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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떻게 '한국 사람'이 되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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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중국인/아시아인 인종차별주의
미국의 인종차별주의 (1). [8월 23일자 뉴스레터에 윤치호가 일기에 “서부에서 일어나고 있는 중국인들에 대한 박해"를 언급한 부분을 인용했습니다. 그렇다면 미국에서는 중국인에 대한 어떤 차별이 일어나고 있
사료로 보는 민비에 대한 평가
『매천야록』과 『윤치호 일기』 중에서. 지난 8월 31일 발송한 ‘개화파가 본 민비’ 뉴스레터을 읽으신 많은 구독자들께서 상당한 충격을 받으신 것 같습니다. 유길준이 스승 모스 박사에게 보낸 편지에서 묘사한 민비는 그
개화파가 본 민비
유길준 편지 중에서. [이번 뉴스레터는 제가 『한사만 IV: 친일개화파 2』, ‘을미사변’(pp. 737-746) 맨 끝 부분에 넣으려다 깜빡하고 빠뜨린 부분입니다.] 유길준은 1896년 12월 3일
황태자비를 죽인 조선의 '의술'
‘윤치호 일기’ 중에서(3). 1904년 11월 5일 순종의 비 ‘순명효황후(純明孝皇后 閔氏, 1872년 11월 8일 ~ 1904년 10월 23일)가 승하한다. 순명효황후는 민태호(閔台鎬, 1834년~1884년
미국 무관이 본 조선 사람들의 ‘반일-친중’ 감정
폴크 소위(George Clayton Foulk)는 갑신정변(1884년 12월 4-7일) 당시 주 조선 미국공사관 해군 무관이었습니다. [폴크 소위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한국 사
윤치호와 미국의 인종차별주의
윤치호 일기 중에서(2). 지난번 뉴스레터(구한말 조선 지식인의 선택과 '친일': ‘윤치호 일기’ 중에서, 2026-08-22)에서 “인종적 편견과 차별이 무서운 위세를 떨치는 미국에서도” 살기 싫다는 윤치
구한말 조선 지식인과 '친일개화파'의 탄생
'윤치호 일기' 중에서. 1893년 11월 1일, 윤치호는 일기에 유려한 영어로 다음과 같이 씁니다. “If I had means to choose my home land at my pleasure, Ja
대한제국의 국정 난맥상과 혼군(昏君) 고종
‘한사만 제6권’을 쓰려고 러일전쟁과 을사보호조약으로 이어지는 역사를 공부하다가 고종의 무능, 당시의 국정 난맥상 등 대한제국의 민낯을 엿볼 수 있는 통계를 찾았기에 공유합니다.
「한국의 ‘탈아입구’」
후쿠자와 유키치의 ‘탈아입구론’ 다시 읽기. 『한국 사람 만들기』는 우리가 조선 사람의 정체성을 벗어 던지고 한국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는 과정을 되짚어 보고 있습니다. 조선 사람은 봉건 유교 이념과 체제를 근간으로 ‘양반/사
일본 에도시대 말기에 많은 인재가 배출된 이유
조선의 인재 풀(pool)과 에도 막부 인재 풀의 비교. 일본, 특히 바쿠마츠(幕末, 막부말기) 시대 관련 강연을 하면 많은 받게 되는 질문 중 하나가 '왜 일본에서는 그토록 많은 인재가 배출되었는가?'입니다. 특히 조선과 비교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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