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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영의 청구서: 그 비용은 누가 치렀나

기후위기는 오래 누적된 번영의 결과값이다.

2026.10.14 | 조회 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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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자기계발에 돈과 시간을 쓰는 일이 유행했다. 이제 관심은 조금 다른 곳으로 옮겨갔다. 잘 자고, 덜 지치고, 몸과 마음을 회복하는 데 기꺼이 값을 치른다. 개인의 목표가 '더 나은 나'에서 '덜 소진된 나'로 바뀌는 동안, 국가는 여전히 성장률과 경쟁력을 앞세운다. 국가는 왜 아직도 '더 많이'를 향할까. 그 과정에서 생긴 혜택의 이면은 누가 치르고 있을까.

1. 웰니스 열풍

반신욕이나 사우나는 잠깐 삶의 속도를 늦추게 한다. 물을 데우고, 공간을 만들고, 몸을 쉬게 하는 시간이다. 피로를 회복하고 스트레스를 낮추려는 욕구는 분명 진짜처럼 느껴진다.

이 욕구를 산업의 규모로 모아 보면 웰니스는 거대한 경제가 된다. 글로벌 웰니스 인스티튜트(GWI)는 건강한 생활방식과 활동을 일상에 들이도록 돕는 11개 산업을 '웰니스 경제'로 묶는다. GWI에 따르면 세계 웰니스 경제는 2024년 6조 8천억 달러에 이르렀고, 2013년 이후 두 배로 커졌다. 같은 기간 연평균 성장률은 6.5%로, 세계 GDP 성장률 3.2%보다 높았다. 다만 이 수치는 GWI가 넓게 정의한 산업 범주의 집계다.

2024년 세계 평균 1인당 웰니스 지출은 831달러였다. GWI는 이를 같은 해 1인당 의료서비스 지출 806달러와 비교한다. '아플 때 쓰는 돈'보다 '아프지 않으려고 쓰는 돈'이 많다고 곧바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두 수치는 집계 범위와 산출 방식이 다르고, 웰니스 경제에는 공공보건과 예방의료처럼 다른 통계와 겹칠 수 있는 항목이 포함된다. 한국의 웰니스 시장은 1,190억 달러로 세계 12위로 집계됐다. 숫자는 흥미롭지만, 시장의 크기를 웰빙의 크기와 혼동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사람들의 관심이 물질에서 비물질로 옮겨갔다고 해서 소비가 줄었다는 뜻은 아니다. 달라진 것은 소비의 대상이다. 더 많이 갖는 대신 덜 지치고 덜 아픈 상태에 돈을 쓴다. 그 욕구가 진짜인지,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또 하나의 불안인지, 웰니스가 정말 웰빙으로 이어지는지는 다음 호에서 따져 보기로 하자. 여기서는 질문을 한 층 올려 보려 한다. 개인이 덜 지치는 삶을 찾는 동안 국가와 세계는 무엇을 향해 왔을까.

 

2. 『번영의 대가』가 지루했던 이유

국가와 세계가 향해 온 곳은 분명하다. 더 많이 생산하는 쪽이다. 그 '더 많이'가 어떤 비용을 남겼는지 500년에 걸쳐 펼쳐 놓은 책이 수닐 암리스의 『번영의 대가』다.

솔직히 이 책을 100쪽쯤 읽었을 때는 지루했다. 한 민족이, 한 국가가 팽창할 때 인간에게는 어떠한 폭력이 행해졌고, 자연에는 어떠한 폭력이 행해졌는지를 역사를 따라 계속해서 보여주었다. 내게는 이미 아는 내용의 반복이었어서 새로운 내용을 기다렸지만, 새로운 내용이 없어 지루함을 느꼈다. 

아마 저자가 보여주려는 핵심은 바로 그 반복일 것이다. 예일대 인터뷰에서 저자 Sunil Amrith는 15세기 포르투갈이 마데이라섬을 정복한 뒤 숲을 태워 사탕수수 플랜테이션을 만들고, 노예화된 아프리카인과 원주민의 노동으로 이윤을 얻었다고 설명한다. 마데이라는 한동안 세계 최대 설탕 생산지였지만, 수십 년 뒤에는 산림이 크게 훼손된 섬으로 남았다. 번영의 이익을 얻은 곳과 손실을 떠안은 곳의 위치가 달랐던 셈이다.

