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것이 당신의 콘텐츠가 된다

낮과 밤이 바뀐 공대생의 모임 운영 이야기

2021.06.04 | 조회 57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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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대생의 심야서재 뉴스레터

오직 글로서만 승부하는 글쟁이의 뉴스레터, 주로 생산성 툴에 관련된 글을 보내드립니다.(가끔 소설도 씁니다.)

낮과 밤이 바뀐 공대생의 모임 운영 이야기

Episode 8 - 좋아하는 것이 당신의 콘텐츠가 된다


2020년 1월까지만 해도, 글쓰기 강사라는 타이틀을 안고 문화 센터로 자주 출강을 나가는 편이었다.(서울을 찍고 평촌 그리고 원주까지) 애석하게도 코로나 때문에 그 길이 막힌지 오래됐지만, 그렇다고 손발 다 놓고 멍하게 시간이나 축내고 있는 건 아니다. Zoom이라는 새로운 비대면 문화가 도입된 이후로, 무대를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옮기며 나름 이 세계에서 견디고 있으니까.

아무튼 오프라인이든 온라인이든 글쓰기 수업 첫 시간에는 사람들에게 질문 한 가지를 무조건 던진다. ‘자기소개 간단하게 부탁드려요. 어디에 사는 누구십니까? 어떻게 해서 제 글쓰기 모임에 오게 되셨나요?’ 이런 평범하면서도 대답이 쉽게 예상되는 그런 보편적인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이어지리라 기대하면서 관객의 참여를 유도하는 것인데, 이상하게 분위기가 급속도로 냉각되기도 한다. 이럴 땐 개그라도 배워서 써먹어야 하는 건지, 침묵이 오래 지속될 때마다 어떻게 어색한 분위기를 헤쳐나가야 할지 곤란하기만 하다.

사람들의 반응을 살펴보면, ‘언젠가 작가가 되고 싶어 왔어요’라는 분명한 의식을 가진 사람도 있지만 ‘글쓰기가 대체 뭔데요?’라는 식으로 염통을 쫄깃하게 만드는 사람도 있다. 작가라는 원대한 꿈, 언젠가 자신의 이름이 찍힌 책을 만들고야 말겠다는 확고한 꿈을 마음에 새긴 사람, 하지만 글쓰기가 대체 뭔지 모르겠다고, 돈 냈으니 '강사 네가 한 번 제대로 가르쳐봐라',라고 따가운 눈초리를 보내는 사람도 나타난다. 간혹가다 잘못 온 것 같다고, 수강 신청을 당장 취소해달라며, 자기는 쓰는 게 영 젬병이라고 따지는 사람, 그 가운데 서 있는 나는 대체 누구고 여긴 어디인지, 내가 큰 잘못이라도 한 건가 싶다.

땀나는 자기소개 시간을 겨우 마치고 나면 일방적인 글쓰기 쇼, 그러니까 준비한 특강을 최대한 오래 진행한다. 돈을 받았으니까, 듣는 사람의 의도에 상관없이 1시간 이상을 떠들어야 한다.(그래야 강사비가 나온다.) 중간에 하품하는 사람이 가끔 보이지만, 요즘은 그나마 Zoom 덕분에 그런 충격적인 상황을 보지 않아도 되니 그나마 다행이랄까. 그런 사람에게 분필이라도 던지고 싶지만, 화면에 붙은 빨간펜을 떼어서 던질 수는 없지 않은가. 차라리 시답지 않은 아재 개그를 불쑥 던져보거나, 재미가 1도 보장되지 않은 그러니까 강의와는 어쩌면 전혀 상관없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제우스 신이 허벅지에서 자식을 꺼냈다는 나름 충격적인 에피소드를 전개하며, 시간이 지나가라! 제발 빨리 지나가라, 재미있다, 즐겁다, 신난다며 주문을 외우는 것이다.

한 시간이 겨우 지나면 휴, 하고 한숨을 크게 쉬고 합평으로 넘어간다. 무거운 노트북을 들고 오느라 힘들었다고 하소연하는 사람(지금은 Zoom 접속이 안되었노라고 특히 마이크가 작동이 안 되었다며 왜 매뉴얼을 만들지 않았냐고 클레임을 거는 사람), 노트를 주섬주섬 꺼내는 사람(Zoom이라 안 보이긴 하지만 그래도 내 눈엔 그런 장면이 선하다.), 내 눈만 멀뚱하게 바라보며 눈뜨며 조는 사람(비디오 안 켜도 다 안다.)을 뒤로하며 말이다.

