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자님 안녕하세요. 희정입니다.
사실 두 번째 편지를 쓰고 있어요. 와, 이전에 저장했던 게 그대로 발송이 되어 버리다니 제가 썼던 편지 다 어디 갔나요. 갑자기 벚꽃이야기가 나와 당황했을 구독자님 사실은 연말 분위기에 대한 끝인사를 하고 있었단 말이지요.
<산책하는 말들>을 시작합니다. <마흔 일기>와 번갈아 가며 한 달에 한 편씩 보내드릴 예정이에요. 산책하는 말들은 걷기와 쓰기를 함께하는 제 프로그램에서 따왔습니다. 다와다요코의 책 <여행하는 말들>에서 영감을 받은 제목이에요.
산책하듯 자유롭게 떠오르는 것들을 글로 옮겨 보려고 합니다. 오늘의 영감님이 이걸 쓰거라 명하시면 부르는 대로 적어볼게요.
1. 산책하는 말들 / 업데이트는 나중에
“어머어머 벌써 10시야. 엄마 이거 꼭 봐야 돼.”
엄마의 핸드폰에서 알람이 울리자 기다리던 프로가 있다며 서둘러 티브이 채널을 돌렸다. 박진영이 가요계 선배 넷을 걸그룹으로 만든다는 프로였다. 티브이를 잘 보지 않는 나는 <골든걸스>라는 프로가 있다는 것도 그날 처음 알았다.
친정집에 가면 티브이도 보지 않으면서 다들 티브이 앞에 모인다. 꼭 무언가를 본다기보다 식구들이 엉덩이를 붙이고 나란히 앉아 있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지만 일단 프로그램이 시작되면 어찌됐든 모두들 열심히 본다. 친정에 가면 어쩐 일인지 관심 없던 트로트나 대하사극도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다. 하릴없이 거실에 늘어져 있을 수 있는 것도, 친정으로 한정되는 여유로움이다.
소파에서 핸드폰을 하며 티브이를 힐끗거리는데 엄마가 소리내서 웃는다. 한때 가요계를 주름잡던 가수들을 트레이닝해야 하는 박진영의 쩔쩔매는 모습이 나올 때마다 하하하하 웃음을 터뜨렸다. 기대보다 멋지게 소화하는 골든 걸스 멤버들을 보며 뿌듯해진 박진영이 해맑게 물개박수를 치면 엄마도 ‘역시!’ 잘한다고 맞장구를 쳤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사람들의 ‘그 후’를 이야기하는 프로가 많아진 것 같다. 은퇴한 운동선수들이 종목을 바꿔 새로운 스포츠에 도전하고, 레전드라고 불리던 가수들이 그때 그시절 노래를 무대 위에서 다시 부른다. 그 사람들이 한 때는 얼마나 대단했으며 같은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에게 그들의 존재는 추억이자 젊음이었다는 걸 상기시킨다.
어떤 이는 추억팔이라며 새로운 아이템이 그렇게 없냐 비난하지만 나는 그 사람들의 절정이었던 순간 그 후를 보는 게 좋았다. 잘 올라가는 것만큼이나 잘 내려오는 것이 중요한 법이니까. 시대가 변해도 여전히 올라가는 사람, 잘 내려온 후에 다시 올라가려고 도전하는 사람, 혹은 잘 사라지려고 마음먹은 사람들의 그 후가 궁금했다. 그것도 내가 ‘다음’을 생각해야 하는 나이가 되었기 때문이겠지.
골든걸스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단연 연장자인 인순이의 태도였다. 일주일에 5일은 합숙을 했으면 좋겠다는 박진영의 폭탄(?) 발언에 호의적이었던 신효범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모든 순간 어려움을 토로하던 이은미 역시 절반은 농담으로 그만두겠다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다. 하지만 인순이의 한 마디에 분위기는 반전됐다.
“궁금한 건 해보는 스타일이야. 뭐, 지내보고 안 좋으면 마는 거고 좋으면 좋은 거지. 안 해보고 상상하는 것보다 해보는 게 편해. 나이 들면 용기를 내려놓는다고 하잖아, 내려놓기 싫어.”
