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테_작가 이야기

학교 밖에서 학교를 보는 방법

여덟 편의 첫 소설 6 — 배경은 장식이 아니라 질문입니다

2026.10.01

 


안녕하세요, 생각의 숲 김혜원입니다.

 

오늘은 여덟 편의 첫 소설 시즌의 마지막 편입니다. 생각의 숲에서 원고를 쓰는 작가들의 이야기와 근황은 앞으로도 [나이테]를 통해 매달 전해 드릴게요. 작가들의 성장을 저희만 보기엔 너무 아깝거든요. 작가로 커가는 십 대들의 소식, 부지런히 전하겠습니다.

 

오늘 소개해드릴 작가와 소설은 조금 특별합니다. 학교가 나오지 않는 학교 소설을 쓴 E작가에 대한 이야기에요. 2기의 이야기 씨앗은 '학교'입니다. 학교에 대한 문제의식과 나만의 이야기를 쓸 작가들이 모였어요. 책의 주제인거죠. 하지만 E 작가는, 학교 이야기를 쓰지 않았습니다. 학교가 등장하지 않아요. 그런데 글을 읽고 나면 학교와 교육, 배움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학교 밖에서 자란 작가의 시선

6월에 E 작가에게서 긴 편지를 받았습니다.

E 작가는 학교 밖의 십 대입니다. 그래서 학교를 무대로 쓰라는 우리 프로젝트 앞에서 잠시 멈췄다고 해요. 자신은 학생도 교사도 학부모도 아닌 제삼자이기 때문에요. 대신 그 자리에서만 보이는 걸 쓰겠다고 했습니다. 편지의 논지는 이랬어요. 아이들은 평범한 교육이라는 사슬에 묶여 있다. 배울 학에 익힐 습이 학습인데 학교는 배우게만 하고 익히게 하지 않는다. 설계도를 달달 외운 사람을 건축 현장에 세우는 것과 같다. 그리고 십 대들에게 묻고 싶은 질문이 두 가지 있다고 했어요.

 

저는 답장으로 작가님의 무기는 안에 있는 사람은 절대 볼 수 없는 각도에서 학교와 사람을 볼 수 있다는 점이라는 것을 확인해 드렸습니다. 우리가 하나의 주제에 대해 각자의 글을 쓰는 건 세상에 하나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E 작가님은 이미 그 메시지를 준비하고 온 분이었어요. 그래서 저는 그 편지를 읽으면서 정말 기뻤습니다. 이제 남은 건 그 메시지를 어떤 세계에 놓을 것인가, 찾아가는 것뿐입니다.

 

E작가가 쓰고 있는 소설의 배경은 2050년입니다. 4월부터 비가 그치지 않고 정부는 그해를 대전환의 해로 선포했어요. 학교는 문을 닫았고 모든 학생이 집에서 삽니다. 주인공은 8층 빌딩 꼭대기에서 태어나 한 번도 밖에 나가 본 적 없는 열일곱이에요. 오전엔 법학서를 읽고 이틀에 한 번 어머니가 초대한 손님을 만나 사회 생활을 연습합니다. 그 아이의 창문으로 어느 날 낯선 아이가 들어오면서 이야기가 시작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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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이 하는 세 가지 일

생각의 숲 수업에서 배경을 다룰 때 이렇게 말합니다. 배경은 이야기의 무대 장식이 아니라 세 가지 일을 하는 일꾼이라고요. 분위기를 만들고, 인물을 보여 주고, 테마를 강화합니다.

이 소설에 겹쳐 보면 이렇습니다. 4월부터 그치지 않는 비는 이야기 전체의 분위기를 만들고, 8층 꼭대기에서 손님맞이로 '사회'를 연습하는 하루는 주인공이 어떤 아이인지 설명 없이 보여 줍니다. 그리고 학교가 문을 닫은 세계라는 배경 그 자체가, 이 소설이 던지려는 질문을 담는 그릇이에요. 배경이 곧 질문인 소설. E 작가의 원고가 정확히 그렇습니다.

 

학교를 지워서 학교를 본다

배경으로서 학교라는 공간은 여러 층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중 마지막 층위를 우리는 관계적 공간이라고 불러요. 같은 건물이라도 주인공 눈에 보이는 학교와 인기 많은 아이 눈에 보이는 학교와 괴롭힘당하는 아이 눈에 보이는 학교는 같은 학교가 아니거든요. 주인공의 위치가 공간을 결정합니다. 그리고 이건 인물만의 이야기가 아니에요. 쓰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작가가 서 있는 자리가 작가가 볼 수 있는 학교를 결정해요.

학교에 소속되어 있지 않은 사람은 학교를 안에서 보고 있지 않으니 안을 묘사할 수 없어요. 매 시간 보고 듣는 작은 디테일을 표현하는 건 힘들어요. 하지만 안에 있는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것들을 볼 수 있을 겁니다. 어쩌면 그 시선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대담하고, 흥미로울 거예요.