이런 문제의식은 문명이나 경제발전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주장과 다르다. 기술과 산업은 질병을 줄이고 수명을 늘리는 데 기여했지만, 같은 과정에서 숲과 강과 생태계를 훼손하기도 했다. 인간의 자유와 생명 가능성을 넓힌 역사가 동시에 자연의 파괴를 확대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질문은 발전을 포기할 것인가가 아니다. 인간의 삶을 개선하는 데 정말 필요한 물질적 조건은 무엇이며, 그것을 위해 지금과 같은 규모의 파괴가 정말 필요한가. 더 잘 살기 위해 필요한 것과, 단지 더 많이 생산하기 위해 필요한 것을 구분할 수 있는가.

책의 반복은 이 질문을 역사적으로 되돌려 보낸다. 제국마다, 세기마다, 생산을 확대하는 방식은 달랐지만 인간에 대한 폭력과 자연에 대한 폭력이 서로 얽히는 패턴은 되풀이되었다. 오늘의 기후위기는 그 반복이 사라진 뒤 갑자기 등장한 사건이 아니다. 오래 누적된 번영의 결과값이다.

 

3. 기후위기는 누적된 결과값이다

기후위기는 모두가 같은 방식으로 만든 결과가 아니다. 책임을 어떻게 계산할지에 따라 숫자는 달라지지만, 역사적 초과 배출을 공정한 1인당 대기 사용권과 비교한 연구에서는 고소득 산업국가의 책임이 크게 나타난다.

Jason Hickel의 2020년 연구는 1850년부터 2015년까지의 배출을 분석했다. 연구진은 대기를 공유재로 보고, 350ppm이라는 행성 경계를 기준으로 각국의 공정한 몫을 설정한 뒤 실제 배출과 비교했다. 그 결과 경계를 넘긴 초과 이산화탄소 배출 가운데 글로벌 노스의 책임은 92%, 미국은 40%, EU-28은 29%로 계산됐다. 이는 현재 배출량의 비중이 아니라 역사적 누적 배출과 공정한 몫을 결합한 결과다.

자원 사용에서도 비슷한 비대칭이 확인된다. Hickel과 동료들의 2022년 연구는 1970년부터 2017년까지 국가별 물질 사용을 지속가능하고 공정한 자원 범위와 비교했다. 그 결과 고소득 국가는 전 세계 초과 물질 사용의 74%를 차지했고, 미국은 27%, EU-28의 고소득 국가는 25%를 차지했다. 중국은 15%, 나머지 글로벌 사우스의 저소득·중소득 국가는 8%로 계산되었다.

이런 연구가 하나의 숫자로 논쟁을 끝내지는 않는다. 어느 시점부터 계산할지, 행성 경계를 어디에 둘지, 공정한 몫을 인구 기준으로 나눌지, 생산 기준과 소비 기준 가운데 무엇을 택할지에 따라 결과는 달라진다. 그럼에도 여러 계산이 공통으로 보여주는 방향은 있다. 번영의 이익과 생태적 비용이 세계에 고르게 분배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숫자의 정확한 크기를 둘러싼 논쟁이 숫자가 가리키는 비대칭까지 지우지는 않는다.

Fanning과 Hickel은 1.5도 목표의 탄소예산을 1960년부터 추적해, 글로벌 노스가 공정한 몫을 초과해 대기를 사용한 데 대한 보상액을 2050년까지 192조 달러 규모로 추정했다. 이 금액은 법적으로 확정된 채무가 아니라, 대기를 공유재로 보고 초과 사용을 금액으로 환산한 연구상의 추정치다. 중요한 것은 액수 자체보다 청구서의 방향이다. 기후위기의 비용을 누가 부담할 것인지 묻는 순간, 현재의 배출량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기후위기는 자연이 인간 사회에 보내는 추상적인 경고가 아니다. 과거의 생산과 소비가 남긴 누적값이며, 그 누적값은 국가와 계층에 따라 다르게 만들어졌다. 어떤 곳에는 부와 인프라, 편리한 생활로 쌓였고, 다른 곳에는 생태계 손실과 건강 피해, 불안정한 생계로 쌓였다.

