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당탕탕 자율주행 대환장 레이스

우승자가 없었던 대회, 2004년 'DARPA 그랜드 챌린지'에 대해 알아봅니다.

2025.09.19 | 조회 1.22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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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시민은 항상 도전하는 자를 비웃는다

노모 히데오

...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노모 히데오가 한 말은 아니고 만화 '아이실드 21'의 날조(?)입니다. 하지만 뭐 어떻습니까, 가슴에 울리는 게 있으면 됐죠.

위대한 도전은 비웃음을 곧잘 사곤 합니다. 지난 주 소개 드렸던 칸토어의 이론도 처음에는 '수학적 질병'이라고까지 폄하받았던 것처럼 말입니다. 오늘 소개드릴 DARPA 그랜드 챌린지도 그랬습니다.

DARPA는 미국 국방고등연구계획국(Defense Advanced Research Projects Agency)의 약자입니다. 미군의 기술적 우위를 유지하기 위해 여러 혁신적인 기술 개발을 지원해서, 인터넷의 전신인 아파넷(ARPAnet)을 만든 곳으로도 유명합니다. 2004년 DARPA는 무인 자율주행 차량 경주 대회인 '그랜드 챌린지'를 개최했습니다. 2015년까지 미군 차량의 3분의 1을 무인화하겠다는 목표를 갖고 민간의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모으기 위함이었습니다. 우승 상금은 100만 달러였습니다.

2004년 3월 13일, 모하비 사막. 예선을 통과한 15개 팀이 모였습니다. 카네기멜론, 칼텍 등 유수의 대학들이 참여했고 심지어는 고등학생 팀도 있었습니다. 모두의 목표는 240km나 되는 사막 코스를 사람의 개입 없이 오로지 차량 스스로의 힘으로 달려 가장 먼저 들어오는 것이었습니다.

출발 신호가 울렸습니다. 그리고 난리가 났습니다. 15대의 차량 중 2대의 차량은 출발하기도 전에 철수해야 했습니다. 한 차량은 출발 구역에서 뒤집혀서 탈락했습니다. 경기는 10시간 동안 진행될 예정이었는데, 3시간 동안 단 4대의 차량만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결국 모든 차량이 치명적인 고장을 겪거나 실격 처리되었습니다. 가장 멀리 간 것은 카네기멜론 대학 레드팀의 샌드스톰인데, 전체 코스의 5%가 안 되는 11.78km를 가다가 바퀴가 경사에 걸려 멈췄습니다. 우승자는 당연히 없었습니다.

DARPA 그랜드 챌린지 2004년 대회에서 그나마 가장 멀리 갔던 샌드스톰의 모습
DARPA 그랜드 챌린지 2004년 대회에서 그나마 가장 멀리 갔던 샌드스톰의 모습

언론은 가차없이 조롱했습니다. 'DARPA의 사막에서의 대실패', 'DARPA의 그랜드 챌린지는 너무 그랜드하다는 것이 증명됐다',  '로봇 경주는 빠르고 비참하게 끝난다' 같은 제목을 한 기사가 나왔습니다.

하지만 DARPA도, 참가 팀들도 도전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주최측은 "우리는 다시 도전할 것이며 이번에는 200만 달러의 상금을 걸겠다"라고 발표했고, 정말로 1년 만에 다시 돌아왔습니다. 이번엔 본선에 23개 팀이 올랐습니다. 모두 작년의 실패를 자양분 삼아 개선된 기술을 들고 왔습니다. 결국 이들 중 22개 팀이 작년도 1등 팀보다 먼 거리를 달렸습니다. 5개의 팀은 212km를 달려 코스를 완주했습니다. 스탠퍼드의 '스탠리'가 6시간 54분으로 우승했고, 작년 11km에서 멈췄던 카네기멜론의 레드팀도 2, 3위를 차지했습니다. 단 1년 만의 극적인 변화였습니다.

그리고 현재 자율주행 기술은 어떤가요? 샌프란시스코에 가면(전 안 가봤습니다. 가보고 싶어요.) 이미 무인 택시가 돌아다니고 있다고 합니다. 초보 운전인 저는 후진주차 중에 기둥에 박을 뻔 한 적이 두 번 있는데, 두 번 다 제 차가 알아서 브레이크를 밟아준 덕에 무사했습니다.

2004년의 실패가 없었다면 오늘날의 자율주행 기술도 없었을 겁니다. 소시민은 도전하는 자를 비웃지만, 그 비웃음을 받으면서도 실패할 용기를 가진 사람들이 결국 무언가를 해냅니다. 출발선에서부터 전복돼 버린 것만 같은 도전이라도, 용기를 잃지 말고 밀고 나가보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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