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은의 책과 영화]
예술, 쓸모없을 때 가장 빛이 나는 아름다움
오스카 와일드의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1890)과 <도리안 그레이>(2009)
자기 초상화를 보고 자기가 그렇게 아름다운 사람이라는 것을 처음 알게 된 청년이 있었어요. 그의 이름은 도리언 그레이입니다. 화가인 바질 홀워드는 도리언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그를 그려놓고 단번에 그 작품이 걸작이라는 것을 알아보았어요. 하지만 그는 도리언의 초상화를 전시에 내놓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그 초상화에는 화가 자신이 너무 많이 투영되어 있다면서요. 절친인 헨리 워튼 경은 그를 비웃었어요. “헐. 당신은 이 잘생긴 청년이랑 전혀 안 닮았거든?!” 이런 반응이었죠. 바질의 생각은 단호했습니다. 모든 화가들이 감정을 담아 그린 그림은 어떤 모델을 그리든지 화가 자신의 초상화일 수밖에 없고 그 그림은 화가의 영혼을 담고 있다고 주장했어요.
바질만큼이나 자기 초상화에 한 눈에 반한 도리언은 그 앞에서 이 젊음이 영원할 수 있다면 영혼이라도 팔겠다고 빌었어요. 신기하게도 그의 바람은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도리언 대신 초상화가 늙어가게 되는 건데요, 문제는 단지 노화가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초상화의 얼굴이 점점 흉측하게 일그러져간다는 거였어요. 초상화는 도리언이 욕망에 충실하게 되면서 급격히 추하게 변합니다. 반면 중년의 나이에도 미성년 시절의 젊음과 순결한 아름다움을 그대로 지니고 있는 실물 도리언은 세상의 온갖 아름다움에 탐닉하면서 매혹적이면서도 위험한 신사가 되어갑니다.
헨리 워튼은 도리언이 욕망의 화신으로 성장하도록 부추긴 인물입니다. 특히 그가 도리언에게 전해준 책 한 권이 큰 영향을 미쳤죠. 헨리는 그에게 시대착오적인 청교도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가르쳤어요. 경험의 열매가 아니라 열광적인 경험 자체가 목표가 되는 새로운 쾌락주의가 필요하다고 했지요. 그의 가르침에 따라 도리언이 욕망에 눈을 뜨게 되자, 헨리는 자기가 그를 새롭게 창조했다고 느낍니다.
결국 도리언의 이야기는 파국으로 끝이 나죠. 영혼의 바로미터이며 최후의 ‘양심’이 되어 자신을 괴롭히는 초상화에 대한 증오심과 그것이 담고 있는 진짜 자기 모습에 대한 환멸, 그리고 이 모든 일의 원흉이 된 그림을 그린 예술가에 대한 원망으로 광포해진 도리언은 자신이 바질을 찔러 죽였던 그 칼로 초상화를 찢습니다. 이후 사람들은 도리언의 집 다락에서 흉측한 몰골로 얼굴조차 알아볼 수 없게 된 시신을 발견했어요. 그 자리에는 집주인이 너무나 아름다웠던 시절을 그대로 담고 있는 눈부신 초상화도 있었지요. 청년 도리언이 그렇게도 바랐던 영원한 젊음과 아름다움은 그렇게 한 점 예술로 남았습니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은 오스카 와일드의 유일한 장편소설이면서 그를 유미주의자와 탐미주의자의 선봉으로 문학사에 기록하게 한 결정적인 작품입니다. 19세기 말엽, 오스카 와일드는 작가로서의 탁월한 재능 뿐 아니라 유려한 외모와 눈에 띄는 복장으로 시대를 풍미했으며 나이 마흔에 동성 연인의 부친으로부터 고소당해 징역형을 살고 나와 타국에서 생을 마감했어요. 그의 삶이 너무도 유명한지라, 세상 모든 아름다음과 쾌락을 추구했던 도리언에게서 작가의 이미지를 찾지 않기란 오히려 어려워 보입니다. 하지만 도리언의 스승 헨리 워튼 경과 예술가인 바질 홀워드 또한 작가의 모습을 닮은 것도 사실이겠지요. 과연 오스카 와일드는 도리언 그레이가 자신이 되고 싶어 하던 존재이며, 헨리 워튼 경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자신의 모습이고, 바질 홀워드는 실제 자신의 모습이라고 말했다고 하네요.
