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iginal

판을 내게 유리하게 짜는 방법

우주의 규칙은 이미 400년 전 바다에 있었다.

2026.09.23 | 조회 57 |
0
|

그 쓰레기는 누가 치우나

2026년 6월, 스페이스X가 상장했다. 사상 최대 규모의 공모였고 첫날 주가가 20% 가까이 올랐다. 우주산업이 드디어 시장의 인정을 받았다고 할 만한 사건이었다.

그런데 같은 시기에 다른 이야기도 심심찮게 들린다. 민간 업체들이 쏘아 올린 발사체나 물건 등이 궤도에 그대로 남아 우주 쓰레기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게 왜 문제인지는 조금만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다. 쓰레기가 늘면 지금 쓰는 위성들이 그걸 피해 다녀야 한다. 통신도 내비게이션도 날씨 예보도 전부 거기 얹혀 있으니 남의 일이 아니다. 그리고 쓸 만한 궤도는 무한하지 않다. 먼저 올린 쪽이 자리를 차지하고 거기에 쓰레기까지 남겨 두면, 나중에 올리려는 나라에게는 쓸 자리가 그만큼 줄어든다.

그 쓰레기는 누가 치워야 하나. 안 치우면 어떻게 되나.

찾아보니 그걸 정해 둔 규칙이 없었다.

정확히 말하면 규칙 비슷한 것은 있다. 각국 우주기관들이 모여 만든 지침이 있고, 유엔 우주위원회도 2007년에 비슷한 지침을 채택했다. 위성이 수명을 다하면 궤도에서 내리라는 내용이 들어 있다.

다만 그건 전부 권고다. 어겨도 제재가 없고 집행할 기관도 없다.

대신 실제로 힘이 있는 규칙은 다른 데 있다. 미국은 자기 나라 안에서, 낮은 궤도를 쓰는 위성은 임무가 끝나고 5년 안에 내려오게 하라는 규칙을 만들었다. 미국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 사업자에게는 이쪽이 진짜 규칙이다. 그러니까 지금 우주의 규칙은 이렇게 생겼다. 모두에게 해당되는 것은 구속력이 없고, 구속력이 있는 것은 한 나라의 것이다.

이 모양을 어디서 본 것 같다면 맞다. 400년 전 바다에서 똑같은 일이 있었다.

 

바다는 누구의 것도 아니라고 쓴 사람

1603년, 네덜란드 배가 싱가포르 해협에서 포르투갈 상선 한 척을 털었다. 실린 화물이 얼마나 많았던지 팔아치운 돈이 그 회사 자본금을 두 배로 불렸다고 한다.

그런데 이건 아무리 봐도 강도질이다. 포르투갈의 항의도 그 지점을 정확히 찔렀다. 이 바다는 우리 것이다, 교황이 그렇게 정해 줬고 스페인과도 선을 그어 나눴다, 그러니 허락 없이 들어온 너희 배를 우리가 막는 것은 권리 행사이고 너희가 우리 배를 턴 것은 그냥 해적질이다.

당시 기준으로 이 논리는 탄탄했다. 1455년에 교황이 내린 공식 문서가 포르투갈 왕의 허락 없이 그 바다를 항행하는 것을 금했고, 1494년에는 포르투갈과 스페인이 세계를 반씩 갈라 가지는 조약까지 맺었다. 그게 그 시대의 규칙이었다.

회사는 화물을 돌려주는 대신 스물한 살짜리 법률가를 고용했다. 우리가 한 일이 정당하다는 것을 논리로 만들어 달라고. 그 청년이 휘호 흐로티위스다.

그가 쓴 글의 제목은 『포획법 주해』였다. '노획물의 법'이라는 뜻이고, 말 그대로 그 나포가 정당한지만 따지는 글이다. 논증은 이렇게 간다.

바다는 누구의 소유도 될 수 없다. 그러니 포르투갈이 동인도로 가는 길을 독점할 권리도 없고, 교황이 그런 권리를 줄 수도 없다. 그런데 포르투갈은 실제로 다른 나라 배가 그 바다를 지나는 것을 힘으로 막아 왔다. 그렇다면 먼저 부당한 짓을 한 쪽은 포르투갈이다. 우리의 나포는 강도질이 아니라 부당한 자에 대한 정당한 응징이다.

