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에 월급 루팡이라는 부캐를 추가하기로 했다

낮과 밤이 바뀐 공대생의 모임 운영 이야기

2021.05.19 | 조회 8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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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대생의 심야서재 뉴스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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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과 밤이 바뀐 공대생의 모임 운영 이야기

Episode 5 - 내 인생에 월급 루팡이라는 부캐를 추가하기로 했다

대표의 연설이 시작되는 어느 평범한 회사의 주간 업무 보고 시간, 대표의 말이 시작됨과 동시에 나는 너무 졸린 바람에 입을 하마처럼 벌리고 말았는데, 마스크 덕분에 들키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이었달까, 그렇다고 보여도 딱히 문제 될 건 없을 것 같았지만.

대표가 중대한 이야기를 발표한다니 비관적인 미소 - 눈으로는 웃은 채 - 로 그의 이야기를 잠시 들어보기로 했다. (마스크 뒤로 숨는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가)

"요즘 근무시간 지키지 않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 같은데 말이야. 늦게 나오는 건 좋아. 그런데 그만큼 규정된 근무시간을 채우고 퇴근하는 건지 모르겠단 말이지. 그리고 솔직히 야근하는 사람들도 그래, 사람들 다 퇴근하고 나서 혼자 남으면, 열심히 일하는지 노는지 누가 아냐고. 어쩌면 법인카드로 치킨 한 마리 시켜놓고 쇼핑이나 실컷 하다가 퇴근할 확률이 더 높지 않겠어? 그러니 차라리 정시에 출근해서 업무 시간 동안 만이라도 성실하게 근무하라고!"

음, 대표의 이야기를 성실하게 들으려 했지만 집중력 탓에 대충대충 듣고 말았다. 그럼에도 짜증이 솟구쳐 오르는 바람에 마스크를 그만 던져 버릴 지경이었다. 혹시 나를 감시라도 하는 건가? 싶었다. 하지만 나는 분위기를 반전시켜볼 작정으로 질문 한 가지를 불쑥 내던졌다.

"대표님의 말씀 잘 들었습니다. 지금부터 합평을 (아 지금은 합평 시간이 아니다. 정신 차리자) 아니 말씀을 듣고 보니, 성실하게 일하는 사람들은 모두 정시에 출근한다는 개념으로 받아들여도 될까요?"

"그렇지"

"그럼 불성실하게 근무하는 사람들은 보통 지각하는 일이 잦을 테고요"

"대체로 그런 편이지. 사람은 무엇보다 근면 성실한 태도가 중요하단 말이야. 태도!"

"그렇다면, 성실하게 일한다는 조건은 근무시간, 즉 출근시간과 퇴근시간을 잘 지켜야 한다는 걸 뜻하네요?"

"그렇지, 맞아. 내가 곧 법이니 반드시 법을 따라야지. 설사 악법이어도 말이야. 테스 형(소크라테스)도 그랬다잖아."

"규칙을 잘 지키는 사람들은 성실하게 근무할 테니, 실적도 성실성에 비례하겠네요? 또 그들은 회사에 대한 불만도 거의 없겠고요. 회사에서도 그런 사람들은 위해 월급도 꼬박꼬박 올려줄 테죠?"

"맞아 성실하게 일하면 실적도 저절로 올라갈 테니 연봉도 올라가고 성과급도 두둑하게 받아 가게 되겠지!"

"그런데 연봉이란 건 그 사람이 거둔 업무 성과, 생산성, 능력에 따라 반영되는 게 아닌가요? 영업직이 근무 시간만 잘 지킨다고 연봉을 올려주는 건 아니잖아요?"

"당연하지. 성실한 게 전부가 아냐. 실적을 올려야지."

“그런데, 우리 회사는 호봉 제라 실적 내지 않아도 연봉이 꼬박꼬박 올라간다고 하던데요?”

“음. 듣고 보니 그러네.”

