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로 휘발되지 않을 기억을 그곳에 묻고 오다

아버지의 낡은 버너

2021.05.11 | 조회 48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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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대생의 심야서재 뉴스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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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로 휘발되지 않을 기억을 그곳에 묻고 오다

아버지는 산에 오를 때마다 등산 배낭에 '휘발유 버너'를 넣어 다녔다. 몇 살이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지만 군데군데 퍼렇게 녹이 슬어서 본래의 빛깔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낡은 딱지들이 덕지덕지 붙어있던 버너의 기억은 아직 선명하게 남아있다. 80년대만 하더라도 산에서 취사가 가능했으니, 아버진 그 도구를 사용해서 무에서 유를 창조해볼 작정이었던 것 같다. 그것은 아마도 작품으로 인정받고 싶었을 테지만, 미완성으로 남게 될 무명작가의 마지막 혼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적어도 내 세상 안에서는 말이다.

고개를 땅바닥에 푹 숙이고 한참을 오르고 오르다, 적당하게 앉을 만한 자리 그러니까 길에서 조금 비켜난 계곡 아래 어디쯤, 바람도 볕도 없고 물조차 말라버린 황무지 같은 곳을 발견했다. 인적이 사라진 곳, 두 사람이 겨우 앉을 만한 다소 평평한 거처에 자리를 잡고서는, 아버진 배낭 속에서 뭔가를 주섬주섬 꺼냈다. 엉거주춤한 시간이 어색하게 지나면 돗자리가 튀어나오고 그 뒤를 이어 버너가 짠하고 나오고 또다시 코펠이 튀어나오고 온갖 신기한 도구들이 즐비하게 놓였다. 물론 간식이나 한 끼를 때울 먹거리들도 같이 옆에 차려졌다.

아버지는 "넌 옆에 앉아서 구경이나 잘해"라고 말하곤 바늘구멍보다 더 작은 입구를 가진 구식 버너에 휘발유를 주입하곤 길쭉하게 생긴, 말하자면 너무 가늘어서 잘못하다간 부러질 것 같은 피스톤을 양손을 이용해서 압력을 가하기 시작했다. 휘발유를 넣는다고 바로 불이 붙지 않는다는 사실, 라이터는 아무 소용이 없다는 사실, 그 짜증나는 사실 때문에 나는 버너가 폭발할까 싶어 커다란 바위 뒤로 달아났지만… 마치 모든 일에는 준비 작업이 정성스러워해야 하고 예열이 필요하다는 것을 실전 교육이라도 시켜주는 것처럼 나는 아버지의 자세를 조심스러우면서도 불안한 자세로 구경했다.

그 낡고 닳아빠진 버너는 절대 회생이 불가능할 것처럼 보였지만, 수십 번, 아니 수백 번의 걸친 아버지의 집념으로 결국 살아나긴 했다. 되살아난 버너 덕분에 우린 얼큰한 김치찌개 국물에 숟가락을 얹힐 수 있었다. 계곡을 타고 날아오르는 5월의 서늘한 바람이 간혹 바람막이를 툭툭 건드리며 불씨를 꺼뜨리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뒤늦게 타오른 불빛도 김치찌개의 매운 맛도 절대 꺼지지 않을 만큼 강렬했다.

먼 기억이란 그때 타오른 버너의 파란 불빛처럼 나직하지만 꽤 오래가는 편인 것 같다. 어떤 기억은 지우려 억지로 노력해도, 등지려고 발악해도 절대 돌아설 수 없겠다고 나에게 저항한다. 기억은 그때마다 심연 어딘가에서 인출이 되지만 어떤 취급을 당하게 될지 현재의 나로서는 글을 쓰기 전에는 도통 알 수 없다. 유통기한이 만료되어버린 상한 음식들처럼 기억은 그런 하찮은 취급을 당하기 싫은 걸까. 기억이란 본래 그런 성질을 가진 걸까.

난 아버지의 낡아빠진 버너가 창피했다. 누군가 아슬아슬한 그 광경을 볼까, 내 작은 등으로 감추고 싶었지만 그건 힘든 일이었다. 등산로가 됐건, 커다란 바위 뒤쯤이 됐건, 되살아날 기미도 보여주지 않는 버너에게 집착하는 아버지의 안간힘을 오래도록 바라보는 거 자체가 너무 지루하고 싫었다. 왜 싫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견디기 싫은 내 성격 탓일지도, 낡은 물건에 집착하는 아버지가 안쓰러워서일지도. 부르스타와 같은 신문물을 가진 이모네와 비교되는 게 싫었을지도 모른다. 라이터만 켜면 한 방에 환하게 켜지는 새로운 체계가 부러웠을 것이다. 그렇게 나는 아버지의 낡은 버너가 우리 집의 가난을 대표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그런 이물감에도 버너는 오래도록 제 임무를 해냈다. 돼지고기와 김치의 조합은 썩 잘 어울렸고, 여간해서 김치에 손대지 않던 나조차 산에서 먹는 김치찌개의 맛은 지금 생각해 봐도 최고의 콤비네이션이었으니까. 그걸 만들어 준 것도 결국 낡은 버너의 마지막 승리인 셈이었으니까.

그 버너는 붉은 노을이 뜨는 직전까지 서서히 타오르다, 태양의 몰락과 함께 빛을 잃어갔다. 집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 왔다는 신호, 그만큼의 휘발유가 소모됐으니 집으로 돌아가야 했겠지, 아버지와 난 어쩌면 짧게나마 붉은 시간을 함께 보냈던 것 같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기억, 절대로 휘발되지 않을 기억을 그곳에 재로 묻어놓고 돌아왔지만, 난 아직도 그 위치를 찾아내고 판독하기 위해 이렇게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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