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는 독특한 언어입니다. 한국어에게는 한 가족으로 볼 수 있을 만큼 가까운 언어가 없다시피 합니다. 특히 영어를 비롯한 유럽의 언어들과 한국어 사이에는 많은 차이점이 있습니다. 그 중 하나는 한 단어를 되풀이해 사용하는 게 한국어에서는 크게 이상하지는 않다는 점입니다. 그 예로 저는 지금까지 모든 문장에 '한국어'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영어로 쓴 글이었다면 이렇게까지 주제가 되는 단어를 계속 언급하는 것이 어색합니다. 적당하게 대명사로 바꾸어 사용했어야 합니다.
이 때문에 한국어와 영어는 대명사의 발달과 사용에서 큰 차이가 있습니다. 구독자 님은 혹시 아직 이름을 모르는 사람과 이야기할 때 적당한 2인칭 대명사가 없어서 난감했던 경험이 없으신가요? 앞 문장에서 제가 '구독자 님'을 직접 주어로 삼아야 했던 것처럼, 한국어에선 2인칭 단수 존대 대명사 사용이 쉽지 않습니다. '그대', '당신', '자네', '귀하' 같은 말은 어쩐지 어색하다 보니 인터넷 상에서는 일찌감치 '님'이라는 호칭이 유행했습니다.
그리고 사실 한국어에서는 3인칭 대명사도 잘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그', '그녀'를 3인칭 대명사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20세기 초반 무렵입니다. 원래 '그'라는 단어는 '그 사람'처럼 지시관형사로는 쓰였지만 'He'와 같이 남성의 이름을 대신해 쓰는 단어는 아니었습니다. '그이', '그놈', '그애'가 더 자연스러운 표현이었습니다. 그러나 영어의 'He', 'She' 같은 단어를 번역하는 과정에서 점차 '그'라는 단어를 3인칭 대명사로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일본의 경우, '카레'라는 단어로 3인칭 대명사를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She'를 구분해서 번역할 필요가 생기다 보니 '카노조'라는 말을 만들게 되었고 '카레'는 점차 남성만을 지칭하는 것으로 변했습니다. 한국어에서도 처음에는 굳이 남녀를 나눠 3인칭 대명사를 만들 필요는 없다고 느낀 사람들이 많았던 모양입니다. 김동인은 소설 <젊은 그들>에서 '그'를 현재와 같은 용법으로 사용한 소설가이지만, '그녀'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의견을 밝혔습니다.
하지만 영어 문화가 더 깊게 침투한 까닭이었는지, 일본어의 '카노조'와 같은 한국어의 '그녀'는 '그미', '궐녀', '그히' 등 여러 말들과 경쟁 끝에 결국 자리를 잡습니다. 현재는 당당하게 표준국어대사전에 등재가 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언어는 시대의 요구에 따라 변하기 마련입니다. 지금 이 시대는 어떤가요? '여교사', '여배우', '여기자', '여가수' 등 불필요하게 '여-'를 붙이는 것을 피하고자 하는 시대 아닌가요? 남성을 디폴트로 여기지 않고 다양한 성 정체성을 인정하고자 하는 사회에 걸맞게 다시 김동인처럼 '그'로 돌아가는 것은 어떨지 생각해 봅니다.
댓글 1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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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person
번역할 때 대명사 그대로 번역하면 어색한 느낌이 들곤 했는데 원래는 없던 표현이였군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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