순서를 보면 보인다. '바다는 자유롭다'가 먼저 서야 포르투갈이 가해자가 되고, 포르투갈이 가해자여야 그 나포가 정당해진다. 원리가 있어서 결론이 나온 것이 아니라, 원하는 결론이 있어서 원리가 필요했다.

이 글의 열두 번째 장을 따로 떼어 작은 책으로 낸 것이 『자유해론』이다. 바다는 누구의 것도 아니며 모두가 그 위를 지날 수 있다는, 지금도 국제법 책 첫머리에 나오는 그 원리.

그런데 우리가 아는 제목은 줄인 것이고 원래 제목은 더 길다.

자유해, 또는 네덜란드인이 동인도 무역에 참여할 권리에 관하여

모두를 위한 원리처럼 보이는 그 문장의 제목 안에, 그 권리가 누구 것인지가 이미 적혀 있다.

그러니 '바다는 자유롭다'는 말은 이념이 아니라 연장이었다. 먼저 간 쪽이 쳐 둔 울타리를 걷어내는 데 쓰인 것이다.

반대편에도 증거가 있다. 얼마 뒤 영국에서 정반대 주장이 나왔다. 바다도 땅처럼 소유할 수 있고 우리 앞바다는 우리 것이라고. 왜 그랬을까. 그때 영국 앞바다에서 청어를 쓸어 가던 것이 네덜란드 어선이었다.

더 재미있는 것은 흐로티위스 본인이다. 네덜란드가 동인도에서 자리를 잡고, 이번에는 영국이 그 어장에 들어오려 하자, 그는 바다가 닫힐 수 있다는 쪽으로 논지를 옮겨 갔다. 같은 사람이, 자기 나라의 자리가 바뀌자, 자기가 세운 원리의 반대편에 섰다.

아무도 원리를 믿지 않았다. 다들 자기 위치에 맞는 원리를 골랐을 뿐이다.

덧붙이자면 흐로티위스는 우주법 문헌에도 자주 등장한다. 바다가 모두의 것이라는 원칙을 세운 사람으로, 우주를 공동의 영역으로 보자는 주장의 존경스러운 조상으로. 그 인용이 틀린 것은 아니다. 다만 그가 그 문장을 왜 썼는지를 함께 보면, 그는 조상이기 이전에 선례다.

 

같은 나라가 두 번 다른 말을 했다

쓰레기를 누가 치우느냐는 결국 저기 있는 것이 누구 것이냐와 같은 질문이다. 치울 의무는 소유가 정해져야 생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주에서 소유를 어떻게 다뤄 왔는지를 보면 앞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1967년에 만들어진 우주조약이 있다. 그 제2조는 우주를 어떤 나라도 자기 것으로 삼을 수 없다고 못 박아 두었다. 주권을 주장해서도 안 되고, 쓰거나 차지해서도 안 되고, 그 밖의 어떤 방법으로도 안 된다고.

이 조약이 만들어진 가장 큰 이유는 자원이 아니라 무기였다. 대륙간탄도미사일이 등장하고 인공위성이 올라가면서, 궤도에 핵무기를 띄우는 일을 막자는 논의가 먼저 있었다. 실제로 조약의 중심 조항도 거기에 있다. 그러니 이 조약을 이익 계산으로만 읽으면 부당하다.

다만 하나는 짚어 둘 만하다. 그 조약을 주도한 쪽이 미국과 소련이었고, 당시 달에 가서 무언가를 가져올 수 있는 나라는 사실상 그 둘뿐이었다. 누구도 천체를 차지할 수 없다는 원칙은, 그 두 나라의 이익과 조금도 어긋나지 않았다.

