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 12월 말에 <스마트카 패권전쟁>이란 책을 적었습니다. 책의 서문을 공유합니다.
<스마트카 패권 전쟁> - 서점 URL
인공지능이 자동차의 새로운 심장이 되다.
(스마트카 패권전쟁 저자 서문)

필자는 기계공학을 전공하고 기아자동차에 입사하며 자동차 산업에 첫발을 내디뎠다. 엔지니어로서 시작한 커리어는, 이후 일본 교토대학 유학을 거쳐 LG전자 생산기술원에서 토요타 생산방식(TPS)의 원류(源流)를 접하며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그리고 현대자동차 경영연구소에서 자동차 산업을 분석하는 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그곳에서 제품·생산·품질 관련 경영전략 보고서를 작성하고, 울산과 중국을 오가며 현장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이 과정을 통해 필자는 ‘공장’이라는 실물의 세계와 ‘경영’이라는 전략의 세계를 동시에 경험할 수 있었고, 이는 자동차 산업을 입체적으로 분석하고 바라보는 시야를 열어주었다.
필자가 자동차 산업을 분석하는 틀은 크게 두 가지 기둥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나는 ‘아키텍처(Architecture)’라는 관점이고, 다른 하나는 ‘토요타 생산방식(TPS)’이 강조하는 ‘흐름(Flow)’이란 관점이다. 필자는 이 두 가지 이론적 무기를 바탕으로 기업 내부에서 또, 2021년 퇴사 이후에는 ‘자동차 산업 독립 연구가’로서 산업을 분석해 왔다. 그리고, 2023년부터는 《월간조선》 등에 기고하며 격변하는 자동차 산업을 기록해 왔다.
지난 3 년간 적어온 글들은 다행히도 시간이 흐른 지금의 상황을 오히려 더 잘 설명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에 필자는 그동안의 기록들을 다시 꺼내어 다듬고, 최신 데이터와 정보를 더해 내용을 보강했다. 전례 없는 위기에 직면한 한국 자동차 메이커에 전하고 싶은 제언을 담아 한 권의 책으로 엮었다.
그동안 자동차 산업은 수만 개의 부품이 정교하게 맞물려 돌아가는 거대한 오케스트라와 같았다. 연구소에서 몇 년에 걸친 노력 끝에 하나의 차종을 개발해 설계 도면을 완성하면, 생산기술 본부는 이 도면을 실물로 구현해 낼 설비를 만들어 공장에 배치한다. 그리고 수만 명의 숙련된 노동자들이 이 설비를 움직여 차를 만들어낸다. 비록 이익률은 낮을지 몰라도, 많은 사람의 땀과 노력이 깃은 이 산업이야말로 국가 경제를 지탱하는 가장 든든한 버팀목이다.
그런데 지금, 이 견고했던 자동차 산업이 거대한 지각 변동을 맞이하고 있다. 처음에는 그저 엔진 대신 모터와 배터리를 넣는 '전동화(Electrification)'가 변화의 전부인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것은 서막에 불과했다. 진짜 변화는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시작되었다. 소프트웨어가 하드웨어만큼이나 중요해졌고, 스스로 판단하고 움직이는 자동운전 기술이 도입되면서, 인공지능(AI)이 자동차의 새로운 심장이 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자동차의 개념 자체가 근본적으로 뒤바뀌고 있다. 특히 중국 기업들은 단순한 기술 경쟁을 넘어 '자동차란 도대체 무엇인가'라는 정의(Definition) 자체를 새로 쓰며 판을 흔들고 있다. 경쟁의 축이 "얼마나 잘 달리는가(성능)"에서 "차와 사람이 어떻게 교감하고 차가 우리의 삶에 어떤 가치를 제공하는가(경험)"를 묻는, 그야말로 '사상전(思想戰, War of Philosophies)'으로 돌입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자동차 산업은 위기를 맞고 있다. 자동차 산업에서 소프트웨어의 중요성은 날로 커지고 있지만, 정작 이 분야에서 한국의 경쟁력은 답보 상태다. 그 근저에는 '소프트웨어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깔려 있다. 한국 사회는 눈에 보이지 않는 '지적 가치'에 대해서는 좀처럼 지갑을 열지 않는다. 소프트웨어 개발 업무는 단순 용역으로 해결하면 된다고 생각하기에 회사 내부에서 직접 개발하기보다는 외부 하청 업체에 맡기는 '외주화'가 관행처럼 굳어졌다.
일본 정보처리추진기구(IPA)가 발행한 《DX 백서 2023》에 따르면, 미국의 경우(2021년 기준), 전체 IT 인력의 64.9%가 자동차, 금융 등 일반 기업(User Company) 내부에서 일하며 나머지 35.1%는 IT전문 기업에서 일하고 있다. 즉, 일반 기업이 소프트웨어 역량을 내재화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반면 일본의 경우 IT인력의 고작 26.4% 정도가 일반 기업에 일하고 나머지 73.6%는 IT 기업에서 일하고 있다.

