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생활이 항상 즐겁지만은 않죠. 특히 의미 없는 회의가 길어질 때면 정말 힘이 빠집니다. 그런데 무의미한 회의가 얼마나 사람을 지치게 하는지 반증하는 자료가 있습니다. CIA의 전신인 OSS가 만든 'Simple Sabotage Field Manual'입니다.
'방해 공작을 위한 간단한 현장 안내서' 정도로 번역할 수 있는 이 문서는 2차 세계 대전 중이던 1944년, OSS가 적국을 무너뜨릴 목적으로 발간했습니다. 2008년 CIA에 의해 기밀 해제가 되어서 현재는 누구나 온라인으로 볼 수 있습니다(PDF).
2장에 따르면, 안내서의 기대 효과는 적국 시민들이 스스로 방해 공작을 펼쳐적국 내부에서 힘을 소모시키는 것입니다. 물론 적국 시민들이 스스로 방해 공작을 펼치게 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에, 3장에서는 이들을 동기 부여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나와 있습니다.
5장에는 생산, 교통, 통신 등 다양한 분야의 구체적인 방해 방법이 나와 있는데, 그중 '조직 및 생산에 대한 일반적인 간섭' 부분이 특히 흥미롭습니다. 이 중 몇 가지만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모든 일을 '채널'을 통해 하자고 주장하라. 신속한 결정을 내리기 위한 지름길을 절대 허용하지 말라.
- '연설'하라. 가능한 자주, 길게 얘기하라. 긴 일화와 개인적인 경험으로 '요점'을 장식하라.
- 관련 없는 문제를 가능한 자주 꺼내라.
- 지난 회의에서 결정된 사항들을 다시 문제 삼아라.
- 서면 제출을 요구하라.
- '오해'하라. 끝없는 질문을 하고 긴 서신을 주고 받아라. 가능하다면 거기서 트집을 잡아라.
- 새로운 직원을 훈련시킬 때는 불완전하고 오해의 소지가 있는 지시를 내려라.
- 더 중요한 일이 있을 때 회의를 잡아라.
- 그럴 듯한 방법으로 서류 작업을 늘려라. 파일을 중복으로 만들어라.
- 절차와 허가를 늘려라. 혼자 할 수 있는 일에 세 명의 동의가 필요하게 해라.
- 모든 규정을 꼬박꼬박 적용하라.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지 않나요? 오늘날 많은 조직에서 무의식적으로 하고 있는 일들 같습니다. 의미심장한 건, 앞부분에 '스프링클러로 재고를 망가뜨려라', '도로 표지판을 바꿔 놓아라', '통신선을 잘라라' 같은 파괴적인 방법들이 나오다가 이런 관료주의적 방법들이 같은 선상에서 소개된다는 겁니다.
이 내용을 읽으면서 '우리 회사에도 저런 사람 있어!'라고 생각하셨나요? 하지만 어쩌면 스스로가 그렇게 파괴적인 행위를 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일을 꼼꼼하게 하고자 했던 노력이 오히려 CIA가 권장하는 사보타주 방법이었던 건 아닌지 반성해 볼 일입니다. 이 안내서는 일을 망치는 방법을 알려주지만, 역으로 어떤 행동을 피해야 더 나은 조직 문화를 만들 수 있는지도 보여줍니다.
댓글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