"좀 전에는 성실성을 중요하게 말씀하셨는데, 지금은 성과와 능력을 다시 언급하시네요? 그렇다면 직원의 능력을 판단할 기준은 뭘까요? 예를 들어, 개발자의 개별 생산성을 측정할 수 있는 평가 시스템이 회사에 존재하나요?"

"그런 건 아직 도입하지 않았어. 그런 기준이 없어도 지금까지 회사가 잘 굴러갔으니까. 아무튼, 그런 시스템이 우리 회사에 없으니까, 근무 시간이라도 제대로 지켜달라는 거야. 아니면 네가 만들던지."

"대표님의 말씀은 우리 회사에 평가 시스템도 없고, 그 어떠한 객관적인 기준도 없으니 오직 근태 시간만을 가지고 직원의 능력을 평가하자는 말씀이네요? 게다가 개인에게만 책임을 추궁하고요."

"뭐야? 지금 뭐라고 말했어?"

대표와의 대화는 더 진전되지 않았다. 대표와 이야기를 나눌수록 그의 눈빛에서 살기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 역시 몸을 사려야 하는 입장이니까. 더 진하게(?) 대화를 나누다간 책상이 사라지든가, 노트북이 아작 날지도 모를 일이라서. 내 소중한 M1 맥북.

회사는 몇 달 전 개발자를 충원하기 위해 구인 사이트에 공고를 올렸다. 때마침 커뮤니티 사이트에서는 개발자의 연봉이 이슈가 됐다. 개발자 초봉이 7천~8천에 육박하는 시대가 됐다나. 몇 사람을 면접했지만, 실력 있는 사람을 찾기도 힘들었지만 대부분이 면접 자체를 기피하는 바람에 사람을 뽑을 기회를 갖지도 못했다. 주 3일만 출근하는 나로서는 연봉의 60%만 받는 조건으로 계약서에 사인했는데, 손해 보는 기분이 든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회사는 100%의 급여를 지급하건 60%의 급여를 지급하건 오직 일의 결과만을 놓고 판단했으니까.(내 성실성은 어디로?)

대부분의 회사는 문제점을 간파하고 있다. 물론 해결책도 잘 안다. 하지만 문제점을 개선하는 것보다 때로 방치하는 게 회사에 이익이 되므로, 이런 단순하기 짝이 없는 ‘근태’라는 수단으로 직원을 압박한다. 근태는 직원을 감시하는 가장 간단하면서도 편리한 통제 수단이니까.

월급을 전제로 우리는 회사의 규칙을 지키겠다고 선언한 셈이다. 직장에서 한 달 살이 인생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지금까지 소비한 그 시간만큼의 능력과 에너지를 회사에 제공했으며, 실적도 냈다. 하지만 그만큼의 보상을 충분하게 받았을지, 의문이다. 그래서 나는 '월급 루팡'이라는 부캐를 직장인의 이력에 추가하기로 했다. 이 모든 것의 책임은 대표에게 있다.

우리는 근무시간을 잘 지키려고 노력하지만, 반대편으론 어떤 규칙이든 가끔 어긋나고 싶어 한다. 그러나 이런 규칙을 깨려는 나와 같은 유형은 회사에서 살아남기 어렵다. 나 같은 유형의 인간은 시스템의 에러니 빨리 사라져야 할 것이다. 회사에서 사람 하나 제거하는 게 얼마나 어려울까. 어차피 회사에 들어가고 싶은 사람은 줄을 섰고, 자리는 늘 한정되어 있으니까. 하지만 개발자는 적어도 그렇지 않은 세상이 왔다. 지금은 개발자 우위 시대다. 내 연봉, 내 복지 직접 챙겨 보자. 나처럼, 월급 루팡이 되는 한이 있더라도. 내가 어떻게 어떤 전략을 펼쳤냐고? 궁금하다면 비밀 댓글에 의견을 남겨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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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3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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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열말

    0
    almost 3 years 전

    하하하하 공심님 정말 대표님께 저렇게 직언하셨나요? 우와, 오늘부터 공심님 존경하기로 했어요. 대단해요 엄지척!!!

    ㄴ 답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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