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는 토끼가 새고 오리, 멧돼지가 물고기?

1,200년을 이어 간 일본의 육식금지령을 알아봅니다.

2023.06.28 | 조회 1.71K |
0
|
페퍼노트의 프로필 이미지

페퍼노트

당신의 삶에 양념 같은 지식을! '그런 건 어떻게 알았어?' 할 때 '그런 것'들을 전해 드립니다.

사람은 '명', 동물은 '마리', 종이는 '장', 책은 '권' 등 한국어에선 세고자 하는 대상에 따라 세는 단위가 달라지곤 합니다. 이것은 일본어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닭도 돼지도 모두 '마리'로 세는 한국어와는 달리 일본에서는 새를 셀 때에는 들짐승과는 다른 단위를 사용한다고 합니다. 다만 토끼를 셀 때에는 새를 셀 때 쓰는 단위를 사용합니다. 아무리 과학 지식이 지금 같지 않았을 때라도 토끼를 새로 보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일본에선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요?

675년 덴무 덴노는 육식금지령을 내립니다. 종교적으로는, 당과 백제로부터 불교가 유입되어 살생을 좋게 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경제적으로는, 당시 일본은 상대적으로 농경지도 부족했기 때문에 육식을 위해 가축을 기르는 것은 큰 사치였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이 육식금지령이 1,200년 뒤에나 폐지가 됩니다. 처음 덴무 덴노가 육식금지령을 내릴 때에는 농경 기간 동안 소, 말, 개, 원숭이, 닭을 먹지 말라는 내용이었고 처벌도 비교적 느슨했습니다. 그러나 1,200년이나 되는 시간을 거치며 못 먹는 동물이 추가되기도 하고, 농경 기간이 아닐 때도 적용되는 등 변화가 일어납니다. 규율이 가장 심했을 시기는 쇼군 도쿠가와 츠나요시의 집권기입니다. 1682년 경, 츠나요시는 개, 고양이, 새, 생선, 조개, 심지어는 곤충까지도 함부로 살생할 수 없게 합니다. 이 시기에는 새를 잡았다는 이유로 참수된 사람의 기록까지 존재합니다.

비교적 처벌이 느슨했던 시기엔 백성들이 눈치를 봐가며 육식을 했습니다. 아무리 담배를 피우지 말라고 해도 피우는 10대들이 있는 것처럼, 모든 백성들에게서 육식을 완전히 앗아가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입니다. 대놓고 소를 잡는 것은 처벌 당할 수 있으니 주로 야생동물들이 타겟이 되었습니다. 멧돼지, 사슴, 토끼 등의 고기가 음식이 아닌 약이라는 핑계로 거래되었습니다. 그래도 대놓고 고기라 부르는 것은 눈치가 보였는지 많은 은어를 사용했습니다. 사슴 고기는 '단풍'이라는 뜻의 은어로 거래 됐습니다(화투 패에서 사슴과 단풍이 함께 등장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닭고기와 멧돼지고기는 그 빛깔이 비슷한 '떡갈나무', '모란'이라는 이름으로 거래 됐습니다.

당시 일본인들의 인식에서 생선과 가축은 명확히 구분되는 개념이었습니다. 그래서 소 등이 금지되는 시기에도 생선은 허용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 때 사람들은 고래도 물고기로 보았기 때문에 생선이 허용되던 시기에는 고래도 허용이 되었습니다. 멧돼지는 '산 속의 고래고기'라는 뜻의 '야마쿠리자'라고 부르며 생선이니까 먹을 수 있다는 기적의 논리를 펼쳤습니다. 오리도 '물갈퀴가 있고 물에 사니까 생선이다'라고 우기며 먹었습니다.

토끼를 셀 때 새를 세는 단위를 쓰는 것도 이와 비슷한 이유인 것으로 추정됩니다. 들짐승 고기는 금지 돼 있고 새를 먹는 건 괜찮았을 시기에 토끼 귀를 놓고 '이것은 날개다. 날개가 있으니 토끼는 새다.'라는 논리를 펼쳤던 것으로 보입니다.

글 내용과는 무관한 토끼-오리 그림입니다.
글 내용과는 무관한 토끼-오리 그림입니다.

이 오랜 육식금지령은 일본의 식문화에도 영향을 끼칩니다. 양갱은 원래 '양을 끓여 만든 음식'이라는 뜻으로 중국에선 양의 선지를 이용해 만듭니다. 하지만 일본에선 양을 잡을 수 없었기 때문에 팥으로 양갱을 만들었고 그것이 지금까지 이어집니다. 중국과 한국에서는 고기 소를 넣어 만두를 만들었던 것과 달리 일본에서는 팥 앙금을 넣어 '만주'를 만듭니다.

육식금지령이 철폐된 것은 1872년 메이지 덴노 시기였습니다. 서구 열강을 따라가려던 시도 중 하나였습니다. 하지만 천 년이 넘는 세월동안 깊숙하게 자리잡은 인식 때문에, 이에 반발해 덴노를 암살하려는 시도까지도 일어납니다.

1,200년이나 육식을 피해 왔기 때문에 일본에는 고기 요리법도 거의 씨가 마른 상태였습니다. 그로 인해 해외의 고기 요리들을 일본식으로 응용하기 시작합니다. 한국의 불고기는 일본으로 가 야키니쿠가 되었고, 크로켓은 고로케가, 포크 커틀릿은 돈까스가 됩니다.

 

다가올 뉴스레터가 궁금하신가요?

지금 구독해서 새로운 레터를 받아보세요

✉️

이번 뉴스레터 어떠셨나요?

페퍼노트 님에게 ☕️ 커피와 ✉️ 쪽지를 보내보세요!

댓글

의견을 남겨주세요

확인
의견이 있으신가요? 제일 먼저 댓글을 달아보세요 !
© 2024 페퍼노트

당신의 삶에 양념 같은 지식을! '그런 건 어떻게 알았어?' 할 때 '그런 것'들을 전해 드립니다.

뉴스레터 문의pppr.note@gmail.com

메일리 로고

자주 묻는 질문 서비스 소개서 오류 및 기능 관련 제보

서비스 이용 문의admin@team.maily.so

메일리 사업자 정보

메일리 (대표자: 이한결) | 사업자번호: 717-47-00705 | 서울 서초구 강남대로53길 8, 8층 11-7호

이용약관 | 개인정보처리방침 | 정기결제 이용약관 | 라이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