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은 제가 축하 받을 일이 하나 있습니다. 며칠 전 제가 딸 아빠가 되었습니다. 안 그래도 세상에서 제일 사랑스러운 사람과 살고 있었는데, 집에 사랑스러운 사람이 하나 더 늘었습니다. 참으로 행복한 삶입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임신, 출산, 또 그 이후에 이르기까지 아내가 힘들어 하는 모습을 가장 가까이에서 보고 있자니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왜 하필 인간은 그렇게 큰 아기를 낳고, 또 막상 낳아 놓으면 오랜 기간 무능력한 동물인 건지 씁쓸합니다.
어릴 적 '퀴즈 탐험 신비의 세계'에서 봤던 이야기를 떠올렸습니다. 몸길이 2m, 체중 90kg에 육박하는 캥거루는 고작 몸길이 2cm, 체중 1g 정도의 새끼를 낳습니다. 임신 기간도 한 달 정도 밖에 되지 않습니다. 힘들어 하는 아내에 비하면 팔자 좋은 동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1g짜리 태아를(유대류의 새끼는 인간으로 비유하면 자궁 밖으로 나온 태아나 다름 없습니다. 주머니는 몸 밖에 있는 자궁과도 같고 젖이 탯줄의 역할을 합니다.) 주머니에 넣고 다닌다 상상해 보면 도저히 불안해서 살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역시 다들 각자의 고충이 있는 모양입니다.
오세아니아를 대표하는 또 다른 동물 키위는 캥거루와 반대로 말도 안 되게 큰 알을 낳습니다. 키위는 체중의 1/4에 달하는 알을 낳습니다. 비율로 따지면 세계에서 가장 큰 알입니다. 구독자 님의 체중 1/4에 달하는 알을 낳는 상상을 한 번 해보시길 바랍니다.
키위는 어쩌다 이렇게 큰 알을 낳게 됐을까요? 옛날에는 키위가 큰 알을 낳는 큰 새였는데 알의 크기에 비해 체구만 작게 진화하게 된 게 아닐까 하는 가설이 기존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키위는 과거에 지금보다 더 작았었다고 합니다. 현재 과학자들은 이것이 조숙성과 관련이 있다고 봅니다. 거대한 알 덕분에 키위 병아리는 부화 직후 거의 완전한 상태로 태어나, 즉시 달릴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과거 뉴질랜드 환경에는 큰 알을 노리는 포식자는 거의 없고 연약한 새끼를 노리는 포식자가 많았습니다. 따라서 연약한 새끼 단계를 알 속에서 스킵하는 생존 전략이 효율적이었습니다. 또 알이 큰 만큼 노른자도 많이 넣어줄 수 있어서, 키위 새끼는 알에서 나오고도 2주 반 가량 노른자로부터 영양을 공급 받을 수 있습니다.
한편 하이에나는 글로만 읽어도 끔찍해서 눈을 감고 싶어지는 출산 과정을 겪습니다. 암컷 하이에나에게는 '유사 음경(Pseudo-penis)'라는 독특한 기관이 있습니다. 말이 유사 음경이지 수컷 하이에나의 음경보다도 더 큰데(이제 누가 유사 음경이지?), 이것은 사실 하이에나의 클리토리스입니다.하이에나는 이 거대한 음핵으로 교미도 하고 소변도 보는데, 문제는 출산도 합니다. 겨우 1인치 정도 직경의 좁은 비뇨생식기관으로 새끼를 낳게 됩니다.
이 좁은 통로로 새끼를 낳는 과정은 극도로 위험합니다. 첫 출산 시에는 음핵 조직이 거의 항상 찢어져 새끼가 통과할 수 있게 됩니다. 이로 인해 극심한 통증, 출혈, 때로는 감염까지 발생합니다. 잘 찢어져도 어미가 죽을 수 있고 잘 안 찢어지면 새끼가 죽습니다. 첫 출산을 하는 암컷 하이에나의 9~18%가 출산 과정에서 사망하며, 첫 번째 새끼의 생존율은 40% 미만입니다. 평균적으로 2~4마리의 새끼를 낳는데 이들이 다 살아 남는 경우는 드뭅니다.
자료 조사를 하다 보니 그 외에도 정말 끔찍한 출산을 하는 종이 많았습니다. 기린의 경우 워낙 다리가 길어, 새끼는 출산과 함께 2m 정도의 높이에서 바닥으로 떨어져야 합니다. 코끼리땃쥐의 경우 체구가 워낙 작아 몸무게가 40g 정도인데, 10g 정도 나가는 새끼를 한 번에 한두 마리 정도 낳습니다. 고슴도치, 호저 같이 가시가 난 동물들은 뱃 속에 있을 때 털이 비교적 부드러운 편이긴 합니다만, 아무리 그래도 저희 딸처럼 역아인 경우에는 훨씬 더 어려운 출산이 됩니다.
흔히 출산은 아름답고 숭고한 것으로 묘사됩니다. 제가 옆에서 지켜 본 바로 그 아름다움, 숭고함은 첫눈이 내린 조용한 숲이 주는 느낌보다는 지독했던 싸움터에서 살아남은 피 묻은 중갑기사에게서 느껴지는 것과 가까웠습니다. 세상의 모든 엄마들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더 알아보기
Audubon, Why Is the Kiwi's Egg So Big?
Africa Safaris, Hyena Birth: The Most Painful Births Among Mammals
누구의 출산이 가장 어려운지 의견을 나눈 Quora 글들
의견을 남겨주세요
어드바이서K
모든 어머니가 귀하고 훌륭합니다. 여성은 출산의 고통 만이 아닙니다. 자식을 낳고 기르고 하다 보면 어느새 폐경에 이르게 되는데, 이 순간을 고통스럽게 지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리고 남녀가 평등하지 못한 문화에서 여성들의 지위는 (심하게 말하면) 인간과 동물의 사이 어딘가 싶군요. 더우기 일부다처제의 경우, 평등은 있을 수 없지요. 그리고 여전히 대한민국 어디 에선 가는 [가부장제도]로 인하여 고통 받는 여성들이 여전히 존재합니다. 그래도 영어권 문화(즉, 기독교 문화권)에서는 그 어느 문화보다 낫다고 생각합니다.
페퍼노트
아직 세상까지는 어떻게 못하겠지만 제 아내만큼이라도 괴로운 일 없게 해주고 싶습니다 ㅎㅎ 댓글 감사합니다.
의견을 남겨주세요
쿼카킴
너무 축하드립니다! 이번 페퍼노트는 아내분에 대한 헌사로 읽히네요 👍 앞으로 아가님이 커가면서 인간의 발달과정에 대한 노트도 많이 올려주실 것 같아 너무 기대됩니다!
페퍼노트
감사합니다 ㅎㅎ 아기를 통해 또 알게 될 세상이 기대가 됩니다
의견을 남겨주세요
쿼카킴
너무 축하드립니다! 이번 페퍼노트는 아내분에 대한 헌사로 읽히네요 👍 앞으로 아가님이 커가면서 인간의 발달과정에 대한 노트도 많이 올려주실 것 같아 너무 기대됩니다!
의견을 남겨주세요
jay
늦었지만 축하드립니다! 부모가 된다는건 가장 힘든일이자, 가장 행복한 일인거 같습니다.
페퍼노트
감사합니다 ㅎㅎ 요즘 같아서는 행복 덕분에 힘든 것조차 잊히네요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