조pd와 ‘친구여’를 부르고 카니발의 ‘거위의 꿈’을 리메이크해서 부르던 인순이의 무대가 생각났다. 무대 의상은 또 어땠나, 매번 인순이가 무대에 오를 때마다 기사에는 ‘파격’이라는 단어가 따라붙었었다.
해보지 않은 것에 도전하는 건 두려운 일이다. 나이가 들수록 그렇다. 그래서 젊은 시절 아무렇지 않게 하던 것을 나이 들어 해내면 박수를 받는 것이다. 단순히 노화된 신체 때문이 아니라 모든 것에 한 스푼의 용기가 더해져야 하기 때문에.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 관계를 맺고, 새로운 곳에 적응하고,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 모두 나이가 들수록 쉽지 않다. 자꾸 움츠려 든다.
골든걸스를 보면 오히려 가장 어린 이은미가 뭐든 회의적이다. 춤을 춘 적도, 팀 활동을 해 본 적도 없으니 어느정도 그럴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걸 그룹이라니 락커와 가장 동떨어진 이미지이니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자꾸 못한다 어깃장을 놓는 이은미의 모습이 미운 오리 새끼처럼 유별나 보였다. ‘나이도 저 중에서 가장 어리면서. 자꾸 왜 저래?’ 재미있게 보고 있는 엄마 옆에서 훈수를 뒀다. 하지만 누군가를 싫어하는 건 나와 닮아서라고 했던가, 내가 만약 저 사이에 끼어있다면 아마도 이은미의 포지션이었을 것이다.
나는 변화를 두려워한다. 인스타그램이 업데이트되는 것도 싫다. 변화를 자연스럽게 소화하던 시기가 지나고 이제는 달라진 포맷에 적응하기 위해 따로 시간을 쏟는 것이 번거롭다. 어디 물어보기도 쑥스러운 간단한 것을 배우려고 애써야 하는 것도 인정하기 싫고. (몇 달 전만 해도 나는 스토리에 글씨 쓰는 법을 검색했었다.) 그러면서도 ‘요즘’과 멀어지지 않기 위해 애를 쓴다. 유튜브를 하고, 릴스를 올리고, 뉴스레터를 쓰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내 글을 팔기 위해서 나를 알리는 플랫폼이 자꾸 바뀌니 따라갈 수밖에. 어차피 따라가야 한다면 즐겁게 따라가자고 나를 다독일 뿐이다.
북노마드의 대표 윤동희의 산문집 <좋아서, 혼자서>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나이 들며 가치관이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데 힘을 쏟지 않는다. 젊은 사람을 멀리한다. 젊은 사람과 일의 관계를 거의 맺지 않는다. 세대 간극을 극복할 용기가 내겐 없다. 그들을 응원한다는 겉치레도 하지 않는다. 그들을 방해하지 않는 것. 그들을 위하는 나의 매너다.
나는 이 담백한 고백도 무척이나 좋았다. 한 때 나이듦을 받아들이고 나아가는 과정에 꼭 도전과 파격이 필요한 것은 아니겠구나. 따라라기 보다 선긋기로 내 자리를 굳건히 지키는 방법도 있겠구나 배웠다.
핸드폰이고 컴퓨터고 낯설어지는 게 싫어서 업데이트를 하겠냐는 물음에 나는 항상 나중에, 나중에, 최대한 미룰 수 있을 때까지 미룬다.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꺼진 노트북 화면에는 업데이트를 진행중이라는 문구가 나온다. 재부팅 되기를 기다리며 멍하니 앉아서 어쩔 수 없는 변화를 받아들이기로 한다. 아무것도 업데이트되지 않는 삶이 과연 괜찮을지 생각해 본다.
작년 12월에는 연말정산에 대한 글을 썼었는데 올해는 어떤 글로 마무리할까 고민 중이에요. 어쩌면 연말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글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구독자님은 어떻게 올 한 해를 마무리하실 계획인가요? 저는 오늘부터 차분히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또 편지할게요.
23.11.27.
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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