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현재 산후조리원에 있습니다. 여기엔 파라핀 치료기라는 것이 있는데, 따뜻한 파라핀으로 손을 덮어서 관절 통증이나 혈액순환 장애를 치료하는 장치라고 합니다. 오늘 이 기계를 쓰고 있는 부부를 보았는데 "55℃ 맞아? 되게 뜨거운데?"라고 말하는 걸 듣고 오늘의 주제를 떠올렸습니다. (55℃면 확실히 뜨거울 것 같긴 합니다.)
대중 목욕탕에서 열탕은 40℃가 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정도만 되어도 뜨거워서 마음의 준비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고개를 돌려 사우나의 온도를 보면 100℃에 육박하기도 합니다. 탕이 100℃였다면 아마 삶아져서 육수가 우러날 텐데 사우나 100℃는 왜 버틸 만한 걸까요?
우리는 우리가 물체의 온도를 느낄 수 있다고 착각합니다. 하지만 사실 우리가 뜨겁다, 차갑다 느끼는 것은 물체의 온도가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 피부의 온도만 느낍니다. 다시 말하자면 우리는 물체가 갖고 있는 열이 아닌 물체가 전달하는 열을 느낍니다. 냉동실에 쇠숟가락과 책 한 권을 넣고 충분한 시간이 지난 뒤 꺼내 보세요. 두 물체의 온도가 같더라도 만져보면 쇠숟가락이 훨씬 더 차갑게 느껴집니다. 종이보다 쇠가 열전도율이 높기 때문입니다. 피부는 차가운 종이를 만졌을 때보다 차가운 쇠를 만졌을 때 더 빨리 차가워집니다.
극단적으로 열전도율이 낮은 가상의 물체를 생각해 봅시다. 이 물체가 1000℃여봤자 우리 몸에 그 열이 전달되지 않는다면 화상을 입을 일이 없습니다. 1000℃의 이 물체보다 100℃의 물이 더 위험합니다. 그래서 우리 몸은 물체가 가진 열보다 물체가 전달하는 열을 느끼도록 발달했습니다.
100℃ 사우나가 버틸 만한 이유도 이와 같습니다. 액체 상태일 때는 기체 상태일 때보다 단위 부피당 분자 수가 훨씬 많습니다. 즉, 같은 온도라도 물 분자가 공기 분자보다 우리 몸에 훨씬 많이 부딪혀 더 많은 열에너지를 전달합니다. 100℃의 물은 화상을 입히기에 충분하지만 100℃의 공기는 열전도율이 낮아 피부에 전달되는 열이 적습니다. 그래서 사우나의 온도가 높아도 화상을 입지 않는 것이고, 느끼기에도 견딜 만한 것입니다.
덤1) 기온이 30℃가 되면 기온이 15℃일 때보다 두 배 덥다고 말해도 되는 걸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같은 온도를 화씨로 바꾸면 각각 86℉와 59℉인 것만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0℃나 0℉ 모두 임의로 잡은 기준일 뿐 수학적인 의미로 0(덧셈의 항등원)이 아니기 때문에 섭씨 온도나 화씨 온도가 가리키는 숫자를 놓고 두 배 덥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절대온도로 따진다면 일리가 있겠습니다만, 절대온도로 따졌을 때 두 배 차이가 나는 온도는 일상에서 쓸 일이 없을 것 같습니다.
덤2) 멘톨 성분을 먹으면 입 안이 화하면서 차가운 느낌이 드는데 왜 그럴까요? 이 또한 실제 온도와 별개로 우리의 감각과 관련이 있습니다. 멘톨은 우리 몸이 차가움을 느끼는 역치 온도를 높이는 작용을 합니다. 즉 차가움을 보다 쉽게 느끼게 만들어, 실제로 온도가 변하지 않았어도 차갑다는 생각이 들게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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