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게임단 농심 레드포스가 SPG와 '힘을 합쳐' 발로란트 챔피언스 투어 퍼시픽(이하 VCT 퍼시픽)에 출전합니다.
농심은 지난 27일 공식 발표를 통해 이 같은 사실을 밝혔습니다. SPG(Sin Prisa Gaming)은 3부 리그 '프리미어'부터 시작해 챌린저스 코리아 최강 팀으로 거듭났고, 2024 발로란트 챌린저스 코리아 Stage 1, 2를 모두 우승한 뒤 어센션에서도 우승을 차지한 저력의 팀입니다.
사실 농심은 발로란트에 진심이었습니다. 지난 2022년 프랜차이즈 심사에 탈락했지만, 챌린저스 팀을 운영하면서 VCT 퍼시픽 진출 도전을 이어왔습니다. 하지만 농심 챌린저스 팀은 지난 2024 발로란트 챌린저스 코리아 Stage 2 결승전에서 SPG에게 아쉽게 패배했는데요. 결국 농심은 바로 그 SPG를 품에 안고 VCT 퍼시픽에 도전하게 됐습니다.
어려운 도전 끝에 VCT 퍼시픽 진출이라는 꿈을 이룬 SPG가 대기업 농심의 e스포츠 브랜드 산하로 들어갔다는 소식은 꽤 낭만적으로 느껴집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원래 농심의 이름으로 활동했던 농심 챌린저스 팀 선수들의 행보에 의문이 남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번 뉴스레터에서는 SPG를 품에 안은 농심 레드포스 소식을 여러 시선으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농심의 합리적인 선택
대기업 농심의 이름이 VCT 퍼시픽에 추가되는 것은 반가운 일입니다. 농심의 라면, 스낵 등 주력 판매 제품이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인기가 높다는 것을 생각했을 때, 농심의 e스포츠 팀이 롤드컵, VCT 챔피언스 같은 글로벌 대회에 출전한다면 그 어떤 기업보다 실효성 있는 마케팅 효과를 누리게 됩니다.
이에 대해서 농심 레드포스의 오지환 CEO는 링크드인을 통해 VCT 퍼시픽 합류 소식을 전하면서 "e스포츠는 전세계 게임팬들의 지역별 세그먼트에 따라 주요 종목이 크게 나뉘고 있다. 디바이스 (PC : 북반구 / Mobile : 남반구), 장르(아시아권 : 전략성 / 서구권 : 슈팅 액션)를 대표적 기준으로 보고 있다"며 "농심 레드포스는 이러한 글로벌 세그먼트에 따라 현재 롤, 발로란트, PUBG 모바일, 아너 오브 킹즈(왕자영요) 네 개 종목을 운영하고 있다. 전세계 게임팬들에게 다양한 종목으로 노출되며 브랜드 팬덤을 늘려가 보고자 한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게다가 농심이 그 동안 발로란트씬에 계속 투자했던 것과 향후 VCT 퍼시픽 진출 도전에 들어갈 기회비용을 고려해보면, SPG를 품에 안는 옵션은 오히려 더 경제적일 수 있습니다. 비록 프랜차이즈 팀은 아니기 때문에 VCT 잔류를 위해 더 많은 노력을 해야하긴 하지만, 아래로부터의 승격 경쟁보다 VCT에서 잔류 경쟁이 가능성 및 경제성 측면에서 더 나은 측면이 있습니다.
다만, 이번 공식 발표에서 '인수', '창단'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은 부분은 약간의 의문이 남습니다. 농심은 '힘을 합쳤다'라는 표현을 사용했고, 오지환 대표 역시 링크드인에서 '농심 레드포스 브랜드로 합류해준 SPG 팀'이라며 '합류'라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일반적인 인수, 창단과는 다른 형태의 계약이 아닌가하는 의문점이 남는 부분입니다.
SPG, 더 큰 꿈에 다가가기 위한 선택
이번 소식을 접한 발로란트 팬들 중 일부는 SPG가 VCT 퍼시픽 진출을 통해 자체적으로 발전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SPG가 그 동안 오버워치, 발로란트 팀을 운영하면서 나름대로 작지만 알찬 행보를 보여왔기 때문에, Sin Prisa Gaming이라는 이름에 애착을 갖고 있었던 팬들도 존재 했을테니까요.
