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고 돌아 제자리로

풀타임 직장인으로 복귀하다.

2021.05.18 | 조회 56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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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대생의 심야서재 뉴스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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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고 돌아서 결국 제자리에 도착했다. 뒷걸음질 치지도 의도한 것도 아니었지만 아무튼 결과적으로 과거를 복구한 모양새가 됐다. 삶은 그럭저럭 복원됐으나 완벽하게 재조합되지는 못했으니 제자리,라는 말은 내 착각일지도 모르겠다. 내 손에 든 것은 결국 아무것도 없는 셈이 되었으니.

2019년 초, 다니던 회사에 퇴사를 통보하고 곧바로 주 3일만 나가는 직장인이 됐다. 덕분에 낮 시간 카페에 죽치고 앉아 글 쓰는 경험도 갖고 대형서점에서 하루 종일 책 구경도 했으며, 걸어서 5분 거리에 도서관이 있다는 사실에 감격하며 대출 서비스도 처음 경험했다. 모든 것이 퇴사하지 않았다면, 절대 경험해보지 못할 ‘처음’이라는 단어가 붙은 일들이다. 코로나라는 변수가 닥치는 바람에, 그마저도 지금은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말았지만…

역설적이게도 코로나 덕분에 내 모임은 활황(?)을 맞기도 했다. 2020년 초 모임에서 새로운 인연들을 만나 지금까지 관계가 이어지고 있으니까. 코로나에게 감사장이라도 보내고 싶지만, 그만큼 얻은 손해도 만만치 않으니 심심한 감사는 거두련다.

만 3년 넘게 내 인생의 절반은 모임 그 자체였다. 모임을 생각하느라 가족을 등지는 일까지 생길 정도였으니까. 나는 몇 년 동안 모임에 미쳐 사느라 회사는 다녔지만 내 신경의 영역에서 거의 배제하다시피 했다. 하지만 현재의 나는 인생에서 모임을 최대한 배제하려고 애쓰는 중이다. 그 이유는 마치 온갖 시행착오와 역경을 거쳐서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 것과 마찬가지의 상태에 진입했기 때문.

나는 풀타임 직장인으로 복귀했다. 사업자를 폐업시켰고 파트너들이 운영하는 공심재의 모임들도 독립시켰다. 심지어는 모든 수수료도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주 3일 다니던 회사에서는 나에게 요직을 제안했다. 나는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돈이든 명예든 그것에서 자유로울 자신이 없었기 때문. 결국 그간 참여하던 모든 대화방에서 나오는 극약처방까지 내렸다. 물론 이런 선택을 내린 배경에는 생애전환점에서 불투명한 미래를 단념하고 안정적인 과거의 직업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나름의 사정도 존재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의 경계를 분명하게 나누고 싶은 이유가 더 컸다.

한때, 나는 모든 분야를 다 해낼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그냥 해내는 게 아니라 완벽하게 잘 해낼 수 있을 거야,라는 문장을 뒤에 붙일 정도로. 나는 여러 개로 분리되지 않는다. 한 번에 한 가지만 잘 할 수 있다. 나는 멀티플레이어가 아니다. 다능인이라고 불릴 자격도 없다.

과거에는 의욕만 앞서서 채팅방 스무 개 정도야 거뜬하게 드나들 수 있다고, 이방이든 저 방이든 콘텍스트 스위칭만 잘하면 되지 않겠냐고. 내 직업이 개발자인 만큼, 한 가지 일에 몰두했다가도 다른 일로 쉽게 전환하는 편이니 그렇게만 하면 되지 않겠냐고, 섣부른 판단을 내렸다. 하지만 불가능하다. 그렇게 성능을 내는 것처럼 착각하기도 했지만, 그것은 단기간만 가능했다. 효율을 꾸준하게 오랫동안 유지하는 것은 다른 이야기였다.

나는 그 사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어쩌면 꽃이 막 필 무렵에 도전을 포기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난 나의 한계를 명확하게 규정했다고 믿는다. 물론, 조금만 더 참았으면 지금보다 나은 어떤 세계가 나타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모두 가정이다. 그렇게 될지도 모른다는 말, 가망성이 충분히 있어, 절대 포기하지 마,라는 말은 위안이 되지 않는다. 현실에 나에겐 모두 가정일 뿐이다. 가정에 기댄 채 시간을 소비할 만큼, 나는 도박할 생각도 여유도 없다.

그렇게 보면 나는 결단이 참 빠른 사람처럼 보인다. 적어도 외부에서는. 하지만 나는 늘 생각을 많이 한다. 그리고 생각의 장고 끝에 늘 최선의 선택을 하려고 노력한다. 선택도 반복이 되면 적응하나 보다. 물론 선택조차도 그 선택이 틀렸다면 바로 무르면 된다. 사업을 선택했다가 미련 없이 버려버린 2009년처럼 지금도 마찬가지다. 선택은 늘 나에게 우선한다. 나에게 이롭다면, 더불어 타인에게 손해를 끼치지 않는다면, 더 이상 재미를 느끼지 못한다면 그냥 단념하면 그만이다. 내가 하기 싫다는데 누가 말리랴. 내 인생 나에게만 온전히 머물겠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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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4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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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향기

    0
    almost 3 years 전

    누가 막을 수 있겠어요^^ 내가 하겠다는데 말이죠!!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시기였을거라 생각해요!! 각 방마다 공심님이 계시지 않아 아쉬움이 있지만 말이죠~ 저도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것 같아요^^ 번아웃으로 가기 전에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ㄴ 답글 (1)
  • cenoha

    0
    almost 3 years 전

    잘 하셨어요! 다르게 보이는 것들이 생기시겠네요. 이미 그러한지도요. 과감히 시도해 보셨으니 다음 선택은 어떤 것일지 사뭇 궁금해지네요. 돌고 돌아 제자리가 아니라 나선형 성장을 하고 계신 거겠죠. 지친 나를 회복하고 나아가기. 공심님의 시선이 한층 성숙하셨을 듯 합니다. 기대됩니다.

    ㄴ 답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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