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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가능한 번영은 무엇일까

탈성장과 녹색성장, 그리고 웰빙

2026.10.28 | 조회 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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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가 '성장'만을 바라보고 나아간다면, 회복과 시간을 원하는 개인의 바람과는 어긋날 수밖에 없다. 성장을 향해 달리는 사회에서 개인은 지치고, 그 지침을 사우나와 반신욕, 온갖 웰니스 상품으로 달랜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 구분해 둘 것이 있다. 웰니스(wellness)와 웰빙(well-being)은 같은 말이 아니다. 웰니스가 개인이 값을 치르고 사는 회복이라면, 웰빙은 삶이 전반적으로 괜찮은 상태, 그러니까 건강하게 오래 살고, 배우고, 쉬고, 사람들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조건이 갖춰진 상태다. 웰니스는 각자 사면 되지만, 웰빙의 상당 부분은 의료와 교육, 주거와 대중교통처럼 개인이 혼자서는 살 수 없는 것들에 달려 있다. 그렇다면 국가가 들여다봐야 할 것은 웰니스 시장의 크기가 아니라 국민의 웰빙이 아닐까.

그런데 성장만을 바라보는 목표의 문제는 개인에게서 그치지 않는다. 더 큰 문제는 환경이다. 2023년 7월,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지구 온난화의 시대는 끝났고, 지구가 끓는(global boiling) 시대가 왔다"고 말했다. 물론 성장을 목표로 하는 국가들도 환경을 아예 외면하지는 않는다. 성장은 계속하되 환경을 덜 해치는 방식으로 성장하자는 것, 우리가 흔히 '녹색성장'이라 부르는 길이다.

국제환경법 수업을 들을 때였다. 교수님께서는 기업에게 친환경적인 무언가를 단순히 강요할 것이 아니라, 친환경이 결국 산업이 되도록, 돈이 되도록 설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셨다. 당시의 나는 그 말이 합리적이라 생각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환경을 보호하는 일이 돈이 되어야 기업들이 그 방향으로 움직일 테니까. 그런데 여기서 질문을 하나 더 던져 볼 수 있다. 친환경이 돈이 되어 기업들이 정말 움직였다고 치자. 그 결과 지구 전체의 자원 사용과 탄소 배출은 충분히 빨리 줄어들어 그 목표를 달성하고 있을까?

오늘 함께 살펴볼 Jason Hickel의 답은 '아니다'다. 녹색성장론은 GDP가 성장하더라도 자원 사용과 탄소 배출은 줄일 수 있다고, 즉 둘을 분리(decoupling)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Hickel은 Giorgos Kallis와 함께 쓴 논문 「Is Green Growth Possible?」에서 이를 뒷받침할 경험적 증거가 부족하다고 말한다. 자원 사용이 성장과 함께 전 지구적으로 줄어든 적은 없고, 탄소 배출은 줄고는 있지만 1.5~2℃를 지키기엔 턱없이 느리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탈성장(degrowth)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의 직관과는 정반대에 있는 듯한 이 이론은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 그리고 놀랍게도, 이 이론은 앞에서 이야기한 웰빙으로 다시 돌아온다.

 

탈성장, 무엇을 줄이자는 걸까

탈성장이라는 말을 들으면 대개 '성장을 멈추자'는 뜻으로 받아들인다. 경제가 커지는 것을 그만두자는 것, 더 나아가 일부러 경제를 작게 만들자는 것. 이름만 보면 틀린 이해도 아니다. 그런데 막상 탈성장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글을 읽어 보면, 이 말을 쓰는 사람마다 가리키는 것이 조금씩 다르다는 걸 알게 된다.

이 말이 처음 퍼진 2000년대 프랑스에서 탈성장(décroissance)은 정확한 개념이라기보다 구호에 가까웠다. 이 흐름을 이끈 Serge Latouche조차 탈성장은 마이너스 성장과 같은 것이 아니며, 발전을 급진적으로 비판해 온 사람들을 한데 모으는 깃발에 가깝다고 말했다. 이후 연구자들이 이 말에 학문적 정의를 붙이기 시작하면서 강조점은 더 갈라졌다. 탈성장 연구의 중심에 있는 Kallis와 동료들은 이를 사람들의 웰빙을 높이고 생태 조건을 개선하는 방향으로 생산과 소비를 공평하게 줄여 나가는 것으로 정의한다.