하지만 SPG 발로란트 선수들이 농심의 품에 안긴 것은 기존 SPG 게임단과 선수들 모두에게 나쁘지 않은 선택입니다. 선수들은 연습, 급여, 식사, 숙소 등 다양한 조건이 이전보다 나아질 것이고, VCT 퍼시픽이 국제리그인 만큼 해외 대회 출전시에도 더 나은 지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기존 SPG 팀 역시 어떤 보상을 받았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이 과정이 '무료'로 진행되었리는 없습니다.
그 동안 SPG가 챌린저스, 어센션을 뚫고 VCT 퍼시픽까지 올라온 것은 대단한 성과이지만, 사실 진짜 도전은 이제부터입니다. 가깝게는 T1, DRX, Gen.G 같은 팀과 경쟁해야 하고, 글로벌에서도 규모가 큰 팀들과 경쟁하려면 더 좋은 환경을 제공해줄 수 있는 기업과 함께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선택입니다.
농심 챌린저스 선수들의 행보는?
반면, 농심과 SPG의 결합은 기존 농심 챌린저스 선수들에게는 반갑지 않은 소식입니다. 지난 2024 발로란트 챌린저스 코리아 S2에서 아쉽게 2위에 머물렀지만, '조금만 더 하면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을텐데, 농심이 SPG를 품에 안으면서 갑자기 집이 사라진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농심 챌린저스 선수들에게 이 소식이 어떻게 전해졌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세련되고 배려심 가득한 소통을 한다고 해도 기존 선수들이 느끼는 박탈감은 필연적입니다. 알려진 바로는 현재 진행 중인 챌린저스 Stage 3가 시작될 때쯤에 이 소식이 전해졌다고 합니다.
농심은 기존 챌린저스 선수단 중 일부를 로스터에 합류시키겠다는 계획을 밝혔습니다. 발로란트 측에서는 "선수들이 다른 팀에서 계속 대회에 참가하고자 한다면 챌린저스 코리아 슬롯은 해당 선수들에게 유지된다"고 설명했습니다.
현 상황에서 농심 챌린저스 선수들의 행보는 예측하기가 어렵습니다. 다만 발로란트 측의 설명을 해석해보면, 현재 5인 로스터에서 변동이 있을 경우에는 슬롯이 사라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일부 선수가 농심의 오퍼를 받아 VCT 팀으로 간다면, 나머지 선수들은 다른 팀으로 가거나, 선수를 보강해 다시 3부 리그부터 도전을 시작할 수 밖에 없는 것이죠.
2025 시즌부터 T1, Gen.G, DRX의 아카데미 팀이 챌린저스에 출전하는 것 역시 농심 챌린저스 선수들의 행보에 영향을 미칠 중요한 변수입니다. 이 세 아카데미 팀은 아직 선수단 구성을 완료하지 않은 상태인데요. 현재 진행 중인 2024 챌린저스 Stage 3가 끝난 뒤 본격적인 선수 영입이 시작될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농심 챌린저스는 현재 챌린저스 Stage 3의 그룹 A에서 3전 전승으로 1위를 달리며 좋은 기량을 보여줬기 때문에 T1, Gen.G, DRX 아카데미 팀이 농심 챌린저스 선수들의 영입을 적극 고려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농심이 SPG를 품에 안고 VCT 퍼시픽에 참가하는 것은 산업적으로 봤을 때는 반가운 소식입니다. 재정적으로 여유가 있는 팀들이 다종목을 운영하는 것이 e스포츠 산업의 저변과 안정성 확대에 많은 기여를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e스포츠 역시 냉혹한 프로의 세계라는 점을 실감하게 됩니다. 누군가에게는 호재가 누군가에게는 악재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관심이 농심의 VCT 진출에 쏠리는 것이 어쩌면 너무 당연하지만, 다시금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할 농심 챌린저스 선수들의 행보에도 주목해보는 것이 어떨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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