 

2015년, 미국은 자기 나라 법을 하나 만들었다. 미국 국민이 우주에서 캐 온 자원은 그 사람이 갖고, 옮기고, 쓰고, 팔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그 법이 동시에 이렇게 적어 두었다는 점이다. 미국은 어떤 천체에 대해서도 주권이나 배타적 권리나 소유권을 주장하지 않는다고. 권리는 만들면서, 조약을 어긴 것은 아니라고 법조문으로 미리 방어해 둔 것이다.

논리는 이렇다. 1967년 조약이 막은 것은 나라가 천체 자체를 소유하는 일이고, 2015년 법이 허용한 것은 거기서 떼어 온 물건을 개인이 갖는 일이다. 땅은 못 갖지만 캐낸 돌은 가질 수 있다. 이게 되는 것인지 아닌지는 아직 결론이 없다.

1967년의 미국과 2015년의 미국 사이에 달라진 것이 무엇인가.

1967년에는 거기서 뭘 캐 온다는 것이 아무에게도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지금은 캘까 말까를 진지하게 고민할 만큼 기술이 와 있다.

이 이야기는 미국만의 것이 아니다. 중국과 러시아는 미국이 만든 판에 들어가지 않았는데, 그렇다고 기존 규칙을 지키자고 한 것도 아니다. 두 나라는 달에 자기들의 연구기지를 세우는 별도의 협력체를 따로 꾸리고 있다. 방향이 갈릴 뿐 동작은 같다. 갈 수 있게 된 쪽은 저마다 자기 판을 만든다.

서명은 했는데 묶이지는 않았다

400년 전과 달라진 것이 하나 있기는 하다. 지금은 묶이지 않으면서 규칙을 쓰는 방법이 따로 마련돼 있다.

먼저 알아 둘 것이 있다.
국제조약에서 서명과 비준은 다르다.
서명은 그 문서에 동의한다는 표시에 가깝고,
비준은 자기 나라를 거기에 법적으로 묶는 절차다.
나라마다 방식이 다른데 미국은 상원이 동의해야 한다.
서명만 하고 비준하지 않으면 그 나라는 그 조약에 묶이지 않는다.

이게 실제로 어떻게 쓰이는지는 바다 쪽에 잘 남아 있다.

미국은 유엔 해양법 협상에 끝까지 참여했다. 그런데 1982년에 협약이 완성되자 서명하지 않았다. 심해저 자원을 인류 공동의 것으로 하고 국제기구가 관리하게 한 대목이 마음에 안 든다는 이유였다.

그래서 1994년에 그 대목을 손보는 별도 협정이 만들어졌다. 미국이 요구한 것이 거의 다 반영됐고, 그 기구 이사회의 의석까지 보장됐다. 미국은 그 협정에 서명했고, 해양법협약을 일반 국제법으로 인정한다는 말까지 했다.

그런데 비준은 하지 않았다. 그 뒤로 부시도 오바마도 상원에 처리를 요청했지만 지금까지도 되지 않았다. 원하는 조항을 다 받아내고 의석까지 받고도 들어가지 않았다면 남는 설명은 하나뿐이다. 문제는 조항이 아니었다.

그래서 지금 우주에서 쓰이는 방식은 아예 다르다. 2020년에 나온 아르테미스 약정은 미국이 주도해 만든 문서로, 달에 다시 가는 계획에 참여하려면 이런 원칙을 지키자고 정리해 둔 것이다. 투명한 정보 공개, 긴급 상황에서의 구조 협력, 유적 보호, 그리고 자원 채취에 관한 조항이 들어 있다.

핵심은 그 문서가 조약이 아니라는 것이다. 법적 구속력이 없는 정치적 약속이라 비준할 것이 없고, 상원에 갈 일도 없다. 그리고 거기에는 우주 자원을 캐서 쓰는 것이 1967년 조약이 금지한 '소유'에 해당하지는 않는다는 문장이 들어 있다.

법의 언어는 그대로 쓰면서 법적 의무는 만들지 않는다. 그러면서 서명국을 일흔 곳 가까이 모은다. 국제법에서는 여러 나라가 오래 그렇게 해 온 관행이 나중에 규칙이 되기 때문에, 숫자를 모으는 것 자체가 규칙을 쓰는 일이 된다.

