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편지

[루아네 옹달샘] 와인은 열렸고

2026.10.01 | 조회 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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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nanti Contrada Rinazzo 2022 와인을 샀던 날
Benanti Contrada Rinazzo 2022 와인을 샀던 날

아침에 요가를 하고, 이제 천천히 휴대폰 메시지를 확인하고 있는데 카타니아 집에 나 대신 머물고 있는 친구에게서 문자가 하나 와 있었다.

“루아! 정말 미안한데 어제 내가 너무 스트레스 받아서 너 와인(Benanti)을 마셔버렸어. 정말 미안해. 어디서 똑같은 와인을 살 수 있을까?”

화가 잘 나지 않는데 정말 오랜만에 화가 났다. 그동안 너무 예의 바르고 잘 지내던 친구가 갑자기 와인을 연 것도 당황스러웠고, 무엇보다 그 친구가 마신 베난티 와인은 나에게 소중한 와인이었다. 1년 전 내 생일에 샀던 바틀인데, 그 병 바닥에 한 해 목표를 적어서 놓았다. 다음 생일까지 목표를 이루면 꼭 마시려고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던 와인이었다. 다음 생일까지 한 달 조금 더 남은 시간에 엄청난 날벼락이었다.

로컬 와인샵 갔던 날
로컬 와인샵 갔던 날

처음 생일 와인을 사러 카타니아에 있는 로컬 와인 숍에 갔다. 이 와인보다 한 단계 높은 Etna Bianco가 있었는데, 그 와인 숍 소믈리에분께서 그것도 좋지만 내가 샀던 와인이 그에 못지않은 향과 맛을 줄 수 있을 거라고 이 와인을 추천해주셨다. 나에게는 비쌌던 그 와인을 사서, 소중하게 병을 껴안고 집까지 걸어왔다. 그런 바틀이었다.

어떤 와인을 마시려고 1년을 기다려본 적이 없는데, 그래서 더 병을 열 기대를 하고 있었던 와인이었다. 그냥 그렇게 열려버렸다니. 조금 어이가 없고 허무했다. 괜히 눈물이 고였다.

일단 병이 열린 것도 열린 것이었지만, 그 친구에게 내 상황을 설명하고 그래도 좋은 와인인데 어떻게 즐겼냐고 물어봤더니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은 상황이어서 제대로 맛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더 속상했다. 그러려면 차라리 4유로, 6유로 되는 와인으로 충분했을 텐데. 이 와인이 제대로 즐겨지지 못했다는 것도 너무 화가 났다.

목표를 적으면서 찍었던 나한테 보내는 영상
목표를 적으면서 찍었던 나한테 보내는 영상

친구가 정말 미안하다고, 꼭 똑같은 와인을 사주고 싶다고 했다. 아마 그 친구가 같은 와인으로 새 병을 구해줄 수도 있을 것이다. 같은 라벨, 같은 연도의 와인을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같은 와인은 아니다. 그 병 안에는 작년 생일의 나와, 올해를 살아보겠다고 적어둔 목표와, 다음 생일에 그걸 열어보겠다는 작은 약속이 들어 있었다. 1년 동안 그 시간을 함께한 병이었다. 조금 우습지만, 캐스트 어웨이의 윌슨처럼 마음을 붙이고 기다려온 나의 와인이었다. 새 와인으로 바꿀 수 없는 것은 아마 그 기다림이었을 것이다.

와인을 열 때 나는 향기,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잔 안에서 변해가는 향기와 맛을 즐기는 것만으로도 정말 좋은 와인 한 잔은 마음의 열기를 식혀줄 수 있다. 그런데 불난 집에 부채질하듯, 아무렇게나 그 친구가 마셔버린 와인이 너무너무 아까웠다.

20대 때 아빠랑 같이 술을 마시면서 아빠가 언젠가 절대 힘들거나 슬플 때 술을 여는 게 아니라고 했다. 술은 항상 즐거운 자리에서 좋은 사람들과 함께 마시는 것이라고 했다. 그 이후로는 힘들어서 혹은 슬퍼서 술을 찾은 적이 한 번도 없다.

10월이 이렇게 시작됐다.

 

<짧은 와인 이야기>

첨부 이미지

Benanti는 시칠리아 에트나를 이야기할 때 자주 언급되는 와이너리다. 에트나 화산의 여러 경사면에 자리한 포도밭에서, 이 지역의 토착 품종을 중심으로 와인을 만든다.

내가 샀던 병은 Benanti의 Contrada Rinazzo Etna Bianco Superiore 2012. 와인 숍 소믈리에가 한 단계 높은 와인으로 이야기해준 병은 Benanti “Pietra Marina” Etna Bianco Superiore DOC였다.

Contrada Rinazzo. 이름부터 좋았다. 에트나 동쪽 사면, Milo라는 마을 근처의 포도밭 이름이다. 화산의 흙, 바다를 향한 바람, 그리고 Carricante라는 시칠리아 토착 청포도가 만나 만들어진 와인. 아직 맛보지는 못했지만 시칠리아 향기가 가득 담겨있을 것 같았다.

아마 나는 그 병을 열며 지난 1년과, 이 섬에서 보낸 시간과, 내가 나에게 적어두었던 작은 약속을 함께 열어보고 싶었던 것 같다. 

<이 편지를 쓰는 사람>

첨부 이미지

본명: 다겸

이탈리아: 루아 Rua

요가를 가르치다가 옷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어 패션 디자인 과정을 시작했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로 이탈리아에서 패션 브랜딩을 공부하게 되었고, 지금은 시칠리아 카타니아라는 거주하고 있다.

어떤 일을 하든지, 어디에 있든지, 누군가에게 쉼과 휴식이 되는 옹달샘 같은 사람이 되고 싶은 요가인이며, 언젠가 바다가 보이는 따뜻한 도시에서 옷을 만들고,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는 작업실과 매주 저녁 친구들과 함께 밥을 먹을 수 있는 큰 식탁과 넓은 거실이 있는 집에서 사는 삶을 꿈꾸며 하루하루를 꾹꾹 채워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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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듈

    0
    약 20시간 전

    와인 돌려놔라아!!!

    ㄴ 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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