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중캉의 생태주의로 영화읽기
<리브 더 월드 비하인드>(2023)
먼저 이실직고 하자면, 캐나다의 휴가지에서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한줌의 탄소라도 틀어막아야 할 시기에 비행기를 타고 먼 여행을 떠나온 것, 절박한 활동의 현장에 있는 얼굴들을 뒤로하고 현실로부터 도피한 것이 큰 배신을 저지르는 마음이 듭니다. 그러나 쉼과 배움의 기회라 여기며 스스로를 설득해 떠나온 여정 속에 여러 소중한 만남과 경험을 얻어가는 중입니다.
일정 중 머무른 어느 숙소는 깊은 숲속에 있어서 인터넷이 전혀 되지 않는 환경이었습니다. 광활한 대자연속에 완전히 고립되는 경험은 뜻밖의 공포를 느끼게 했습니다. 작년 11월, 넷플릭스에서 공개한 샘 에스마일 감독의 <리브 더 월드 비하인드>가 떠오르는 상황이었습니다. (제목을 직역하면 ‘세상을 등지고’ 정도가 되겠네요.) 영화는 뉴욕에 살던 한 가족이 한적한 교외로 휴가를 떠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 스릴러물입니다.
줄리아 로버츠가 연기한 아만다 가족이 갑작스러운 휴가를 추진한 이유는 이웃들의 지저분한 꼴을 보기 싫어서 입니다. 그녀는 누구의 간섭도 없는 교외의 호화로운 저택에서 오직 가족들끼리만 즐기는 완벽한 휴가를 꿈꾸지요. 하지만 미지의 존재가 감행한 사이버테러로 인해 인터넷과 TV 등 모든 네트워크가 먹통이 되어버리고 의문의 불청객마저 찾아듭니다. 낯선 환경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 아만다 가족은 깊은 공포와 무력감을 느끼지요. 위성에 의존해 운항하는 유조선과 여객기들마저 줄줄이 좌초되자 사람들은 큰 혼돈에 빠집니다.
모든 공포영화가 그렇듯 이 영화도 우리 사회 심층에 드리운 위험요소를 다룹니다. 그것은 지나치게 온라인에 의존하며, 관계맺는 능력을 잃어가는 현대사회의 불안정성이지요. 영화속에서 온라인 네트워크가 갑자기 사라지자 사람들은 어찌할 바 모른 채 서로를 극도로 의심하고 적대시합니다. 약을 구하러 온 이웃에게 총을 겨누고, 프로필을 검색해보기 전까지는 결코 서로를 신뢰할 수 없는 존재로 여기지요. 우리는 세계적인 초연결사회를 자부하며 해가 지지 않는 세상을 이루어냈지만 그러는 동안 정작 가까이에 있는 이웃과의 네트워크를 심각하게 상실해가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영화는 그렇게 극도로 온라인에 의존한 현대문명이 어떻게 붕괴할 수 있는지를 그려내고 있지요.
여행지에 와서 크게 느끼게 되는 것은 특별히 한국사회가 물리적 관계와 로컬 네트워크를 빠른 시간 안에 너무 크게 잃어버렸다는 사실입니다. 거리의 누구에게든 웃으며 인사를 건네고 대화를 나누는것이 여전히 자연스러운 이곳의 사람들을 보며, 바로 앞집의 이웃과도 눈길을 주고받지 못하는 시공간에 내가 살고 있었음을 삶의 자리를 떠나보면서 비로소 깨닫게 됩니다. 우리는 어쩌다 이렇게 불신으로 가득하며 철저히 단절된 사회를 이루게 되었을까요? 이웃의 곁에 기대기보다 로켓배송과 애견호텔 서비스를 선택하는 것이 훨씬 수월한 사회에서, 결국 이득을 보는 이들은 과연 누구일까요?
여행 중 저의 오랜 버킷리스트 하나를 이루었습니다. WWOOFing 이라는 활동인데요, 친환경 유기농업을 적극적으로 추구하는 농가에 머물며 약간의 노동을 댓가로 숙식을 제공받는 프로그램입니다. (한국에서도 할 수 있습니다. wwoofkorea.org ) 우핑에서는 농업과 관련한 스킬들 뿐 아니라 동물을 돌보는 일이나 지역의 활동에 참여하는 등의 많은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호스트로 만나게 된 Beckie와 Carl에게 정말 소중한 배움을 많이 얻었지만, 이들의 곁에서 며칠을 지내며 가장 깊이 느낀 아름다움은 바로 지역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살아가는 삶의 방식입니다. 가능한 스스로 식량을 생산하고, 직접 만들 수 없는 것은 가까운 곳에 사는 이웃으로부터 얻습니다. 돈은 대형마트나 대기업이 아니라 지역의 이웃들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소비하고, 마을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적극적으로 참여합니다.
세계화로 인해 파멸하는 지구생태계를 걱정했던 헬레나 호지가 대안으로서 오래도록 주창한 ‘로컬의 미래‘를 이들은 적극적으로 실천하고 있었지요. 이것은 세상을 등지고 오직 홀로만 안전한 방공호로 파고들어가 거짓된 친밀함을 탐닉하게 만드는 현대자본주의 사회논리에 분명한 균열을 일으키는 즐거운 저항입니다. 내 삶의 자리로 돌아가면 무엇부터 해볼 수 있을까 상상해보자니 심장이 쿵쾅거립니다.
한국의 하늘은 물폭탄이 들이붓는데, 북미대륙의 하늘은 바짝바짝 타들어갑니다. 작년 이맘때 불타버린 나무들이 끝도 없이 펼쳐진 벌판에서 올해 또다른 산불이 타오르는 것을 여행중 목격했습니다. 일상에서 벗어난 공간 속에서 참 좋은 것도 많이 보고 누렸지만, 여전히 숨통을 짖누르는 현실이 보이기에 혼란한 마음입니다. 그러나 한편 돌아갈 곳을 아는 쉼의 자리가 더욱 가치롭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혼돈한 세상속에서 저와 같이 갈팡질팡 하는 마음으로 휴가를 보내셔야한다면, 이 영화, <리브 더 월드 비하인드>를 권합니다.
글 / 편집디자인 강원중
2024년 7월 22일 월요일
모두를위한기독교영화제 주간모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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