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일제강점기를 지나 광복을 맞은 것과 아메리카 대륙의 국가들이 유럽 열강들로부터 독립한 것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한반도에 살고 있던 한민족이 일제의 침략을 받고 저항한 끝에 다시 한민족의 국가를 이뤄낸 것과 달리, 아메리카 대륙에서는 원주민들이 유럽 열강으로부터 독립을 이뤄낸 것이 아니라 식민지를 통치하던 유럽인들이 본국 정부와 갈라서며 새로운 국가를 만들게 된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상황에 비유하자면 한국인들의 정부가 수립된 것이 아니라 조선총독부의 일본인들이 일본 정부와 갈라서며 독립된 정부를 수립한 셈입니다.
이 때문에 아메리카 대륙 국가들의 식민지 시대에 대한 인식이나 유럽 열강과의 관계는 한국인들의 일제강점기에 대한 인식이나 한일 관계와는 다릅니다. 특히 오늘 얘기할 포르투갈과 브라질의 관계는 각별하기까지 합니다. 두 나라 국민들은 상대 국가의 참정권을 얻어내는 것도 크게 어렵지 않은 편입니다.
브라질은 포르투갈로부터 전쟁으로 독립을 이뤄내지 않았습니다.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두 나라가 갈라서는 방법으로 브라질이 형성되었습니다.
나폴레옹이 유럽 전체를 집어 삼킬 것 같았던 무렵, 포르투갈의 브라간사 왕가는 브라질로 망명합니다. 임진왜란 당시 선조가 한양을 버리고 도망다녔던 것처럼, 포르투갈의 왕가도 나폴레옹을 피해 브라질로 숨어 든 것입니다. 그렇게 1815년, 리우데자네이루를 수도로 하는 포르투갈-브라질-알가르브 연합 왕국이 탄생합니다. 포르투갈 본토에 비하면 한끗 아래 취급을 받았던 브라질 크리올 세력으로서는 더 이상 차별 받지 않고 그들의 위신을 세울 수 있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하지만 나폴레옹은 결국 패망하고, 포르투갈 본토에서 자유주의의 바람이 불기 시작합니다. 나폴레옹의 패망으로 포르투갈 왕가는 꼭 브라질에 남아 있어야 할 이유도 사라졌고, 자유주의 혁명이 일어나는 것은 임금인 주앙 6세로서는 가장 피하고 싶은 일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왕가가 다시 포르투갈 본토로 돌아가는 것을 고민하는데, 이는 브라질의 크리올 세력들에게 걱정거리가 되었습니다. 차별받던 식민지 세력에서 일등시민이 되었는데, 왕가가 포르투갈 본토로 돌아가 버린다면 자신들에 대한 대우도 다시 예전처럼 돌아갈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입니다.
갈등 끝에 주앙 6세는 포르투갈 본토로 돌아가고, 그의 아들 페드루 1세가 브라질에 남습니다. 훗날 포르투갈에서는 페드루 1세마저도 귀국할 것을 결정하지만 브라질 국민들은 포르투갈의 식민지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기에 페드루 1세에게 돌아가지 말 것을 청원합니다. 페드루 1세는 아버지 주앙 6세의 편이 아니라 브라질 국민들의 편에 서기로 결정하고 브라질 제국의 초대 황제에 오릅니다. 3년 뒤 포르투갈도 브라질의 독립을 승인하면서 브라질과 포르투갈은 별개의 나라가 됩니다.
사실 저는 지금 포르투갈의 수도 리스본을 향해 가는 길이라 이런 주제를 정해 보았습니다. 훗날 리우데자네이루에서도 페퍼노트를 발송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품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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