“어떤 사람이 유용한 무엇인가를 만들었어도 자신이 만든 것을 스스로 칭찬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를 용서할 수 있다. 쓸모없는 것을 만들었을 때 그것에 대해 유일하게 변명하는 방법은, 자기 자신이 그것을 열렬히 좋아하는 것이다. 모든 예술은 진정 쓸모가 없다.”
책의 서문에서 오스카 와일드는 위와 같이 말했습니다. 도리언의 퇴폐적이고 향락적인 삶과 동성애 관련 묘사가 문제되어 시달린 것을 의식하며, 예술가로서 자신은 자기가 좋아하는 것들과 자신처럼 열렬히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인물을 그려냈을 뿐이라고 항변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니 예술이 쓸모 있어야(즉, 도덕적이거나 교훈적이어야) 한다며 혼내거나 다그치지 말라고 말이지요.
그런데 진실한 예술이 지닌 신비한 힘이 여기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오스카 와일드가 자신의 작품에 대해 무엇이라 말하든 우리는 이 작품에서 끝없는 욕망과 쾌락, 외적인 아름다움만을 추구하는 사람의 출발과 그 말로를 지켜보며 나름의 판단과 교훈을 얻게 되지 않던가요. 실상 그는 예술이 진정으로 보여주고 싶은 것은 관객이지 삶 자체가 아니라고 말하기도 했는데요, 여기서 우리는 작품의 의미는 관객에게서 완성된다는 현대 비평과 해석학의 주장을 19세기 작가로부터 듣습니다. 물론 관객 편에서 발굴된 예술의 의미 또는 ‘쓸모’가 도덕적 교훈이어야 하는지의 문제는 별개라고 생각합니다만, 작가가 스스로 앞세우거나 강요하지 않아도 예술가가 아름다움을 만들어내는 본연의 역할, 즉 예술 자체에 가장 충실할 때 최고의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점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오스카 와일드의 작품을 원작으로 한 올리버 파커의 영화 <도리안 그레이>는 보자마자 매력에 빠져들게 되는 이 유명한 초상화의 주인공을 눈으로 볼 수 있는 기회입니다. <나니아 연대기> 시리즈에서 캐스피언의 왕자를 연기한 벤 반스가 도리언 그레이를 맡았고, 콜린 퍼스가 헨리 워튼 경을 연기했어요. 도리언의 욕망이 과열되는 과정과 초상화의 흉측한 변화를 시각적으로 재현하면서 19금 판타지 호러 장르로 만들기 좋은 작품이라 그만큼 기대도 컸겠지요.
하지만 파커의 영화는 도리언의 파멸만으로는 모자란 듯, 애초에 그를 부추긴 헨리에게도 처벌을 가하는 과욕을 숨기지 않습니다. 실은 그가 가장 큰 벌을 받은 것처럼 보이는데요, 자신의 딸 에밀리(레베카 홀)가 도리언과 사랑에 빠지게 되기 때문이죠. 뭐가 문제냐고요? 순수하고 지적이고 열정적인 에밀리의 사랑을 받기에는, 도리언은 여전히 도리언이거든요.
[모기영 × IVF 미디어 스토리보드 워크샵] 성료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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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년의 절반이 지나가버렸다는 사실에 깜짝 놀라는 사이, 서늘함과 무더위가 오락가락인 장마철이 다시 돌아왔네요. 마음까지 눅눅해지지 않으시기를 바라며 멀리서 또 가까이서 안부를 전합니다.
모기영은 이 시대 예술이 예술 하도록 지지하고 아름다움에 대한 감각을 지켜나가기 위해 애쓰겠습니다.
늘 고맙습니다.
글 최은
편집디자인 강원중
2024년 7월 1일 월요일
모두를위한기독교영화제 주간모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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