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드래곤볼'에서는 외계인들이 스카우터라는 장치를 이용해 생물의 전투력을 측정합니다. 싸움 실력을 수치적으로 측정할 수 있다는 설정이 재밌습니다. 드래곤볼의 세계에서는 싸움을 얼마나 잘하는가가 그 문명의 수준이나 다름없기 때문에 처음 접촉하는 외계 문명의 수준을 판단하는 데에 스카우터는 큰 역할을 할 것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외계 문명과 접촉하게 됐을 때 이 문명이 얼마나 발전한 문명인지는 어떻게 가늠할 수 있을까요? 제가 좋아하는 소설(정말 재밌습니다. 꼭 한 번 읽어 보세요.) '네 인생의 이야기'에 나오는 외계인들은 인간에게 복잡한 적분이 필요한 계산을 기초적인 개념처럼 다루지만 '속도'와 같은 기초적인 개념을 대단히 어렵게 다룹니다. 어쩌면 외계 문명은 초전도체를 아무렇지 않게 다루면서 아직 바퀴를 발명하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 문명은 얼마나 발전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소련의 천문학자 니콜라이 카르다쇼프는 문명이 얼마나 발전했는지 측정할 척도를 제시했습니다. 이 척도에 그의 이름을 붙여 '카르다쇼프 척도'라고 부릅니다. 이 척도에서 기준이 되는 것은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활용할 수 있는가'입니다. 문명의 발전 방향은 제각각일 수도 있겠지만, 열역학 법칙에 위배되게 발전할 수는 없습니다(라고 우리는 믿습니다.). 따라서 문명이 뭔가 대단한 일을 하려면, 그만큼 에너지를 많이 필요로 합니다. 이 척도의 제1유형에 속하는 문명은 모행성에 도달하는 모항성의 에너지(우리에겐 지구에 도달하는 태양 에너지)를 모두 활용할 수 있습니다. 제2유형에 속하는 문명은 모항성(우리에겐 태양)이 내뿜는 에너지를 모두 활용할 수 있습니다. 제3유형에 속하는 문명은 그 문명의 은하(우리에겐 우리은하)가 내뿜는 에너지를 모두 활용할 수 있습니다.
'코스모스'로 유명한 칼 세이건은 로그 함수의 형태로 카르다쇼프 척도를 개선했습니다. 세이건이 개선한 척도를 이용하면 기존의 1, 2, 3유형 뿐만 아니라 그 중간 단계들까지 연속적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세이건이 개선한 척도로 우리 문명은 1970년 기준 0.7단계 쯤에 위치합니다. 아직 지구에 닿는 모든 태양 에너지를 활용할 정도(=1단계)는 아니지만 근접해 가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지금보다 약 500배 많은 에너지를 활용할 수 있게 되면 우리 문명은 1단계에 도달합니다. 이 500배라는 차이는대략 산업혁명 이전의 우리 문명과 현재의 우리 문명이 보이는 차이입니다.
세이건은 또한 정보 총량에 기반한 척도도 제안했습니다. 이 척도에서 A형 문명은 100만 비트 가량의 정보를 소유한 문명으로, 선사시대가 이에 속합니다. 세이건은 1973년 당시 우리 문명이 가진 정보량을 10조 비트로 계산하고 H형 문명 수준이라고 평가했습니다. 2021년 기준으로는는 우리 문명이 가진 정보량이 대략 4천해 비트로 R형 문명 수준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존 데이비드 배로는 반-카르다쇼프 척도를 제시했습니다. 문명이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는가가 아니라, 반대로 얼마나 작은 세계를 컨트롤할 수 있는지를 기준으로 하는 방법입니다. 이 척도에서는 마이너스 유형이 제시됩니다. 1-마이너스 유형의 문명은 생명체가 몸으로 쉽게 다룰 수 있는 규모의 물체를 조작할 수 있습니다. 2-마이너스 유형의 문명은 유전자를 조작하고, 3-마이너스 유형의 문명은 분자 결합을 조작하며, 4-마이너스 유형의 문명은 개별 원자를 조작해 인공 생명체도 생성할 수 있습니다. 배로는 가장 마지막 단계인 오메가-마이너스 유형에 달하면 시공간의 기본 구조를 조작할 수 있을 거라 추측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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