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퀴의 형상을 한 죽음들

차크람, 판잔드럼, 앤트 밀, 래트 킹에 대해 알아봅니다

2025.09.06 | 조회 1.74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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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삶에 양념 같은 지식을! '그런 건 어떻게 알았어?' 할 때 '그런 것'들을 전해 드립니다.

사람에게 '둥글다', '모난 데 없다'라고 하면 두루두루 원만하게 잘 지내는 착한 사람이란 뜻이죠. 이렇게 원은 평화로운 이미지를 갖고 있는 도형입니다. 하지만 세상에 항상 착하기만 한 사람 없듯, 원도 죽음을 불러올 때가 있습니다. dhs

위 영상 속 고리는 인도에서 쓰던 무기인 차크람입니다. 둥글둥글 착해 보이지만, 세계에서 찾아 보기 힘든 '베는 투척무기'입니다. 회전을 줘 던지면 생각보다 잘 날아가서 타겟을 베어내거나 박힌다고 합니다. 하지만 제 느낌을 말하자면, 여러모로 투창이 낫지 않나 싶긴 하네요.

원의 형태를 한 무기는 현대에도 개발된 것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무기는 차크람만큼도 효율이 안 나오는 무기였습니다. 영국이 개발한 죽음의 바퀴, '판잔드럼(Panjandrum)'입니다.

판잔드럼은 제2차 세계대전 중 영국이 개발한 실험 무기입니다. 나치 독일은 대서양 해변에 콘크리트 방벽을 세워 연합군의 상륙을 막았습니다. 이 콘크리트 방벽을 파괴하려면 엄청난 양의 폭발물을 퍼부어야 하는데, 어떻게 퍼부을 수 있는지가 영국의 고민이었습니다. 판잔드럼은 그 고민에 대한 답안 중 하나로, 직경 3m짜리 두 바퀴 사이에 1.8톤의 폭약을 싣고 로켓 추진으로 데굴데굴 굴러가서 대서양 방벽에 부딪히는 장치였습니다.

하지만 실험은 처참한 실패였습니다. 앞서 로켓 추진으로 데굴데굴 굴러간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잘 와닿지 않으셨을 수도 있는데, 이 물건은 바퀴 둘레를 따라 로켓을 여럿 설치해서 그 추진력으로 굴러가는 정신 나간 물건입니다. 당연하다는 듯 테스트마다 제어 불능 상태가 되어 이리저리 방향을 바꾸며 폭주했고, 로켓이 사방으로 날아가며 구경꾼들을 혼비백산하게 만들었습니다. 마지막 테스트에서는 테스트를 지켜보던 장군들도 엄폐물 뒤로 숨어야 할 만큼 엉망진창이었습니다. 나치 독일에게 죽음을 가져다 주기는 커녕 언제든지 아군에게 돌진할 가능성만 많았던 이 물건은 결국 실제 전장에는 한 차례도 투입되지 못했습니다.

무기에서와 달리 자연에서는 바퀴의 형태가 떼죽음을 불러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먼저 '죽음의 소용돌이(Death spiral)'라고도 불리는 '앤트 밀(Ant mill)' 현상을 꼽을 수 있습니다.

첨부 이미지

군대개미는 시력이 거의 없어 페로몬을 따라 이동합니다. 평소에는 선두 개미가 페로몬을 남기며 길을 개척하고, 뒤따르는 개미들이 그 흔적을 따라가며 완벽한 행렬을 이룹니다. 하지만 가끔 이 시스템에 치명적인 오류가 발생합니다. 선두 개미가 실수로 자신이 남긴 페로몬 흔적을 다시 따라가게 되면, 개미들은 거대한 원을 그리며 끊임없이 돌게 됩니다.

1921년 생물학자 윌리엄 비브가 목격한 앤트 밀은 지름이 무려 370미터에 달했습니다. 개미 한 마리가 원을 한 바퀴 도는 데 2시간 반이 걸렸고, 수천 마리의 개미들이 이틀 동안 계속 돌다가 대부분 탈진해서 죽었습니다. 마치 거대한 죽음의 바퀴처럼, 개미들은 본능에 갇혀 스스로를 파멸로 이끌었던 것입니다.

이 앤트밀 현상과 유사하게, '래트 킹(Rat king) 현상'이라는 것 또한 있습니다. 앤트 밀과 달리 래트 킹은 아직도 발생 원인이 미스터리에 감싸져 있습니다.

래트 킹은 쥐들의 긴 꼬리가 서로 얽혀 하나의 덩어리가 된 형태를 말합니다. 16세기부터 20세기까지 유럽 각지에서 발견되었는데, 가장 유명한 것은 1828년 독일 부크하임에서 발견된 32마리짜리 래트 킹입니다. 쥐 꼬리가 서로 얽혀 32개의 바큇살 형태를 하고 있는 모습을 사진으로 설명드리면 가장 간단하겠지만 혐짤이 될 것 같아 링크로 대체하겠습니다.

일부 학자들은 래트 킹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가짜가 아닌가 의심했습니다. 중세 시대에는 기형적인 동물을 보여주며 돈을 버는 사람들이 있었고, 래트 킹도 그런 '구경거리'를 위해 일부러 만든 것일 수 있다는 주장입니다. 하지만 살아있는 상태에서 발견된 래트 킹들이 있고,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았을 만한 야생에서 다람쥐들이 래트 킹(이럴 경우에는 쥐 왕이라는 뜻의 래트 킹이 아니라 다람쥐 왕이라는 뜻의 스쿼럴 킹(Squirrel king)이 됩니다.) 형태로 발견되는 경우가 있어 자연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현상이라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지고 있습니다. 죽은 쥐 꼬리를 인위적으로 엮는 것도 쉽지 않은데, 살아 있는 쥐로 이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합니다(팩트 체크를 해야 하는데, 제가 직접 시도해 볼 수는 없었던 점 죄송합니다.).

그렇다면 래트 킹은 어떻게 생기는 걸까요? 가장 유력한 가설은 좁은 공간에서 여러 쥐가 모여 있을 때, 꼬리에 묻은 피, 배설물, 음식물 찌꺼기 등이 접착제 역할을 하면서 엉킨다는 것입니다. 특히 추운 겨울, 쥐들이 서로 몸을 붙이고 있다가 꼬리가 얼어붙으면서 영구적으로 결합될 수 있습니다. 또 다른 가설로는 어린 쥐들이 둥지에서 놀다가 우연히 꼬리가 매듭지어지고, 성장하면서 그 매듭이 더욱 단단해진다는 설명도 있습니다.

래트 킹이 된 쥐들의 운명은 비참합니다. 각자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려 하지만 서로를 방해하게 되고, 결국 먹이를 구하지도, 천적을 피하지도 못한 채 굶어 죽거나 잡아먹히게 됩니다. 앤트 밀의 개미들이 원을 그리며 죽듯이, 래트 킹의 쥐들도 서로에게 묶여 죽음을 맞이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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