한국의 정확한 데이터는 알 수 없지만, 아마도 일본의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즉, 한국과 일본은 소프트웨어를 우리 몸의 '심장'이 아닌, 돈만 주면 구입할 수 있는 부수적인 것으로 받아 들이고 있다는 의미이다. 이런 상황에서 다가올 스마트카 전쟁(Smart Car War)에서 결코 주도권을 쥘 수 없다.
더 나아가 인공지능(AI)이 자동차에 도입된다는 것은, 단순히 소프트웨어의 비중이 늘어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충격이다. 자동차 산업의 뿌리인 기계공학은 명확한 인과관계(Causality)를 신봉한다. 입력이 있으면 출력이 있고, 원인이 있으면 결과가 명확해야 하는 확실성의 세계다. 하지만 인공지능의 접근법은 이와 전혀 다르다. 수많은 데이터를 통해 확률적인 최적해를 찾아가는 과정은, 낯설고 비논리적으로까지 보인다. 필자 역시 최근 한양대 인공지능융합대학원(야간) 석사 과정을 밟으며 이 근본적인 차이를 뼈저리게 실감했다. 기계공학을 깊이 공부한 사람일수록, 인공지능의 접근 방식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이제는 그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만 한다.

최근 몇 년간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던 수많은 자동운전 회사들이 문을 닫거나 사업을 축소했다. 그들이 실패한 근본적인 원인은 기술의 변화를 읽는 ‘방향’에 있었다. 차량이란 기계공학적, 물리적 기반 위에, ‘데이터 기반의 인공지능(AI)’이라는 새로운 접근법이 필수적으로 접목되어야 한다. 테슬라와 중국 기업들은 이 흐름을 간파하고 체질을 바꿨다. 한국 기업 중에서는 현대차그룹의 소프트웨어 센터인 ‘포티투닷(42dot)’이 이 방향으로 일을 진행하고 있었기에 여간 다행이 아니다.

필자는 그동안 한국 제조업의 발전을 위해 꼭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몇 권의 양서(良書)를 번역해 소개했다. 《모노즈쿠리》, 《도요타 제품 개발의 비밀》, 《실천! 모듈러 설계》, 《반도체 초진화론》 등이 그것이다. 바쁜 일정을 쪼개어 이 책들을 번역했던 이유는 단 하나였다. 제조업의 안목을 넓히는 읽을꺼리를 한국의 엔지니어에게 제공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랬던 내가 내 생각을 담아 책으로 내놓게 되었다.

비록 몸은 회사를 떠나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지만, 여전히 일본과 중국을 오가며 자동차 산업을 직접 조사하고 전문가와 토론하고, 또 현장을 다니면서 시야를 넓혔다. 그래고 새로운 기술 변화에 따라가기 위해 나름의 학습을 진행해 왔다. 책상 위 이론과 땀 냄새 나는 현장 모두가 나의 선생이었다. 그런 필자의 감각을 살려 이 글을 적어 내려갔다.
이 책이 세상에 나오기까지 많은 분의 도움이 있었다. 특히 《월간조선》의 배진영 편집장께 감사를 드린다. 그가 내게 월간지에 기고를 의뢰하지 않았다면, 이 책의 첫 씨앗은 뿌려지지 못했을 것이다. 필자의 글을 책으로 출판해 주신 시크릿하우스의 전준석 대표님께도 깊이 감사드린다. 이 두 분 덕분에 나의 첫 책이 출판되었다.
아내와 두 아이에게 감사한다. 집에서는 언제나 키보드를 붙잡고 앉아 있는 재미 없는 모습밖에 보여 주지 않은 것 같다. 알츠하이머로 고생하는 노모와, 노모를 집에서 돌봐 주는 두 누님에게 큰 감사와 함께 미안함을 감출 수 없다.
와세다대학의 후지모토 다카히로(藤本隆宏) 교수님과, 전(前) 동토요타 회장 우치가와 스스무(内川晋) 님, 고인이 되신 곤도 데츠오(近藤哲夫)님에게 진심 어린 존경과 감사를 표한다. 아키텍처라는 관점, 현장의 지혜를 보는 시각을 열어 주셨다. 이 분들 덕분에 제조업을 보는 내 나름의 관점이 생겼다.

또한 KAIST의 기술경영대학원의 김갑수 교수님, 한양대 경영학과의 이웅희 교수님, 박병진 교수님, 서울대 전자공학과 홍성수 교수님, 국민대 전자공학과 정구민 교수님, 한양대 미래자동차공학과의 조기춘 교수님, 현대차 전략기획실의 정현진 상무님, 캡스톤컴퍼니의 박종식 대표님, NVH코리아의 구자겸 회장님에게도 많은 도움을 받았다. 이 책을 통해 다시 한번 감사 인사드린다.
모쪼록 이 책이 격변의 파도 앞에서 고군분투하는 한국 제조업 종사자들에게 작은 나침반이 되기를 바란다."
2025년 12월
박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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