 

4. 한국은 어느 쪽에 서 있나

한국은 이 회계에서 피해를 입은 쪽으로만 자신을 설명하기 어렵다. Hickel과 동료들의 연구는 국제기구의 고소득국 분류를 바탕으로 글로벌 노스를 설정하고, 한국을 그 범주에 포함한다. 여기서 말하는 '북반구'는 지리나 도덕적 인간 유형이 아니라, 고소득국의 자원·노동 사용과 생태적 책임을 분석하기 위한 연구상의 범주다. 이 분류에서 한국은 외부의 자원과 노동을 순유입해 성장한 쪽에 놓인다.

이 분류가 한국의 역사적 경험을 지우는 것은 아니다. 한국은 식민지배와 전쟁, 빈곤을 겪었고 원조를 받던 국가였다. 짧은 기간에 산업화와 생활수준 향상을 이루었다는 사실도 중요하다. 다만 과거에 피해를 경험했다는 것과 현재 세계경제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지는 다른 질문이다. 한국은 한때 원조를 받던 나라였지만, 이제는 국제적 자원과 노동의 흐름을 통해 번영의 일부를 가져가는 나라가 되었다.

한국의 기후 논쟁이 꼬이는 것도 이 이중의 위치 때문이다. 우리는 아직도 스스로를 '따라잡는 나라'로 여기곤 한다. 그런데 세계 자원 흐름의 장부를 펼치면 한국은 이미 고소득 산업국가의 칸에 적혀 있다. 개인과 국가의 어긋남도 한국에서 선명하다. 개인은 '더 많이'만으로 살 수 없다는 사실을 몸으로 느끼는데, 국가의 목표는 여전히 성장률과 경쟁력에 묶여 있다.

따라서 한국에 필요한 질문은 단순히 "우리는 선진국인가, 개발도상국인가"가 아니다. 우리가 누리는 생활을 가능하게 한 자원과 노동은 어디에서 왔는가. 그 과정에서 발생한 비용은 누구에게 남았는가. 그리고 앞으로의 전환에서 한국은 피해를 호소하는 국가로만 남을 것인가, 아니면 더 큰 책임을 부담하는 국가로 움직일 것인가.

5. 닫기: 브레이크와 엔진

지난 500년의 진단에서 나온 처방은 여러 가지다. 자연을 권리의 주체로 인정하는 법, 원주민의 권리를 보호하는 제도, 생태계 파괴를 막는 사회운동, 그리고 새로운 삶의 상상력을 퍼뜨리는 문화가 있다. 이런 장치들은 분명 필요하다. 폭주하는 시스템에 브레이크를 달기 때문이다.

하지만 브레이크를 단다고 엔진이 바뀌지는 않는다. 경제가 더 많이 만들고 더 많이 팔아야 고용과 세수와 복지를 유지할 수 있는 구조라면, 효율이 좋아져도 전체 양은 다시 늘어날 수 있다.

국가가 '더 많이'를 쉽게 내려놓지 못하는 것도 이 구조 때문일 것이다. 성장이 멈추면 실업과 재정 압박이 먼저 커지고, 그 부담은 고스란히 시민의 삶으로 돌아온다. 그래서 성장을 목표에서 내리자는 말은 쉽게 경기침체를 받아들이자는 말로 들린다.

브레이크는 필요하다. 그러나 브레이크만 밟으면서 같은 엔진을 계속 돌릴 수는 없다. 반대로 엔진을 바꾼다는 말도 속도와 방향을 잃은 채 멈추자는 뜻이어서는 안 된다. 개인은 이미 성장 말고 회복과 시간을 원한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국가도 그 요구를 목표와 제도에 반영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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