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자 님은 프로그래밍 공부를 해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적성에 맞으면 다행이지만 제 주변에는 시작하고 얼마 안 가 그만두었다는 친구들이 참 많습니다(프로그래밍으로 먹고 사는 저로서는 다행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일찍 그만 두었어도 "Hello, world!"라는 문장은 보셨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마치 수학 교과서가 1단원인 집합만 너덜너덜한 것처럼요. <The C Programming Language>라는 고전적인 C 언어 교재의 첫번째 예제가 "Hello, world!"를 출력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게 유명해져서 이후 수많은 프로그래밍 언어 교재의 첫번째 예제는 "Hello, world!"를 출력하는 게 되었습니다.
2D 이미지 처리에서는 아래의 레나 포르센이란 분의 사진이 유명합니다. 알렉산더 사우추크라는 연구자가 논문에 실을 적절한 이미지를 찾다가 플레이보이 잡지를 보고는 적당한 크기로 이미지를 잘라서 사용했다고 합니다. 다른 좋은 예시 이미지들도 많았을 텐데, 이 플레이보이 잡지에서 오린 사진이 가장 눈길을 끌었는지, 이쪽 분야에서는 가장 유명한 예시가 되었습니다. 이 사진이 실린 1972년 11월 플레이보이 잡지는 플레이보이 역사 상 가장 많이 팔린 호로, 7백만 부 이상이 팔렸다고 합니다. First lady of the internet이라는 명예로운 별명까지 갖고 있는 레나 포르센의 이야기는 http://www.lenna.org/ 에서 살펴 볼 수 있습니다. 노출이 있는 원본 이미지도 사이트에 있으니 주의해 주세요.
3D 그래픽 업계에서는 유타 주전자가 유명합니다. 마틴 뉴웰이라는 연구자가 크게 복잡하지 않으면서 수식으로 구현해 낼 수 있는 친숙한 모델을 고민하다가, 티타임 도중 아내 산드라 뉴웰이 이 찻주전자는 어떻겠느냐고 제안한 것을 받아들인 것이 유타 주전자의 시작입니다. 볼록하고 오목한 표면이 있고, 주둥이로 인해 스스로에게 그림자를 드리우며, 위상수학적으로 복잡하면서도 친숙한 형태 등 3D 그래픽 연구자들에게 적절한 특성이 많았기 때문에 이 주전자 예시는 널리 퍼지게 됩니다. 유타 주전자 외에는 스탠퍼드 토끼라는 예시도 유명합니다.
소프트웨어를 원래 의도된 플랫폼이 아닌 다른 플랫폼에서도 쓸 수 있게 이식하는 작업을 '포팅'이라고 하는데요, 게임 포팅 계에서는 '둠'이 Hello, world! 격의 역할을 합니다. 여기에도 게임을 실행시킬 수 있을까, 생각이 드는 곳이라면 일단 둠을 포팅하는 것이 국룰입니다. 예를 들면 피아노, 메모장, 전자레인지, 심지어는 둠에도 둠을 이식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자연어 처리 연구에서는 '엔론' 사의 이메일들이 Hello, world! 같은 좋은 예시가 되어 줍니다. 엔론 사는 한 때 미국 7대 기업이었지만 분식회계 사건으로 파산했는데요, 이 때 감사를 받으면서 고용인들의 메일이 공개되었습니다. 150명 이상의 사람들이 보낸 만 개 이상의 이메일을 개인정보 침해 염려 없이 합법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은 자연어 처리 연구자들에게는 단비가 되어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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