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주간모기영 215호

[샤샤의 ‘샤샤샧’] <기이한 생각의 바다에서>(2026)

2026.10.10 | 조회 8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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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샤의 ’샤샤샧‘]

<기이한 생각의 바다에서>(2026)

 

<기이한 생각의 바다에서>라는 제목, 김우창이라는 나에겐 생소한 이름, 그리고 다큐멘터리라는 장르, 내가 자긴 정보는 이 세가지가 전부였지만 망설임 없이 선뜻 관람일정을 정했다. 책이든 영화든 고르기 전에 후기와 별점을 샅샅이 뒤져보고, 보고나서 기대한 바에 못 미치거나 예상과 다르면 내 돈과 시간을 돌려내라며 광분하는 유형의 사람들이 있다. 나는 대부분 그냥 직관적으로 끌리면 한번 거들떠본다는 주의다. (게으르고 즉흥적이라는 말대신 직관적이라 포장해본다.) 그리고 대부분 그런 선택을 후회하기보다 오히려 아무 정보가 없었기에 세렌디피티의 순간들을 만나게 되는 경우의 수가 더 많았다. 이번에도 그랬다.

이미지출처: 네이버 영화
이미지출처: 네이버 영화

(노인과 바다… 가 아니라) 노인과 계단

눈 오는 겨울아침 살짝 비척대는 걸음으로 나와 빗자루로 현관 앞 계단에 쌓인 눈을 천천히 쓸어내는 한 노인의 모습으로 영화는 시작한다. 반전과 트릭, 치정, 살인같이 자극적인 소재와 도파민에 절여진 나의 전두엽에 오히려 이 한없이 잔잔하게 이어지는 일상의 풍경이 또렷이 각인된다.

영화 후 GV시간이 있다는 사실도 모르고 갔던 나는 최정단 감독이 이제 아흔이 된 이 노교수의 일상을 무려 21년에 걸쳐 카메라에 담고 편집에만도 6-7년의 시간이 걸렸다는 사실에 놀랐다. 2배속으로 영화를 돌려보는 것도 모자라 요약본 유투브 링크를 AI에게 다시 요약해 달라고 하는 이 시대에 보이후드처럼 소년의 성장과정을 담기위한 12년의 촬영도 놀라운데말이다. 주인공인 김우창 교수는 고려대 명예교수이자 한국 인문학계의 원로로, 2022년 금관문화훈장을 받은 한국의 대표적 사상가로 꼽힌다고 한다. 물론 이 사실도 극장을 나선 뒤에야 알았다. 감독조차 “2030 젊은 세대는 김 교수를 모른다”고 냉정하게 진단했다는데, 그렇다, 나는 2030이 아니지만 몰랐다. 어쨌든… 아무 사전지식 없이 앉은 내 눈에는 중간중간 인용되는 강연과 저서, 그의 사상과 학문적 성취보다 한 인간의 노년이 먼저 들어왔다.

영화내내 살짝 비척대는 노인특유의 걸음걸이 그리고 끝없이 등장하는 계단과 비탈들이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장감을 자아낸다. 그러다가 먼 발치서 롱테이크로 잡은 샷에서 귀가길 대문앞 비탈길에서 기어이 맥없이 풀썩 넘어지고야 마는 장면에선 그 어느 스릴러 못지 않게 놀란 탄식들이 터져 나온다. (최정단 감독도 GV에서 우연히 본 영화리뷰 중 끝없는 계단과의 아슬아슬한 스릴러, 이영화의 장르가 스릴러인줄 알았다는 평을 언급하며 함께 웃었다.)

사계절 내내 변하는 무성한 정원의 눈부심, 그와 대조적으로 세월이 켜켜이 쌓이며 구석구석 쇠락하는 오래된 집. 물이 새는 지붕, 색이 바랜 책들, 세상을 떠난 아버지가 입던 양복을 소매가 다 헤지도록 여전히 입는 노교수. (그 양복이 여전히 멋있어서 더 얄밉고 더 뭉클하다.) 카메라는 학자로서의 성취와 명예의 순간 바로 다음 컷에 응급실에 실려 가는 인간의 연약함을 놓는다. 사유의 세계와 노쇠하는 육체, 색채 가득한 자연과 무채색의 실내를 쉬지 않고 교차시킨다. 생각하는 인간에게도 육체라는 유통기한이 있다.