첫 시간의 과제는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가요’라는 주제로 글을 잘 써왔냐며 분량을 얼마나 채웠는지 확인한다.(사실 글감은 미리 주문해놓은 상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이 숙제를 안 해온다.) 완곡하게 부탁하지만, 어떤 사람은 자신이 누구인지도 아직 못 찾았는데 '무슨 좋아하는 것을 쓰라고 주문을 하냐'라며 삿대질을 할 태세다. 아마 총이라도 있으면 당장 쏠지도 모른다. 좋아하는 게 대체 뭔지 모르겠으니 강사님이 대신 찾아주면 안 되겠느냐며 나를 타이르려는 사람까지 있다. 자신은 태어나서 지금까지 글자란 걸 써본 적이 없다고, 자꾸 쓰라고 강요하면 평생학습관에 항의하겠다는 발언도 서슴지 않으며 당장 문이라도 박차고 나가겠다고 협박이라도 할 태세다. 하, 수업은 왜 신청한 걸까? 난 그들을 이해할 수 없다. 이제 겨우 10분밖에 안 지났는데...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비교적 쉬운(?) 질문에 다들 어려움을 겪는 이유는 뭘까. 나로 살면서 내가 주인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내 몸과 마음을 컨트롤하지 못하는 그러니까 나를 감싼 세계를 보지 못하는 나는 나의 주인이 맞다고 주장할 수 있을까.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도 모른 채, 오래도록 인생을 방치하며 살아왔으면서 그것을 알고 싶어 하지도 않는 기묘한 현상, 어쩌면 오랫동안 그 질문에 대답을 회피해온 당신은 언제부터 이런 중병에 걸려 버린 걸까? 우리, 인생 대체 언제부터 이렇게 꼬여 버린 걸까.

인간은 하나의 몸을 가졌지만 '나'라는 여러 개의 인격체, 즉 페르소나를 쓰고 살아간다. 직장인, 학생, 교수, 남편, 아내, 강사, 작가, 수강생이라는 각양각색의 페르소나, 온갖 형태의 성격이 마음 옷장에 가득하다. 오늘 아침엔 어떤 페르소나를 착용해 볼까? 이걸 걸쳐보고 저걸 걸쳐보고, 아침에도 수십 번 그런 일상을 반복하지만, 내 체형에 맞는 게 하나도 없는 이상한 느낌. 또 백화점 가서 쇼핑을 해야 할 것 같은 느낌. 이 강사는 별로고 다른 강사나 찾아볼까나 이런 느낌. 언제까지 아침마다 패션쇼를 해야 하는 걸까.

좋아하는 것을 찾으려고 어떤 페르소나든 기꺼이 착용을 반복하다 보면 좋아하는 것에 조금은 가까워질 것이다. 사람에 따라 소요되는 시간이 조금 다르겠지만, 얼마나 돈을 써야 할지 짐작도 할 수 없겠지만, 아무튼 그것은 나를 찾는 적극적인 행위라니 인생을 낭비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아도 되겠다. 그러니 페르소나 가진 게 얼마 없다거나 이것저것을 자주 바꾼다고 자신이 변덕스러운 건 아닌지 걱정할 필요가 하나도 없는 것이다. 당신을 찾는 지난한 과정이니까, 당신에게 어울리는 것을 꼼꼼하게 맞춰보는 일이니까 오래 걸리더라도 할 수 없다. 죽기 전에 찾으면 그나마 다행일지도 모르니까. 그렇게 나를 찾으면 그다음 좋아하는 건 자연스럽게 얻어질 것이다.

다만, 꾸준함이 우선이다. 어떻게 나를 찾아야 하는지, 무엇을 찾아야 하는지 모르겠다면 일단 어떤 경험이든 부딪혀보라고 말하고 싶다. 니체는 ‘사람은 극복되어야 할 그 무엇’이라고 말했지 않나. 무엇을 극복해야 할지 모른다면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부터 읽어 보기로 하자. 지금까지 존재한 과거의 모든 나를 극복하거나 버리는 것이 바로 페르소나를 인생에 도입하는 일이다. 자 당신을 한정했던 페르소나에 또 다른 페르소나를 추가할 시간이 왔다. 시장으로 나가보자. 쇼핑하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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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4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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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향기

    0
    almost 3 years 전

    공심님의 강의를 직접 앞에서 앉아서 듣는다면 어떤 느낌일지 상상해 보지만 어렵습니다. 워낙 줌으로만 들어서 그럴까요? 아니 강의를 들으면서 하품 하고 있는 사람이 있어요? 이런~ 글 읽으면서 강의를 하는건 인격을 갈고 닦는 일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는 저는 좋아하는 것들을 좀 더 추가해보겠습니다. 좋아하는 것을 찾는데 공심재가 큰 도움이 됩니다. 글 감사해요.

    ㄴ 답글 (1)
  • 혜나무

    0
    almost 3 years 전

    목소리도 좋으시고 흡인력있게 강의하셔서 집근처 문센에 오시게 되면 꼭 갈거다 하고 있었는데 저의 바람은 언제쯤... ㅎ. 아무튼 공심님 글쓰기 콘텐츠 덕을 많이 본 사람으로서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ㄴ 답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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