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다른 사람의 전공 얘기를 듣는 걸 좋아합니다. 한 전공에서 지극히 기초적인 지식이 그 전공을 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대단히 흥미로운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원자는 흔히 보이는 원자 모형처럼 생기지 않았다는 게 물리학 전공자에게는 상식처럼 느껴지지만 비전공자에게는 전혀 몰랐던 사실일 수 있습니다.
저 같은 경우엔 대학에서 국어국문학과 수학을 전공했는데요, 수학을 전공하면 재밌는 얘깃거리들이 꽤 생깁니다. 모든 사람들이 10년도 넘게 공부해 익숙한 학문이면서도, 정작 대학에서 전공하면 전공하지 않은 사람들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것들을 공부하게 되는 독특한 학문이거든요. 오늘 얘기할 주제는 수학 전공자들에게는 모를래야 모를 수가 없는 지식이면서 전공하지 않은 사람들에겐 '그게 도대체 무슨 소리야' 싶어지는 이야기입니다. 바로 '어떤 무한은 어떤 무한보다 크다'라는 사실입니다.
우선은 무한의 크기를 함부로 논해도 되는지부터 생각해야 합니다. 수학은 '엄밀함'에 집착하는 학문이어서 말싸움을 하는 어린 아이들처럼 대충 내 무한이 네 무한보다 더 크다고 우길 수 없습니다. 어느 무한이 어느 무한보다 크다고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무한이란 무엇인지는 물론이거니와 크다라는 것은 무엇인지, 애초에 크기를 비교할 수 있는 대상이긴 한지부터 엄밀하게 정해 나가야 합니다.
오랫동안 수학자들은 무한을 다루는 것을 꺼렸습니다. 무한은 역설과 모순을 낳기 쉬웠고, 잘못 다루면 수학 체계 전체가 무너질 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오랫동안 무한의 개념은 모호하게 남아 있었습니다. 19세기 독일의 수학자 게오르크 칸토어는 이런 무한의 개념을 정교하게 다듬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칸토어는 무한의 크기를 논할 수 있는 방법을 고안했습니다.
여기 초콜릿이 두 개가 있고 쿠키가 세 개 있다고 해봅시다. 둘을 짝짓다 보면 쿠키가 한 개 남습니다. 그렇다면 쿠키가 초콜릿보다 많다고 할 수 있습니다. 칸토어는 무한의 크기를 비교하는 데에도 이 직관적인 방법을 적용할 수 있다고 봤습니다.
예를 들어 자연수가 많을까요, 정수가 많을까요? 막연하게 생각해 보면 모든 자연수는 정수이기도 하므로 정수가 자연수보다 두 배 쯤 많아야 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자연수를 홀수와 짝수로 나누어, 홀수 1, 3, 5, 7, ...은 0, -1, -2, -3, ...으로, 짝수 2, 4, 6, 8은 1, 2, 3, 4, ...로 대응시키면 어떤 자연수든 정수와 짝지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자연수 집합과 정수 집합의 크기는 같습니다.
물론 수학이라는 학문 특성 상 무조건 이것이 진리라고 할 순 없습니다. 칸토어와 다른 방식의 크기 비교 방법을 도입해 정수 집합이 자연수 집합보다 크다고 주장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런 정의는 금세 이런저런 한계에 부딪히기 때문에 칸토어의 방법이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자연수 집합과 짝짓는 게 가능한 집합을 수학에서는 가산집합(Countable set), 즉 셀 수 있는 집합이라고 부릅니다. 우리가 물건을 셀 때 한 개, 두 개, 하며 자연수와 하나하나 짝을 지으니 아주 알맞은 이름입니다. 앞에서 살펴 본 정수 뿐만 아니라 유리수도 자연수와 짝 짓는 게 가능한 가산집합입니다. 다시 말해 자연수, 정수, 유리수의 개수는 모두 같습니다.
그렇다면 무리수는 어떨까요? 흥미롭게도 무리수는 이들보다 훨씬 더 많습니다. 무리수 집합은 셀 수 없는 집합, 불가산집합(Uncountable set)입니다. 즉 무리수는 유리수보다 셀 수 없을 만큼 더 많습니다. 증명 과정까지 담기엔 글이 어려워질 듯 하여 대각선논법이라는 키워드만 남기겠습니다. 궁금하신 분들은 링크를 통해 살펴 보세요.
이런 이유로, 수직선 위에 랜덤으로 점을 찍었을 때 그 점이 유리수를 나타낼 확률은 0입니다. 뒤집어 말해 무리수일 확률은 100%입니다. 수직선이 선일 수 있게 하는 건 빽빽하게 들어선 무리수이고, 유리수는 틈틈이 점으로만 존재합니다.
그리고 무한보다 큰 무한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실수의 모든 부분집합을 모은 집합의 원소 개수는 실수보다도 더 큰 무한이고, 그 집합의 모든 부분집합을 모은 집합의 원소 개수는 또 더 큰 무한입니다. 이렇게 무한보다 큰 무한, 그 무한보다 더 큰 무한은 무한히 이어집니다.
칸토어의 논리는 당시 수학계에서 받아들이기 어려운 개념이었습니다. 그의 스승이었던 크로네커마저 칸토어를 탐탁지 않게 여겼고, 유명 수학자들은 그의 이론을 '수학적 질병'이라고까지 폄하했습니다. 칸토어는 우울증에 시달렸고, 말년에는 정신병원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칸토어의 집합론은 현대 수학의 기초가 되어 수학사에서 가장 혁명적인 수학자 중 한 명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구독자 님도 전공이나 관심 분야에서 '당연하게 아는 것'인데 다른 사람들에게는 놀라운 지식이 있지 않나요? 저는 그런 이야기들을 듣는 걸 정말 좋아합니다. 각자의 분야에서 발견한 세상의 신비로운 면들을 나누는 것만큼 즐거운 일도 없으니까요. 그런 흥미로운 지식을 댓글로 남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의견을 남겨주세요
홍공주
선생님....아무래도 크로네커는 잘못이 없어보입니다.... 양의 정수랑 자연수를 짝짓고 음의 정수랑 0이 남아야지 왜 갑자기 음의정수랑 자연수를 짝짓냐구요ㅠㅠ ((((크로네커))))
페퍼노트
우우 크로네커의 악개시여 유한한 사고에서 빠져 나와 ((((무한))))을 받아들이십시오 무카겐 쥬츄츠~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