Hickel의 정의는 여기서 한 걸음 더 구체적이다. 그가 줄이자고 하는 것은 GDP가 아니라 에너지와 물질의 사용량, 그러니까 땅에서 뽑아내고, 실어 나르고, 쓰고, 버리는 것들의 전체 양이다. 그는 탈성장을 "경제를 생명 세계와 다시 균형을 이루도록, 불평등을 줄이고 웰빙을 높이는 방식으로, 에너지와 자원 사용을 계획적으로 줄이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그리고 그 대상은 모든 나라가 아니다. 이미 지구가 감당할 수 있는 몫보다 훨씬 많이 쓰고 있는 북반구의 부유한 나라들은 줄여야 하지만, 기본적인 필요조차 채워지지 않은 남반구의 나라들은 오히려 필요한 부문에서 더 성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Hickel에게 탈성장은 '모두 성장을 멈추자'가 아니라, 누가 얼마나 줄이고 누가 얼마나 늘려야 하는지를 다시 나누자는 이야기에 가깝다.

그런데 왜 굳이 줄여야 할까. 앞서 말한 디커플링의 속도 때문이다. Hickel과 동료 연구자 Jefim Vogel은 2013년부터 2019년 사이 GDP가 성장하는 동안 탄소 배출이 실제로 줄어든, 즉 디커플링에 성공한 고소득국 11개국을 분석했다. 성공한 나라만 골라 본 셈이다. 그런데 이 나라들조차 그 속도라면 배출을 95% 줄이는 데 평균 220년 이상이 걸리고, 그동안 1.5℃ 목표에 비춰 자기 나라에 허용된 몫의 27배를 배출하게 된다. 디커플링은 일어나고 있지만, 기후가 기다려 주는 속도로는 아니라는 것이다. 성장의 속도를 그대로 둔 채 배출만 줄이기 어렵다면, 남는 선택지는 그 성장을 떠받치는 물질의 양을 손보는 것이다.

 

그런데 덜 쓰면 덜 행복해지지 않나

여기서 자연스럽게 드는 의문이 있다. 덜 생산하고 덜 쓰면 우리 삶도 그만큼 나빠지지 않을까. Hickel의 답이 흥미로운 지점이 여기다. 그는 어느 수준까지는 소득이 늘수록 수명과 건강도 좋아지지만, 그 선을 넘으면 둘 사이의 연결이 급격히 약해진다고 본다. 그 이후 사람들의 삶을 좌우하는 것은 GDP의 크기가 아니라 의료와 교육, 주거 같은 공공서비스가 얼마나 보편적으로 제공되는지, 그리고 부가 얼마나 고르게 나뉘는지다. 그가 자주 드는 예가 코스타리카다. 코스타리카의 1인당 GDP는 미국의 4분의 1에도 못 미치지만, 기대수명은 81.0세로 미국(78.9세)보다 높다.

도입에서 나눈 웰니스와 웰빙을 떠올려 보면, Hickel의 주장은 결국 이런 이야기다. 웰니스는 성장이 키운 시장에서 개인이 사는 것이지만, 웰빙은 경제의 크기보다 사회가 무엇을 함께 제공하느냐에 달려 있다. 그래서 2025년, Hickel을 비롯해 이 분야를 이끄는 학자 아홉 명은 한 편의 공동 논문에서 GDP 성장이라는 목표를 지구의 한계 안에서 인간의 웰빙을 높이는 목표로 바꾸자고 제안했다. 눈여겨볼 것은 이 논문의 제목에 '탈성장'이 아니라 '포스트성장(post-growth)'이라는 말이 쓰였다는 점이다. 성장을 줄이는 것 자체가 목표가 아니라, 성장을 목표의 자리에서 내려놓자는 것이다.

 

그래서, 어쩌자는 걸까

앞서 봤듯 Hickel의 탈성장은 '모두 성장을 멈추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러면 어쩌자는 걸까?

