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주간모기영 164호

[이정식의 시네마 분더카머] 영화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2015)

2025.06.14 | 조회 350 |
0
|
주간모기영의 프로필 이미지

주간모기영

모두를위한기독교영화제|Christian Film Festival For Everyone|혐오 대신 도모, 배제 대신 축제

이정식의 시네마 분더카머

🚪 스물두 번째 방, 영화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2015)

 

잔존하는 것

이 영화의 중심 질문이기도 한 ‘비비안 마이어는 누구일까요?’라는 물음에서부터 시작해볼까요. 2007년, 창고 경매에서 그녀가 남긴 필름을 얻은 존 말루프는 그녀의 삶을 추적하면서 선뜻 양립할 수 없어 보이는 특성들로 비비안 마이어의 윤곽을 그립니다. 보모이면서 사진가. 다감하지만 낯선 이에게 쉽게 경계를 풀지 않는 사람. 방문을 굳게 걸어잠그면서도 거리로 나가 자신을 매혹시키는 것을 향해 경계없이 카메라를 들기도 하는. 렌즈의 시선에는 따듯함이 서려있지만, 세상의 비극도 외면하지 않았던 사람. 그러나 결코 유머를 잃지 않는 사람. 살아생전 사진을 공개하지 않았고, 그럴 의향도 없어 보이던 그녀가 나중에 밝혀진 바에 의하면, 프랑스의 어느 사진관을 통해 자신의 작품을 공개할 수 있을지를 타진하기도 했다는데요. 이런 점들은 보는 이로 하여금 비비안 마이어를 하나의 종합된 존재로 구성하지 못하게 만들죠. 그녀는 어떤 사람인가요, 사람의 형상은 쉽게 맺히지 못하고 형상이 될 뻔한 잔상만이 어렴풋하게 부유합니다.

그러나 어렴풋함 속에서도 명료하게 보이는 것이 있습니다. 비비안 마이어가 호더(저장강박)였다는 건데요. 그녀가 보모로 지낼 때 관계를 맺은 가족들은 하나같이 그녀의 방이 온갖 물건들로 가득차 있었다고 합니다. 메모, 녹음 테이프, 신문 스크랩, 버스 티켓, 영수증 등등. 인상적인 일화가 있는데요. 그녀의 방이 2층이었는데 모아둔 물건 탓에 지붕이 가라앉아 버릴 정도였다고 합니다. 생전 그녀가 남긴 사진의 양도 마찬가지입니다. 남긴은 15만여장, 그중에서도 미현상된 컬러필름은 700롤, 흑백필름은 2,000여개의 롤이라고 하네요. ‘사진은 대상을 독점하는 것이자 관계 맺는 방식’이라는 수전 손택(<사진에 대하여>)과 ‘사진은 외양들을 인용한다’라는 존 버거(<사진의 이해>)의 사유에 기대어 생각해본다면, 비비안 마이어가 남긴 압도적인 수집량에 대한 하나의 입장을 정립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삶과 끊임없이 연루되기를 원했고, 그러한 삶의 순간을 보존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저 무시무시한 아카이브의 양이 잃고 싶지 않은 애틋한 것들을 향한 마음의 크기라고 생각하면 뭉클해지기도 합니다.

[그림 1]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2015) 출처: 네이버 포털
[그림 1]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2015) 출처: 네이버 포털

그런 마음은, 그녀의 작품을 최초로 발견하고 세상에 알려지게 되는 과정을 이와 같은 영화로 만든 존 말루프에게도 있는 것이어서, 제게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는 수집하는 두 사람의 이야기로 읽히기도 하네요.(마침 그녀의 사진이 수집과 정리가 취미인 존 말루프에게 들어간 것도 반가운 우연입니다.) 이 두 사람의 수집은, 낡고 사라져버리는 것에 관한 연민과 사랑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간절함으로 보여서, 저는 이 마음 자체가 영화와 그녀의 작품을 둘러싼 논쟁(‘과연 그녀가 사진이 공개되기를 원했을까?’)에 대한 명징한 대답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잊혀져서는 안되는 것이 있다는 것이죠.

어느 책에 의하면, 고대 희랍 시인 사포는 그 유명세와 달리 사포에 관해 우리가 확정적으로 알 수 있는 정보란 아무 것도 없다고 합니다. 생몰년도, 친족 계보, 사인과 성적 지향까지 말이죠. 사포의 이름은 고대 그리스 문헌에서부터 등장했지만 그녀의 시가 기록된 파피루스, 양피지, 토기는 20세기 초반에서야 발견되었다고 하네요. 그마저도 사포의 사후 몇 세기가 지나서야 기록된 것이었으므로, 구전을 거듭한 기록물에서 온전한 원본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겁니다. 더 안타까운 사실은 그녀가 남긴 무수한 시 중 완벽하게 보존된 것은 단 한 편, 나머지는 파편들이라고 해요. 양피지는 해지고, 파피루스는 찢겨지고, 도자기는 깨어졌습니다. 어떤 조각에는 간신히 단어 하나만이 적힌 것도 있다고 하네요. 그리하여 사포의 시는 잔해의 형태로 잔존합니다. 낱말의 부스러기를 배치하(지 않)는 일을 저희에게 남겨둔 채로요. 그렇게 남은 시의 파편들은 그 자체로 독립적인 하나의 시가 됩니다.

