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참 이상한 사람입니다.

2021.05.23 | 조회 460 |
2
|

공대생의 심야서재 뉴스레터

오직 글로서만 승부하는 글쟁이의 뉴스레터, 주로 생산성 툴에 관련된 글을 보내드립니다.(가끔 소설도 씁니다.)

풀타임 직장인으로 복귀하고 나서 맞은 첫 번째 주말, 여느 때와 크게 달라 보이진 않았지만 공교롭게도 강의와 휴식이 공존하는 날이었다. 9시간 가까이 밀린 잠을 한꺼번에 몰아쳤지만 피로는 마치 영원히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처럼 정수리에 잔존해 있었다.

왜, 주말은 온전히 그 의미대로 보낼 수 없는 걸까. 나에게 휴식은 무엇이 되는가. 의미 없는 사고에 반복적으로 빠져드는 게 그저 주말이 가진 속성에 불과할까. 그러니 그런 날이야말로 더 마음을 몰아붙이고 더 눈코 뜰 새 없이 시간을 소비하는 것이 마땅한 일이 되는가.

미니멀리즘에 강박증이 걸린 사람처럼 나는 버려야 할 것들과 버리지 말아야 할 것들을 선별해내느라 온전히 쉬지 못했다. 닥치는 대로 무엇이든 분리수거해버린 오늘, 몇 백 년 만에 마법에서 풀렸으나 남은 것은 결국 빈손 하나뿐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하는 그런 얄궂은 하루….

어떤 중대한 계획들을 내 삶에 편입시켰으나 그것이 내 부속품이든 나의 생활 반경 속에서든 절대 같이 조합될 수 없다는 사실, 그런 사실을 받아들이기 싫어서 애써 그 이야기를 다른 방향으로 틀어버리거나 다른 물건으로 재포장해서 마치 중고마켓에 내놓아야 하는 그런 이상한 운명을 맞은 남자의 이야기. 그것이 내가 지금 연출 중인 몹쓸 드라마의 한 에피소드라면 나는 그 장면에서 어떤 배역을 맡아야 하는 건지. 이런 문장을 길게 텅 빈 공간에 의식적으로 나열하면서도 그 누구도  오래된 이야기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도 다시 스스로 은폐를 선택하는 나는 어떤 이야기를 독자와 나누고 싶은 걸까.

난해한 의식이 낳은 난해한 문장, 해석되기를 스스로 거부하는 문장, 어쩌면 오래 상처 받아서 신음중인 문장, 무엇이든 망각할 수밖에 없어서 계속 슬픈 운명을 설파해야 하는 문장, 거울  멀리 떨어진 세상에서 아침마다 만나는 반갑지 않은 문장, 그저 전면 대치중인 권태와 나태함이 빚은 문장.  문장의 정체는 무엇일까.

몇 명이나 문장 뒤로 숨어버린 나의 존재를 위의 문단에서 읽을 수 있을까. 심오하고 난해한 세계를 창조하는 나는 어찌 측은하지 않다고 증명할 수 있을까. 아무도 읽지 않는 심지어는 공감하기 어려운 단어와 단어들의 무작위적인 조합, 무질서한 세계를 무너뜨리지 못하는 미세한 저항, 공허함을 놓고 벌이는 문장의 반역 행위, 그 순간 찾아오는 알람의 무력한 다짐, 난 대체 어떤 문장에 날이라도 선 듯한 단어를 이어 붙이고 있단 말인가.

어젯밤 꿈속에선 기이한 사건이 일어났다. 분명 꿈이라는 사실을 인지했으나 어쩌면 그 꿈이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이상한 결론 때문에 두려움과 망상이 교차되다, 삶은 거의 무너질뻔했다. 꿈속에선 감각을 올바로 인지하지 못한다고 하지만, 나는 다소 희미하긴 했지만 분명 감각은 더 예민해졌다. 입속에서 치아 하나가 그러니까 한때는 내 것이었으나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물건으로 둔갑하곤 이곳에서 저곳으로 굴러다녔다.

'그래 이건 꿈일 거야. 꿈이어야 만 해, 지금 이럴 때가 아니잖아, 난 아직 이런 수모를 겪을 나이가 아니야' 입속으로 치아 하나를 이리저리 굴려가면서 '그것은 분명 꿈 때문일 거야'라고 꿈 탓을 하며 그 근원이 어디에 속했는지 가늠하면서 결국 어느 뿌리 하나가 송두리째, 마치 몇 백 년 동안 살아남았지만 한순간 태풍에 날아간 뿌리가 뽑힌 나무의 빈자리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처럼 나는 소름 속에서 시름하다 다시 잠들어야 했다.

어떤 불길한 사건이 일어나는 건 아니겠지. 그런 일은 통계 데이터의 오류에 불과할 거라는 사실, 하지만 불길하다고 믿게 되면 오히려 그런 일이 일어나게 된다는 우스꽝스러운 사실도 가끔 변주된다. 오히려 나 스스로 그런 일을 완성하는 악역을 맞게 된다는 사실 탓에 지금은 현실이 아니라 가상이든 시뮬레이션이어서, 이 우주가 다시 부팅되었으면 하는 그런 원대한 꿈을 꾸는 나는 참 이상한 사람이다.

공대생의 심야서재 뉴스레터 주변에 소개하기 📣

주변 사람들에게 '공대생의 간헐적 뉴스레터'를 추천해 주세요. 아래 사이트를 지인에게 추천해주세요.

https://brunch.co.kr/@futurewave/1136

오늘 글은 어떠셨나요?

피드백을 남겨주세요

다가올 뉴스레터가 궁금하신가요?

지금 구독해서 새로운 레터를 받아보세요

✉️

이번 뉴스레터 어떠셨나요?

공대생의 심야서재 뉴스레터 님에게 ☕️ 커피와 ✉️ 쪽지를 보내보세요!

댓글 2개

의견을 남겨주세요

확인
  • 망망

    0
    almost 3 years 전

    한가지에 집중을 잘하시는 공심님. 몰입을 깊이하다보면 꿈에 잘 나타나더라구요 공심님도 감정일기 써보세요! 효과 좋을 거같아요! ㅎㅎ 돌아오는 월요일 월요병 겪지 않고 힘차게 출발하세요

    ㄴ 답글 (1)

© 2024 공대생의 심야서재 뉴스레터

오직 글로서만 승부하는 글쟁이의 뉴스레터, 주로 생산성 툴에 관련된 글을 보내드립니다.(가끔 소설도 씁니다.)

자주 묻는 질문 오류 및 기능 관련 제보

서비스 이용 문의admin@team.maily.so

메일리 (대표자: 이한결) | 사업자번호: 717-47-00705 | 서울 서초구 강남대로53길 8, 8층 11-7호

이용약관 | 개인정보처리방침 | 정기결제 이용약관 | 070-8027-28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