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갑습니다, 구독자 님! 아직 발행도 안 된 페퍼노트를 구독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페퍼노트 첫번째 메일을 구독자 님께 보낼 수 있어 기쁩니다.
공교롭게도 첫 메일을 보내는 날이 만우절입니다. 이미 여러 차례 메일을 보낸 뒤였다면 그럴싸한 거짓 지식으로 장난을 쳐보는 것도 재밌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1957년 만우절 영국 BBC에서는 스파게티가 자라는 나무가 있다는 장난 보도를 조작된 영상과 함께 내보냈고, 이 나무를 사고 싶다는 문의가 BBC에 빗발쳤다고 합니다. 또 1962년 만우절 스웨덴에서는 흑백TV에 나일론 스타킹을 씌우면 컬러로 TV를 볼 수 있다는 장난을 쳤습니다. 아직도 많은 스웨덴 사람들이 어린 시절 부모님이 스타킹을 들고 TV 앞으로 달려갔던 그 날을 기억한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페퍼노트의 첫 메일을 "첫판부터 장난질이냐"로 보낼 순 없겠죠? 그래서 오늘은 장난을 치더라도 너무 생각 없이 장난을 쳐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담은 사건을 하나 준비했습니다. 레너드 대 펩시코 사건입니다.
구독자 님은 어느 콜라 브랜드를 선호하시나요? 콜라 시장의 1인자가 코카콜라인 건 부인할 수 없겠죠. 1990년대에 펩시는 이 강력한 경쟁자를 이기기 위해 마케팅에 열을 올립니다. 마이클 잭슨을 모델로 쓰기도 했다는 말이면 설명은 더 필요 없을 것 같습니다. 이 공격적인 마케팅 과정 중 1996년 3월, 펩시는 야심찬 마케팅 캠페인 '펩시 스터프'를 시작합니다.
이 캠페인 기간 중 펩시를 마시고 나면 그 패키지에서 '펩시 포인트'를 모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포인트를 젊은 세대가 좋아할 만한 물건으로 바꿀 수 있었습니다. 90 펩시 포인트로는 티셔츠를, 120 펩시 포인트로는 선글라스를, 1,400 펩시 포인트로는 가죽 재킷을 살 수 있었죠. 이 때에는 스타킹 없이도 컬러 TV를 볼 수 있었던 시대기 때문에 펩시에선 이 캠페인을 담은 TV 광고를 만들었습니다. 이 광고를 만든 팀은 광고의 마지막에 유쾌한 임팩트를 주면 더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700,000,000 펩시 포인트로는 해리어 제트기를 살 수 있다는 농담을 넣었습니다.
하지만 펩시가 몇 가지를 잘못 하면서 재밌는 상황을 만들었습니다. 먼저, 이 광고안을 검토하며 700,000,000은 너무 길어서 숫자를 읽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7,000,000 펩시 포인트로 해리어 제트기의 값을 낮췄습니다. 또 펩시는 이 광고에 면책 조항을 넣지 않는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조그맣게 '농담입니다'라는 말을 써넣지 않은 것입니다.
이 광고를 본 청년 존 레너드는 진지하게 해리어 제트기를 살 계획을 세웁니다. 그가 조사해 보니 해리어 제트기의 가격은 약 3천만 달러였습니다. 7백만 펩시 포인트를 모으기 위한 콜라 값, 콜라를 저장할 창고 임대료, 콜라 패키지로부터 포인트를 오려낼 인건비 등은 430만 달러면 충분하다는 계산이 섰습니다. 그는 친구이자 투자자인 토드 호프먼과 이 흥미진진한 계획을 실행에 옮기려 합니다.
그러던 중 존 레너드가 펩시의 또 한 가지 잘못을 발견합니다. 펩시 카탈로그에 15 펩시 포인트가 있다면 부족한 포인트는 10센트 당 1 펩시 포인트로 현금 지불할 수 있다는 문장이 있었던 것입니다. 즉 3천만 달러의 해리어 제트기를 70만 달러면 구매할 수 있었습니다.
토드 호프먼이 수표를 써주고 존 레너드는 펩시에게 해리어 제트기를 요구하는 편지를 보냅니다. 펩시는 진짜로 제트기를 줄 생각이 없었고 결국 소송까지 이어지게 됩니다. 법원이 펩시의 손을 들어주면서 씁쓸한 뒷맛이 남는 사건이 됐지만,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는 다큐멘터리 '펩시, 내 제트기 내놔!'를 보면 그래도 존 레너드와 토드 호프먼은 행복하게 살고 있는 듯 합니다. 사건의 자세한 내막과 두 멋진 남자의 삶이 궁금하다면 다큐멘터리를 시청해 보시는 것도 좋겠습니다.
펩시는 사실 이 사건 전에도 비슷한 문제로 큰일이 났던 적이 있습니다. 필리핀에서 진행했던 Pepsi Number Fever 캠페인 때문입니다. 펩시 뚜껑 안쪽에 001부터 999까지의 숫자가 적혀 있었고, 당첨 번호가 나오면 현금으로 돌려주는 마케팅이었습니다. 1등 당첨 상금은 백만 페소로, 당시 필리핀 평균 월급으로 611개월을 일해야 벌 수 있는 돈이었습니다. 그런데 1992년 5월, 딱 두 개의 뚜껑에서 나왔어야 하는 1등 당첨 번호 349가, 펩시의 실수로 80만 개의 뚜껑에 인쇄된 채 시장에 풀렸습니다. 만약 이 80만 개의 1등 당첨을 모두 지불한다면 펩시는 320억 달러를 내야 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펩시에 당첨금을 달라며 몰려 들었지만, 펩시는 이 사람들에게 백만 페소 대신 500페소로 퉁치려는 시도를 합니다. 필리핀에서는 폭동이 벌어졌고 최소한 5명이 이 사건으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한국에서도 레너드 대 펩시코 사건과 비슷한 사건으로 파맛 첵스 사건이 유명합니다. 워낙 유명해 대부분 아실 거라 생각해 나무위키 링크로 갈음합니다.
제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나 하자면, 저는 장난으로라도 '성을 간다', '장을 지진다', '손목을 건다' 같은 약속을 하지 않습니다. 누가 왜 장을 지지지 않느냐며 소송을 걸기까지 하진 않겠지만 지키지도 못할 약속을 내거는 기분이 좋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일 년 중 가장 재밌는 날 중 하나인 만우절입니다. 다들 유쾌한 장난을 많이 주고 받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감당할 수 있는 범위에서요.
댓글 4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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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퍼
꿀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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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elle
만우절 장난 썰들로 시작해 지키지도 못할 약속을 하는 기분은 딱히 좋지 않다는 부분까지 이렇게 자연스럽게 흘러갈 수 있다니.. 앞으로의 활동이 더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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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
파맛첵스 맛없음
페퍼노트
저도 먹어 보고 싶어요 한 입만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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