경제학자 Branko Milanović의 계산은 이 질문을 더 날카롭게 만든다. 세계 평균 소득은 구매력 기준 하루 약 16달러인데, 서구 국가 인구 가운데 이보다 적게 버는 사람은 14%에 불과하다. 세계 전체의 생산을 늘리지 않으면서 가난한 나라 사람들의 삶을 끌어올리려면, 나머지 86%의 소득이 줄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는 이를 정치적 자살이라고 불렀다. 국민 대다수의 소득을 줄이겠다는 공약으로 선거에서 이길 수 있는 정부가 있을까.

Hickel이라면 줄이자는 것은 금세 고장 나도록 만들어진 물건, 광고, 소고기 산업, 거대한 주택처럼 과잉된 것들이지, 사람들의 삶에 필요한 것이 아니라고 답할 것이다. 그래도 남는 문제가 있다. 그렇게 줄이면 경제 규모 역시 줄어들 가능성이 크고, Hickel도 이를 피하지 않는다. 그는 물건이 오래가도록 만들어지면 교체 수요가 줄어 성장에는 오히려 해가 될 수 있다고 인정하면서, "그래도 괜찮다"고 덧붙인다. 그런데 지금 우리의 고용과 세수, 연금과 복지는 대부분 성장을 전제로 짜여 있다. 탈성장이 옳은 방향이라 해도, 그 길로 가는 동안 무엇이 흔들리고 누가 그 비용을 치르는지에 대해 이 이론은 아직 충분한 답을 내놓지 못했다. 앞서 소개한 2025년 공동 논문조차 "전환의 정치, 그리고 북반구와 남반구 관계의 변화 같은 중요한 질문들이 아직 남아 있다"고 스스로 적고 있다.

 

그사이, 중간 길마저 밀려나고 있다

그렇다면 현실적인 답은 다시 녹색성장일까. 디커플링이 느리다면 더 빠르게 만들면 된다. 재생에너지에 더 투자하고, 탄소에 더 높은 값을 매기고, 친환경이 더 확실하게 돈이 되도록. 교수님의 말처럼. 그런데 지금 세계의 관심과 돈은 다른 곳으로 몰리고 있다. 인공지능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전 세계 데이터센터의 전력 소비가 2024년 약 415TWh에서 2030년 약 945TWh로 두 배 넘게 늘 것으로 내다봤다. 실제로 2025년 한 해 동안 구글의 배출량은 자체 기준으로 18%, 아마존은 16% 늘었고, 아마존은 그 원인으로 데이터센터 건설을 꼽았다. 데이터센터가 전체 에너지 부문 배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아직 크지 않다. 문제는 배출량보다 우선순위다. 각국이 AI 패권을 두고 경쟁하는 사이, 새로 짓는 발전소와 송전망, 투자 자본과 정책의 관심이 AI를 먼저 향한다. 탈성장은 너무 멀고, 녹색성장은 뒤로 밀린다. 그렇게 되면 남는 것은 우리가 처음 문제 삼았던 바로 그것, 성장만 바라보는 목표다.

 

국가는 무엇을 목표로 삼아야 할까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개인은 이미 회복과 시간을 원한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사우나와 반신욕, 웰니스 시장이 커지는 것은 그 신호다. 하지만 그 회복을 각자 돈을 내고 사야 한다면 그것은 웰니스에 머문다. 웰빙이 되려면 국가가 그 요구를 목표와 제도 안에 넣어야 한다.

Hickel의 탈성장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그러나 그가 던진 질문, 왜 국가의 목표가 GDP여야 하는가는 피해 가기 어렵다. 경제학자 Jeroen van den Bergh는 탈성장과도 녹색성장과도 다른 자리를 제안한다. GDP가 오르든 내리든 거기에 매달리지 말고, 탄소에 값을 매기는 것처럼 문제를 직접 겨냥하는 정책을 쓰자는 것이다. 그는 이를 '무성장(agrowth)'이라 불렀다. 성장을 줄이자는 데는 동의하지 않는 사람도, 성장을 목표의 자리에서 내려놓자는 데는 함께 고민해 볼 수 있지 않을까.

당신이 사는 나라가 성장률 대신 하나의 숫자를 목표로 삼는다면, 그 숫자는 무엇이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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