다만 지성의 유통기한이 언제 끝나는지는 알 수 없다. 몸이 늙는 속도와 정신이 쇠퇴하는 속도가 꼭 일치하는 것도 아니다. 김우창은 여전히 생각하고, 읽고, 쓰고, 강의하고, 시를 읊는다. 그러나 의사가 질병의 목록을 읽어주는 병원에서는 사정이 달라진다. 세계를 해석해 온 주체가 자기 몸에 일어난 일은 타인의 설명을 들어야 하는 객체, 환자가 된다. 영화제목 〈기이한 생각의 바다에서〉는 김우창 교수의 저서 제목이기도 하다. 또 이 책 제목은 워즈워스의 시<서곡>에서 젊은 워즈워스가 케임브리지 기숙사 침대에서 내다보던 트리니티 칼리지 예배당의 뉴턴 조각상을 묘사한 시구절에서 따온 듯하다.

The marble index of a mind for ever Voyaging through strange seas of Thought, alone. (영원히, 낯선 사유의 바다를 홀로 항해하는 정신의 대리석 표상) 그러니까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낯선 사유의 바다를 홀로 영원히 항해하는 정신의 상징이라고 뉴턴의 조각상을 묘사한 건데 marble과 marvel의 발음이 비슷하니 이중적인 시어로 읽힐 수도 있지 않을까? 영원히 항해하는 위대한 정신이란 어쩌면 조각상으로나 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살아 있는 정신은 늘 어떤 몸에 세 들어 살고 몸은 노쇠해지고 비척거린다. 사실 영화에 대한 정보가 전무한 채로 관람하는 바람에 나는 김우창 교수가 생존해계신 줄 모르고 혹시 영화 가 그에 대한 애도로 끝나는게 아닐까 홀로 마음을 졸였다.(교수님께 죄송합니다.)

사유하는 인간의 한계, 사랑하는 인간의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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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철학이 무용해지는 건 아니다. 철학이 인간의 유한성을 없애주지 못한다는 것과 유한성을 사유할 가치가 없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다만 우리는 종종 지성을 너무 많은 것을 해결해 주는 능력으로 착각한다. 많이 알면 더 잘 살 것 같고, 삶을 깊이 이해하면 적어도 삶의 막바지에서만큼은 덜 무력할 것 같다. 그러나 인간은 이해하는 존재인 동시에, 이해한 대로 살아갈 수는 없는 존재다.

문득 미카엘 하네케의 영화〈아무르〉가 떠올랐다. 이 영화도 프랑스어 수업을 위해 아무정보 없이 관람한 세렌디피티 같은 영화였다. 은퇴한 음악 교사 조르주와 안느는 오랫동안 함께 살아온 부부다. 안느가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 말하고 걷고 스스로를 돌보던 사람은 점점 타인의 도움 없이는 살기 어려운 상태가 된다. 조르주는 아내를 돌보지만 그의 사랑이 아내의 몸을 회복시키지는 못한다. 두 사람이 쌓아온 세월도, 문화적 교양도, 서로를 향한 애정도 질병 앞에서는 무력하고 결국 조르주는 충격적일 수도 있는 선택을 하는데.. 모든 장면이 잔잔하고 고요하지만 동시에 격정적이고 드라마틱한.. 영화를 직접 보는 체험을 통해서만 이해가 되는 설명하기 어려운 영화다. 조용조용 흐르지만 보고나서 오랜 여운과 잔상을 남기는 점도 비슷하다. 영화를 보고나서 알게되었지만 깐느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기이한 생각의 바다에서〉카메라가 노쇠해가는 철학자의 걸음을 오랜 시간 관찰한다면, 〈아무르〉는 사랑하는 사람의 몸이 무너질 때 곁에 남겨진 사람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묻는다. 한쪽에는 사유하는 인간의 한계가, 다른 쪽에는 사랑하는 인간의 한계가 있다. 생각은 죽음을 논박할 수 없고, 사랑도 고통을 대신 앓아줄 수 없다.

인간은 죽는다. 이 절대적인 한계가 인간을 사유하게 하고 존재의 근원을 묻게하고 신을 의지하며 사후세계를 소망하게 만든다. 우리는 흔히 ‘인간의 존엄’을 말한다. 그런데 그 존엄은 과연 무엇에 근거하는가?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능력? 자기 삶을 결정하는 자율성? 아니면 사회에 기여하는 생산성? 만약 그렇다면, 생각하고 결정하고 생산하는 능력이 사라져갈 때 인간의 존엄도 함께 줄어드는 것일까. 다큐 한 편 보고 나와서 하기엔 다소 무거운 고민이지만, 마음속에 꼬리를 물고 질문이 따라붙어 버린 것을 어쩌겠는가.