원고의 정점에서 독자들에게 던지는 질문, 그건 배움의 본질에 대한 열아홉 살 작가의 질문입니다. 어떤 장면에서 어떤 대사로 나오는지는 책을 위해 아껴 둘게요. 다만 이것 하나는 적어두고 싶어요. 편지에 있던 설계도 비유가 원고 안에서 대사로 멋지게 피어났다고요. 저는 그 한 줄이 편지 전체가 소설로 바뀐 순간이라고 읽었어요. 책으로 아는 세상과 몸으로 겪는 세상 사이의 거리. 학교가 사라진 세계에서 아이들이 잃는 건 수업이 아니라 경험이에요. 이 작가는 학교를 지우는 이야기를 통해 그 이야기를 하고 있었어요. 집안에서만 생활하며 모든 것을 배울 수 있지만 실제로 바다에 한 번도 못 가 본 아이에 대한 이야기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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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 대 들은 어떤 경험으로 십 대를 채우고 있을까

저는 눈코 뜰 새 없는 요즘 십대들을 보면서 가끔 그런 생각을 합니다. 우리 아이들의 십 대는 어떤 경험으로 채워져있을까. 성실하게 학교를 다니고 공부를 하고, 경쟁과 협력을 배우고, 자신의 미래를 위해 노력하는 것은 가치있고 중요한 일입니다. 하지만 그 빡빡한 짜임 속에서 잃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어요. 십 대는 배우는 시기인데, 과연 그 배움을 위한 교육이 잘 돌아가고 있는 것인지요.

교육학에서 이 이야기는 오래됐어요. 듀이는 《경험과 교육》에서 교육이 경험의 연속과 재구성이라고 했고 콜브의 경험학습 순환은 구체적 경험에서 시작합니다. 책으로 아는 것은 그 순환의 바깥이에요. 진짜 경험을 통해서만 알 수 있는 것들이 분명히 있다는 거예요. 그 경험은 어떻게, 어디서 할 수 있을지 질문해 봅니다.

E 작가의 생각 끝에 닿은 것도 그런 의문일 거예요. 다만 작가는 이론을 인용하지 않고, 서사로 그냥 보여주었습니다. 집안에서만 생활하며 모든 것을 배울 수 있지만 실제로 바다에 한 번도 못 가 본 주인공이 유독 인상적인 이유였습니다.

경험에 대한 생각 한 가지 더. 이 작가 세대는 학교가 문 닫은 세계를 상상한 게 아니라 기억하고 있어요. 2020년과 2021년에 이 아이들은 초등학교 고학년이었습니다. 그리고 코로나로 인해 단절된 시간을 보냈어야 했죠. 교육부가 2021년부터 3년간 여덟 개 교육청의 초등 3학년을 5학년까지 추적한 연구에서 국어 역량 저하와 학력 격차 확대가 나타났고 심리 정서 불안과 사회성 저하가 함께 보고됐어요. 학교가 사라진 세계는 이 세대에겐 단순한 SF가 아니에요. 지나온 시간입니다. 어쩌면 이 소설 속 2050년은 2020년의 기억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책으로 아는 것과 몸으로 겪은 것

 

부모님께 드리고 싶은 건 이 작가의 두 질문이에요.

 

그 대학을 졸업하면 어떻게 살 것인가? 
지금 행복한가? 

 

이 질문은 아이에게 던지는 것 같지만 사실 부모에게 돌아옵니다. 아이의 하루에서 책으로 아는 것과 몸으로 겪은 것의 비율을 정하는 사람이 부모니까요.

학교 안이냐 밖이냐는 그다음 문제예요. 여성가족부의 2023년 조사에서 초등학교 때 학교를 그만둔 아이들의 이유 1위는 부모의 권유였어요. 대안교육이나 홈스쿨링을 위해서요. 학교 밖을 고르는 것도 부모입니다. 어느 쪽을 고르든 부모가 만드는 건 아이가 몸으로 겪는 것의 총량이에요. E작가의 주인공은 8층 꼭대기에서 세상의 모든 지식을 읽었지만 바다에 가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 아이를 그렇게 만든 건 학교의 부재가 아니라 어머니의 선택이었어요.

 

  해보기 — 올해 아이가 처음으로 몸으로 겪은 일 하나를 떠올려 보세요. 

처음 혼자 탄 버스, 처음 만든 음식, 처음 가 본 바다. 없다면 이번 달 안에 하나를 만들어 주는 건 어떨까요?

 

 


 

배경이 하는 세 가지 일

 

  1. 분위기를 만든다 — 빛·소리·냄새·온도가 그 공간의 온도를 정한다
  2. 인물을 보여 준다 — 어디에 앉는지 어떻게 걷는지가 그 아이를 말한다
  3. 테마를 강화한다 — 공간을 어떻게 그리느냐가 세계를 어떻게 보는가를 드러낸다

눈 말고 감각 하나만 더 쓰면 장면이 입체가 됩니다.

 

함께 읽기 — 오늘의 한 권과 한 통

《경험과 교육》 존 듀이 — 교육은 경험의 연속과 재구성이라는 원문. 얇고 오래된 책이라 부모가 먼저 읽기 좋습니다.

 

 

11호 「어른은 기후를 대비하고 십 대는 그 안에서 살게 됩니다」 — E작가의 2050년 비가 어디서 왔는지 볼 수 있어요. 

 

 

오늘 심을 한 가지 생각

 

아이가 책으로는 알지만 몸으로는 아직 모르는 것 하나를 답장으로 들려주세요.

그리고 그걸 언제 겪게 해 줄 생각인지도요. 그 계획이 이번 주 부모의 자리입니다.

 

 

 

 

 

 

여덟 편의 첫 소설 시즌은 오늘로 마칩니다. 여기 다 담지 못한 작가들의 이야기는 매달 [나이테]에서 이어 갈게요. 다음 주에는 새로운 이야기로 찾아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생각의 숲에서,

 

김혜원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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