[그림 2]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2015) 출처: 네이버 포털
[그림 2]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2015) 출처: 네이버 포털

사라지는 것이 있습니다. 그러나 끝내 살아남은 것이 있습니다. 세월의 침습이 만들어놓은 누락과 공백으로부터 어떤 것은 결국 잔존하여 수천년의 시간을 건너 우리에게까지 가닿는 것이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보존한다는 것은 망각의 파도에 결코 흘려보낼 수 없는 것을 건져내 내가 알지 못하는 누군가에게 보내는 행위이기도 합니다. 나에게 몹시 소중한 것들이야. 너도 아껴줄 수 있겠니.

사포가 만든 단어가 있는데요. ‘그리타’. 장신구를 담는 주머니라는 의미입니다. 문득 비비안 마이어가 보존의 방법으로 가장 애호한 도구가 카메라라는 것이 떠오르네요. ‘카메라 옵스큐라(camera obscura)’, 어두운 방. ‘포토그래프(Photo-graph)’, 빛으로 그린 그림. 어두운 방 안, 빛이 감광판에 흔적을 새기면서 사진은 태어납니다. 빛이 보낸 선물을 어두운 방이 고이 품고 있네요. 카메라만이겠어요. 기필코 간직해야 하는 풍경, 이미지, 기억, 감각이 저희의 깊은 방 안에도 있을테니까요. 그런 간절함으로 한 사람의 세계가 전달, 연결됩니다. 편린만이 주어진다 해도 좋습니다.

▲ 필자의 다른 글 보기 [이미지 클릭]
▲ 필자의 다른 글 보기 [이미지 클릭]

<3학년 2학기> 시사회에

주간모기영 구독자들을 초대합니다!  

*포스터를 클릭하면 신청폼으로 연결됩니다*
*포스터를 클릭하면 신청폼으로 연결됩니다*
모기영 후원자 및 주간모기영 구독자 초청 시사회 - 상영작 : <3학년 2학기> - 일시 : 2025년 6월 26일(목) 저녁 18:30 - 장소 : 상상마당 시네마 (서울 마포구 어울마당로 65 지하 4층) ** 주차는 불가합니다 - 상영 후 관객과의 대화 : 이란희 (감독), 강신일 (집행위원장), 최은(부집행위원장) - 신청기간 : 2025년 6월 22(일) 까지 *좌석 소진시 조기 마감

올해도 주간모기영과 함께 해주시는 구독자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의미있는 시사회 자리를 마련하였습니다. 올해 첫 시사회 작품은 이란희 감독의 <3학년 2학기>입니다. 

학창 시절의 마지막 3학년 2학기를 학교가 아닌 낯선 공장에서 보내게 된 중소기업 현장 실습생 열아홉 살 창우. 사수의 냉정한 평가 속에서도 일의 즐거움과 동료애를 느끼며 사회생활의 설렘과 두려움, 두근두근 단짠단짠을 맛본다. 하지만 예기치 못한 동료와의 이별은 창우를 뒷걸음치게 하는데…

<3학년 2학기>

영화는 특성화고교 학생들의 현실을 이야기한 작품으로 29회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감독조합 플러스엠상, KBS독립영화상) 50회 서울독립영화제(독립스타상, CGK촬영상), 13회 무주산골영화제(감독상, 무주관객상)등을 수상하였습니다.

관람을 원하시는 분은 아래 링크를 통해 신청하실 수 있습니다!!

올해 9월 개봉 예정인 영화를 모기영에서 먼저 만나보세요!! 

많은 신청 부탁드립니다! 


인사말

장마가 시작된다고 합니다. 비 피해가 없으시길, 두루 안녕하시길 빌어요.

 


글 : 이정식
편집 디자인 : 모기영 편집부

2025년 6월 14일 토요일

모두를위한기독교영화제 주간모기영

 


주간모기영에 바라는 점이나 아쉬운 점 있으면
아래 버튼을 눌러 소중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

첨부 이미지

 

Copyright © 2023 모두를위한기독교영화제, All rights reserved

 

다가올 뉴스레터가 궁금하신가요?

지금 구독해서 새로운 레터를 받아보세요

✉️

이번 뉴스레터 어떠셨나요?

주간모기영 님에게 ☕️ 커피와 ✉️ 쪽지를 보내보세요!

댓글

의견을 남겨주세요

확인
의견이 있으신가요? 제일 먼저 댓글을 달아보세요 !

다른 뉴스레터

© 2025 주간모기영

모두를위한기독교영화제|Christian Film Festival For Everyone|혐오 대신 도모, 배제 대신 축제

메일리 로고

도움말 자주 묻는 질문 오류 및 기능 관련 제보 뉴스레터 광고 문의

서비스 이용 문의admin@team.maily.so

메일리 사업자 정보

메일리 (대표자: 이한결) | 사업자번호: 717-47-00705 | 서울 서초구 강남대로53길 8, 8층 11-7호

이용약관 | 개인정보처리방침 | 정기결제 이용약관 | 라이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