그런데 강대국은 대부분의 경우 규칙을 따른다

여기까지 읽으면 이런 생각이 들 수 있다. 결국 국제법은 힘센 쪽의 장식일 뿐이지 않나.

그런데 하나를 빠뜨렸다. 강대국은 대부분의 경우 규칙을 따른다.

무역에서, 금융에서, 외교 관행에서, 미국은 오랫동안 자기가 만든 규칙에 스스로 묶여 왔다. 그게 아량이라서가 아니다. 힘을 매번 꺼내는 것보다 규칙을 한 번 굳혀 두는 편이 싸기 때문이다. 규칙이 있으면 나머지 나라들이 알아서 따르고, 강대국은 그 순응을 힘을 쓰지 않고 얻는다. 자기를 묶는 것은 양보가 아니라 투자다.

그래서 그렇게까지 공들이는 것이다. 미국은 2015년 법에 굳이 주권을 주장하지 않는다는 단서를 박았다. 아르테미스 약정은 구속력이 없는데도 조문의 형식을 갖추고 있다. 해양법에서는 마음에 안 드는 조항을 고치려고 십 년 넘게 협상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장식에 그 수고를 들이는 나라는 없다. 규칙에 값이 있으니 규칙을 쓰려고 다투는 것이다.

여기서 앞의 이야기와 이 이야기가 어긋나 보일 수 있다. 위치가 원리를 정한다면서, 대부분은 따른다니. 그런데 둘은 다른 층위의 말이다. 위치가 정하는 것은 어떤 원리가 채택되느냐다. 채택된 뒤에 그 원리가 지켜지느냐는 다른 문제이고, 그건 대부분 지켜진다. 지키는 편이 싸니까.

이탈은 예외다. 그리고 예외에는 조건이 있다. 묶이는 값이 묶여서 얻는 것보다 클 때.

우주가 정확히 그 자리다. 아직 아무도 거기 가 있지 않으니, 자기를 묶어서 사들일 순응이 없다. 반면 묶이는 값은 앞으로 그곳에서 벌어질 모든 일이다. 살 것은 없고 치를 것만 있는 판에서는 들어가지 않는 것이 계산에 맞다.

바다에서 규칙이 만들어지던 시절과 지금 사이에는 그래도 차이가 있었다. 20세기 내내 국제사회는 규칙을 어기면서도 규칙의 언어로 변명했고, 변명한다는 것은 그 규칙이 아직 값이 나간다는 뜻이었다. 작은 나라들이 목소리를 내면 조문이 실제로 바뀌기도 했다.

그런데 요즘은 그 변명의 수고마저 줄어드는 중이다. 다자기구는 힘을 잃고, 어기면서 대는 명분도 예전만큼 정성스럽지 않다. 그 자리를 뜻 맞는 나라들끼리의 약속과 각자의 국내법이 채우고 있다.

그러면 한정된 것을 어떻게 나눌지도 결국 예전 방식으로 돌아갈 수 있다. 먼저 간 열강이 규칙을 쓰고, 그 규칙이 보편의 이름으로 약소국에게 자행되었던 폭력적인 방식. 바다에서 시작해 제국의 시대 내내 세계가 그렇게 나뉘었다.

다가올 뉴스레터가 궁금하신가요?

지금 구독해서 새로운 레터를 받아보세요

✉️

이번 뉴스레터 어떠셨나요?

Mollue 님에게 ☕️ 커피와 ✉️ 쪽지를 보내보세요!

댓글

의견을 남겨주세요

확인
의견이 있으신가요? 제일 먼저 댓글을 달아보세요 !

다른 뉴스레터

© 2026 Mollue

사회과학과 인문학을 통해 세상을 이해하는 새로운 시각을 전달합니다.

메일리 로고

도움말 오류 및 기능 관련 제보

서비스 이용 문의admin@team.maily.so 채팅으로 문의하기

메일리 사업자 정보

메일리 (대표자: 이한결) | 사업자번호: 717-47-00705 | 서울특별시 송파구 위례광장로 199, 5층 501-2-31호

이용약관 | 개인정보처리방침 | 정기결제 이용약관 | 라이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