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어인지 몰랐을 한자어들

귤, 포도는 너무 유명해서 안 썼습니다.

2023.04.19 | 조회 2.82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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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를 습득하는 유일한 방법은 ’이해할 수 있는 입력‘이라는 내용의 흥미로운 영상을 본 적이 있습니다. 혹시 이 내용이 학계에서 뒤집혔는지는 저도 잘 모릅니다만, 적어도 제게는 맞는 말처럼 들립니다. 그리고 지금 대만에 놀러 와서 그 예시가 될 수 있는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이곳 말을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저는 여기서 아무리 많은 말을 들어도 ‘셰셰’ 이상의 말을 알아 듣기가 어렵습니다만, 한자를 어느 정도 읽을 줄 알기 때문에 ‘이해할 수 있는 입력’을 계속해서 받으며 독해 능력 만큼은 굉장히 빠르게 늘고 있습니다.

언어를 습득하는 유일한 방법

한자문화권으로 해외 여행을 온 것은 이번이 처음인데, 한자를 공유하는 것만으로도 여행이 이렇게 편해지는구나 싶어 새삼스레 어릴 적 한자를 많이 가르쳐주신 아버지께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그래서 오늘의 페퍼노트 주제는 ‘이것까지 한자어일 줄은 몰랐을걸?‘ 싶은 단어들입니다.

‘귤橘‘이나 ’포도葡萄‘는 이제 너무 유명해져서 페퍼노트 구독자 님들이면 이미 다 아시리라 생각하고 넘어가겠습니다. ‘조깅‘은 영단어니까 ’아침 조, 뛸 깅‘에 속으시면 안 됩니다.

  • ‘지금只今’부터 시작합니다. 같은 의미의 ‘시방時方’도 사투리 아닙니다.
  • ’역시亦是‘ 구독자 님이라면 그 정도는 알고 계셨을까요? ‘역亦’은 ‘또’라는 뜻이고, ‘시是’는 영어의 be 동사와 비슷한 의미입니다. 영어로 옮기면 ‘So be it’ 정도가 되려나 싶네요.
  • 괜찮습니다. 어차피 ‘어차피’가 한자어인 건 모르셨을 테니까요. ‘어於’는 영단어 ‘at’ 정도의 의미이고, ’차此‘와 ’피彼‘는 ’피차일반‘할 때 그 글자들로 ’이것‘과 ’저것‘을 의미합니다. 즉 풀어서 생각하면 ’이러나 저러나’ 정도의 의미입니다. ‘어짜피’라고 맞춤법을틀리는 경우를 많이 보는데, 한자어라는 걸 알고 나면 ‘짜’가 쉽게 나오진 않을 것 같습니다.
  • 심지어 ‘심지어’도 한자어입니다. ‘심甚’하다 못해 ‘~에(=어於)’ ‘이르다(=지至)’ 정도의 의미입니다.
  • 자신 있으셨는데 ’하필何必‘ 제가 모르셨던 단어들만 콕콕 집어냈나요? ‘하필’을 사전에서 찾으면 ‘다른 방도를 취하지 아니하고 어찌하여 꼭’이라고 나오는데 ‘어찌하여’라는 뜻의 ‘하何’와 ‘꼭’이라는 뜻의 ‘필必’이니까 한자 그대로의 의미입니다.
  • 물론 ‘물론’도 한자어입니다. ‘물勿’은 하지 말란 뜻이어서 ‘논論’할 것도 없다는 의미가 됩니다.
  • 별안간 쏟아지는 한자어가 많아 신기하시죠? ‘별안간瞥眼間’, ‘눈 깜짝할 사이’라는 의미입니다. 참고로 ‘순식간瞬息間‘의 경우도 ‘눈을 한 번 깜짝하거나 숨을 한 번 쉴 만한 아주 짧은 동안’이라는 뜻의 한자어가 되는데, 이 때 ‘순식’은 10의 -16 승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 도대체 어디까지 한자어인가 싶으실 텐데 ‘도대체都大體’도 한자어입니다.
  • 혹시 ‘혹시’는 아니겠지 생각하셨다면, ‘혹或’ 자 자체가 혹시라는 뜻임을 알려드립니다. ‘시是’는 앞서 ‘역시’에서의 ‘시’와 같습니다.
  • 어색하시겠지만 ‘어색’도 한자어입니다. ‘말(=어語)’이 ‘막힌다(=색語)’라는 뜻입니다.
  • 점점 재밌어지는데, ‘점점’도 한자어입니다. ‘점漸‘을 사전에서 찾으면 ’점점 점‘이라고 나오니까 ’점점‘은 ’점점점점‘이란 뜻이고, 그 말은 곧 ’점점점점점점점점‘이란 뜻이고….(농담입니다)
  • ‘과연果然‘ 한자어가 많긴 많습니다.
  • ’제발‘ 그만 하라고요? ‘제발’은 한자어가 아닙니다. 이 쯤 되면 한 번은 속으실 것 같아서 끼워 넣었습니다.
  • ‘아침’, ‘점심’, ‘저녁’ 중에는 ‘점심點心‘이 한자어입니다. 중국이나 한국은 원래 아침, 저녁 두 끼니만 먹는 문화였어서 그 중간에 마음에 점 정도 찍는 느낌으로 먹는 게 점심이었다고 합니다.
  • ‘어제’, ’오늘‘, ’내일‘ 중에는 ’내일來日‘이 한자어입니다. ’올 날‘이라고 직역할 수 있겠습니다. 같은 ’래‘ 자를 써서 오지 않은 걸 ’미래未來‘라고 합니다.
  • 筆. 이 글자는 ‘붓 필’ 자인데요, 그렇게 생각하면 ‘붓’은 순우리말 같습니다. 하지만 筆 자가 한국에 들어올 때 ‘붓’이라는 음으로 먼저 들어왔고, 나중에 다시 한 번 ‘필’이라는 발음으로 정리 된 특이한 케이스입니다. 비슷하게 ‘먹 묵墨’ 자도, ‘먹’이라는 발음으로 일찌감치 들어왔다가 나중에 ‘묵’이라는 발음으로 정리됐습니다.
  • 붓과 먹이 좀 특이하긴 하지만, 들어온 지 오래 되어 발음이 변한 한자어는 꽤 있습니다. ‘짐승’은 ‘중생衆生’에서 온 것이고 ‘천둥’은 ‘천동天動’, ‘하늘이 움직인다’에서 온 것입니다. 워낙 많아서 나무위키 링크를 대신 걸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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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anelle

    1
    3년 이하 전

    여행에서 받는 영감으로 알찬 경험을 하시는 덕분에 저도 좋은 경험하네요! 감사합니다

    ㄴ 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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