지투성이 성의를 착용한 상태에서 말입니다.
배제와 차별 없는 풍경을 향해
영화의 마지막은 한 건물에서 문을 열고 나오는 젊은 수녀 셋의 모습입니다. 대각선으로 화면을 가로질러 화면 밖으로 사라질 때까지 그들은 발랄하게 걸으며 웃고 떠드는 데요, 그 모습을 위층에서 로렌스가 흐뭇하게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한결 편안하고 자유로워 보이는 얼굴이죠.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풍경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늘 존재했겠으나 그간 들리지 않던 소리가 들려오고 보이지 않던 존재들이 시야에 들어오는 일 말입니다. 그리고 집나온 교황의 거북이에게 로렌스가 그랬듯이 자신이 가장 안전하고 행복할 수 있는 곳으로 각자 돌아갈 수 있도록 누군가는 손을 빌려주고 대신 걸음을 옮겨야겠지요.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이 아녜스 수녀(이사벨라 로셀리니)를 선두로, 수백 년 ‘콘클라베’ 역사에서 주연은커녕 조연조차도 될 수 없었을 뿐 아니라 ‘불가시’의 존재였던 여성에게 목소리를 부여한 것에 특별히 주목해야 합니다. 그것은 또 다른 약자와 소수자를 포용하고 인정하기 위한 전제이자 포석이며 필수요건이기도 하기 때문이지요. 물론 이것은 확신의 봉쇄가 풀리고 굳게 잠긴 문이 열려야 가능한 일입니다.
“내가 뭘 요구했나? 세 가지 아닌가. 통합, 관용, 겸손.”
로버트 해리스, 『콘클라베: 신의 선택을 받은 자』(조영학 옮김, 알에이치코리아, 2025)에서,
자신의 강론에 대한 로멜리(영화의 로렌스) 추기경의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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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년 3월 1-31일 기준
강나루 강도영 강원중 강종철 구귀남 권명희 권호경 길섶교회 김경운 김대현 김동석 김명관 김미지 김소혜 김솔지 김영준 김지향 김진선 김철회 김현주 김혜영 김희라 남노영 대지교회 류현 문아영 문형욱 박성민 박일아 박재우 박준형 박진숙 박현선 박현홍 배재우 성현주 송정훈 신경미 신동주 신원균 심에스더 엄태미 윤선정 윤영석 이강희 이동은 이범진 이신석 이유리 이유혁 이정식 이청자 이태훈 이호정 장다나 장준호 정민호 지은실 채두리 채송희 최규창 최은 최재용 최현 한송희 한유정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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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데 바칸테 Sede Vacante.(이제 교황 자리는 공석입니다)”
로렌스의 ‘콘클라베’는 바로 이 선언과 함께 시작되었습니다.
지난 4월 4일 오전 11시 22분 대통령 파면이 선고된 지 20여분 후 용산 청사에서 봉황기가 내려졌어요. ‘대통령직은 이제 공석입니다’라는 뜻이라고 하더군요. 곧바로 영화 <콘클라베>를 떠올렸습니다.
민주공화국의 대통령은 신적인 권위를 지닌 교황이나 전제군주인 왕이 아닙니다만, <콘클라베>의 통찰은 여전히 우리에게 유효합니다.
다가오는 선택에서는 부디 (늘 있었으나) 지난겨울 광장에서 비로소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게 된 우리 이웃들의 얼굴과 목소리들이 마땅히 기억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키세스군단’ 같은 참신한 수사에 머물거나 단지 ‘기특한’ 이미지로 박제되지만은 않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고맙습니다.
글 최은
편집디자인 강원중
2025년 3월 6일 일요일
모두를위한기독교영화제 주간모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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