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임을 만들고 싶다면 내 안의 날카로운 가시부터 발라내 봅시다

낮과 밤이 바뀐 공대생의 모임 운영 이야기

2021.06.01 | 조회 6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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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대생의 심야서재 뉴스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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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과 밤이 바뀐 공대생의 모임 운영 이야기

Episode 7 - 모임을 만들고 싶다면 내 안의 날카로운 가시부터 발라내 봅시다

10년 전 시청역 부근의 한 회사로 몇 달 동안 파견을 나간 적이 있다. 그 회사는 독특하게도 8시부터 자정까지 근무하는 게 일상인 곳이었다. 다만, 특이하게도 점심시간은 항상 11시 30분에 시작해서 1시에 끝나는 편이었는데, 10분 만에 점심 따위를 해치우고 나머지 시간엔 주로 덕수궁을 배회하고 다니는 게 그나마 일종의 취미생활이었달까. 너무 자주 가게 되니까 아예 10회 권을 끊게 됐는데, 아무튼 그것은 야근과 철야가 반복되는 불행의 여정 중에서도 그나마 짧은 여유로움과 행복을 누리게 했다.

북창동 주변엔 50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하는 식당들이 즐비했다. 시청역 8번 출구, 건너편 낡은 생선구이 집도 그중의 하나였다. 6천 원이라는 저렴한 가격에 고등어구이나, 삼치구이 같은 메뉴를 푸짐하게 즐길 수 있다는 점이 꽤나 매력적인 곳.

하지만 난 생선 가시 발라내는 일에 오랫동안 적응이 안 됐고 그 작업이 영 서툴기만 해서 고등어구이를 주문하고 싶으면서도 머뭇거릴 뿐이었다. 하지만 그날엔 큰 결심이라도 한 듯, ‘오늘만은 깔끔하게 발라내고 말 것이리라’, 이렇게 굳은 다짐을 해도 좀체 뜻대로 되지 않는 게 가시를 발라내는 일이었다. 하얀 살덩어리를 있는 그대로 큼직하게 집어 들고 싶었지만, 가시까지 같이 딸려오는 일이 잦았다. ‘가시 한 조각도 발라내지 못하는 나란 인간, 대체 내가 잘하는 거는 뭐야?’라는 짜증을 내며 그날도 나는 가시 때문에 곤란을 겪고 있었는데, 그러다 옆 테이블로 시선이 우연히 옮겨졌다.

두 명의 여자가 - 아마도 나와 같은 건물에 일할 것으로 짐작되는? - 갓 주문한 고등어구이에 젓가락을 대기 시작한 모양이었다. 괜히 호기심이 생겨 그 여자의 동작을 유심히 관찰했다. 오른손엔 젓가락, 왼손은 고등어 등뼈를 슬며시 들어 올리더니, 침착하고도 능숙하게 뼈대를 중심부에서 천천히 걷어내곤, 맙소사! 그것도 몸집의 모양을 그대로 유지한 채, 양쪽에 붙은 잔가시들까지 한 조각 한 조각 세심하게 제거하는 것이었다.

세상에, 가시를 발라내고도 고등어 몸체를 완벽하게 보존해내다니, 그 어려운 작업을 정교하고도 손쉽게 해내는 사람이라니,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녀는 내가 멍하게 그녀의 행동을 관찰하는지도 모른 채, 심지어는 발라낸 가시들을 티슈 한 장에 차곡차곡 쌓아 올렸다. ‘아, 저 여자는 분리하는 걸 참 잘 해내는 사람이구나. 음, 어쩌면 생선가시뿐만 아니라, 마음속의 뾰족한, 그러니까 불편한 감정조차 깔끔하게 잘 발려낼 거야’ 나도 모르게 ‘아’,라고 감탄할 만큼 그 장면은 나에게 충격이자 장관이기도 했다. 어려운 일을 쉽게 잘 해내는 사람을 볼 때마다, 그런 사람을 문득 존경하고 싶어지는데, 그날의 그녀가 그랬던 거다.

그래, 고등어 몸통에서 몸통을 망가뜨리지 않고 가시를 발라내는 일은 따분하기도 하지만 요긴한 작업이기도 하다. 그따위 일들이야 대충대충 해치워도 말하자면 가시든 살이든 우리 몸이 소화시켜줄지도 모르니, 아무렇게나 삼켜도 인생에 크나큰 영향을 미치지 않으리라. 또한 생살과 가시를 깔끔하게 분리하는 일이 인생에서 그다지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잘 안다. 그런 건 누군가 대신해 주면 딱 좋은 일이기도 하니까.