기독교적 관점에서도 이 질문은 피하기 어렵다. 인간의 존엄이 능력이나 성취에 대한 대가가 아니라면, 노쇠하고 의존적이며 더는 자신을 돌볼 수 없는 이의 존엄 역시 결코 타협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은총'이라는 개념이 소중한 이유는, 인간의 가치가 그가 해낸 일이나 유지하고 있는 능력으로 결정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일깨워주기 때문이다. 가치는 획득하는 것이 아니라 발견되는 것이듯 말이다.

믿음이 죽음을 없애주지 못하고, 은총이 있다 해서 병든 몸이 당장 회복되는 것도 아니며, 사랑이 있다고 해서 돌봄의 노동이 가벼워지는 것도 아니다. 고통을 신앙의 언어로 매끄럽게 설명하는 일과, 고통받는 사람의 곁에 실제로 끝까지 남아있는 일 사이에는 여전히 아득한 거리가 존재한다.

어쩌면 신앙의 진정성이란, 고통에 그럴듯한 의미를 부여하는 찬란한 능력보다, 끝내 의미를 찾을 수 없는 고통 앞에서도 한 인간을 함부로 버리지 않고 곁을 지키는 그 묵묵한 태도에서 비로소 드러나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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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회 모기영 트레일러 전격공개!!

 

8회 모기영 트레일러가 공개되었습니다. 하이-파이, 로-파이 라는 올해의 주제로 허성 다큐멘터리 감독과 함께 했습니다. 

클릭하면 트레일러가 재생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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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회 모기영 트레일러의 모든 영상 소스는 2005~2006년 사이 소형 DV 캠코더로 촬영된 것으로, 특정한 목적 없이 기록된 일상의 단편들이다. 열차의 도착과 길 위를 이동하며 마주한 풍경을 중심으로, 그 길 위에 남은 흔적과 사유, 무엇보다 영화가 매 시대에 던져 온 질문을 떠올리며 이미지를 배열하였다. 이 영상들은 촬영 당시에도 고화질과는 거리가 있었으나, 20년의 시간을 거치며 한층 짙어진 저화질 이미지의 질감이 해상도의 결핍을 넘어 하나의 미학적 재료로 받아들여지기를 기대한다. 아울러 그 질감이 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보는 경험의 감각을 오히려 충실하게 환기해 주리라 믿는다.

허성 (다큐멘터리 감독)

🤝 모기영 x 시사N라이프 파트너십 체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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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기영(집행위원장 강신일 배우)과 시사N라이프(대표 윤준식)가 지난 24일 파트너십을 체결했습니다!

“이번 협약에 따라 시사N라이프는 모기영의 메인 언론 파트너로서 영화제와 관련한 다양한 소식을 보다 빠르고 깊이 있게 독자들에게 전달할 예정이다. 상영작과 프로그램, 게스트 등 영화제의 주요 소식은 물론 현장의 생생한 이야기까지 폭넓게 다룰 계획이다.

양측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협력의 범위를 넓혀가기로 했다. 모기영이 걸어온 시간을 기념하고 기록하는 단행본 발간도 함께 논의할 방침이다. 영화제가 쌓아온 발자취를 책으로 남겨 관객과 영화계에 의미 있는 기록물로 선보인다는 구상이다.

최은 부집행위원장은 "시사N라이프와 함께하게 되어 든든하다. 영화제의 이야기를 더 많은 분께 알리는 데 큰 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윤준식 대표는 "모기영의 의미 있는 여정에 동행하게 되어 기쁘다. 영화제의 가치를 널리 알리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앞으로 더 빠릿빠릿한 모기영 소식! 시사N라이프와 함께 하는 8회 모기영 많은 기대 부탁합니다!!

8회 모두를위한기독교영화제 커밍 쑨~~

 

𝟴𝘁𝗵 𝗖𝗵𝗿𝗶𝘀𝘁𝗶𝗮𝗻 𝗙𝗶𝗹𝗺 𝗙𝗲𝘀𝘁𝗶𝘃𝗮𝗹 𝗙𝗼𝗿 𝗘𝘃𝗲𝗿𝘆𝗼𝗻𝗲

𝟭𝟭.𝟭𝟵 - 𝟭𝟭.𝟮𝟮

 

 


글 샤샤
편집디자인 모기영 편집부

2026년 10월 10일 토요일

 

모두를위한기독교영화제 주간모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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