하지만, 나는 때로 그 의미 없는 일들에까지 질서를 부여해야 한다고 믿는다. 질서란 세상의 교란, 어지럽힌 가시와 같은 것들을 조심스럽게 제거하고 정렬하는 일일지도 모르니.

하루키는 <잡문집>에서 이런 말을 했다. 소설가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하여 ‘소설가란 많은 것을 관찰하고, 판단은 조금만 내리는 일을 생업으로 삼는 인간이다’라고 말이다. 나는 소설가는 아니지만,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관찰의 중요성을 잘 안다. 쓰는 일이란 우리가 인생에서 경험한 수없이 많은 장면, 그 의미 없고 서로 맥락이 없는 장면들에서조차 이야기를 조심조심 검출해내고 그것에서 다시 의미를 발굴해내는 작업이란 걸 아는 것일 테니. 그리하여 그 연관성 없는 장면들 따위를 서로 엮거나 불필요한 가시 같은 것들을 솎아내는 일, 마지막 몸통에 그럴듯한 질서를 부여하는 일이야말로 나와 같은 글을 쓰는 사람이 감당해야 한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는 것이다. 그녀가 발라낸 가시만큼 혹시 글을 깔끔하게 쓰는 건 아닌지 물어보고 싶었다.

이런 가시 같은 생각, 얼핏 기억나거나 혹은 백지 같은 내 머릿속에서 어떤 장면들을 꺼내와 글로 옮기는 일은 나에게 고통이 된다. 그런 일은 해본 경험도 없고 습관으로 만들어 본 적도 없기 때문에, 또한 ‘나는 하루키처럼 소설가가 아니라서요’,라는 불평을 늘어놓는다. 어쩌면 세상은 무엇이든 차근차근 잘해내는 사람,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나누어 질지도 모르겠다. 글을 잘 쓰겠다고 결심한 사람 중엔 그저, 기억나는 장면을 순서대로 종이에 옮겼을 뿐이라는 사람, 꿈만 꾸다 말았다는 멀뚱한 표정만 짓는 사람, 그냥 머릿속에서 가시를 잘 발라냈을 뿐이라는 사람처럼, 여러 사람으로 우리는 걸러질 테니까.

그러니 고등어에서 가시를 발라내는 일은 미래에도 우리에게 숙제로 남아있겠다. 여전히 어떤 것은 적응이 안 되고, 어떤 것은 서투를 테니. 하지만 우리는 꼭 잘하고 싶은 그 무엇을 하나라도 더 찾아내고 싶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무언가를 공부하고, 일하고, 사람과 인연을 만들고, 기억날 듯한 장면과 그 장면에 살짝 가설이라는 양념을 투입한 후, 다시 그걸 현실에 적용하는 사람이 우리니까. 그러니까 가시를 발라내는 일은 전문가급은 아니지만, 가시가 박힌 위치만 알아내도 우리에겐 무한한 가능성이 놓이겠다.

무언가를 잘하고 싶을 때마다 우리는 석쇠 자국이 선명하게 난 고등어의 노릇노릇 한 몸통을 생각하게 될 것이다. 젓가락을 집어 들고 ‘오늘은 가시들을 완벽하게 발라내는 일이 가능할까?’,라고 스스로 물어보자.

어쩌면 우리는 책 한 권을 펼쳐 들고, 아니 이 뉴스레터를 읽으며, 이 책(글)이야말로 고등어 한 마리가 아닌가,라고 착각에 빠진다. 이 책에 적힌 모든 글자 중엔 살집이 제법 붙은 부분도 있을 테고, 굵은 등뼈와 잔가시 같은 것들도 성기어 있다.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깔끔하게 분리해내고 짭조름한 살덩어리를 젓가락으로 집어 들고 입속으로 안전하게 보낼 수 있을 것인지 고민한다. 그러다, 가끔 짠맛도 볼 것이다. 쓴맛도 더러 느낄 테고, 가시도 삼키는 날이 있겠지. 다시는 이런 짠맛만 가득한 고등어 따위는 찾지 않겠다고, 랍스터나 킹크랩 같은 대체 가능한 음식들을 생각하기도 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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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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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향기

    0
    almost 3 years 전

    제가 좋아하는 글 중에 하나예요. 여러 번 퇴고를 거치면 이렇게 좋은 글이 나오는 거군요. 처음 이 글을 읽었을 때 관찰력이 좋으시다 생각했었는데 글에서 점점 사유가 깊어짐을 느낍니다. 좋은 글 감사해요.^^

    ㄴ 답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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