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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러스트』 에르난 디아즈
사람들은 대부분 각자가 승리에 있어서는 적극적 주체이지만 실패에 있어서는 수동적 객체일 뿐이라고 믿고 싶어한다. 승리하는 건 우리지만, 실패하는 건 우리가 아니다—우리의 통제력을 벗어난 힘 때문에 망가지는 것뿐이다.
잠시 아무것도 몸부림치지 않았고 모든 것이 휴식을 취했다. 시간이 결국 목적지에 이른 것만 같았다.
그녀는 의사의 질문에 조용히 웃었다. 그런 식으로 과거와 현재를 구분하는 건 바보뿐이에요. 우리가 결정을 내릴 때마다 실현되기를 원하는 미래가 난입하죠. 미래는 최선을 다해 과거가 되려고 해요. 미래를 단순한 공상과 구분해주는 건 바로 이 점이에요. 미래는 일어난다는 것.
모든 상실은 절대적인 것이며 과거나 미래의 승리로 덜어낼 수 없다. (…) 산맥과 땅, 벤저민의 몸에서 실체감과 무게가 빠져나갔다. 모든 것이 텅 비어버렸다. 그가 일어선 게 아니었다. 지구가 가라앉았다.
우리 모두에게는 각자 정해진 시간이 할당된다. 그 시간이 얼만큼인지는 신만이 아신다. 우리는 시간을 투자할 수 없다. 어떤 형태의 수익도 기대할 수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시간이 전부 소진될 때까지 일 초씩, 십 년씩 지출하는 것뿐이다.
모든 인생은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거나 삐걱거리다 멈추게 하는 소수의 사건을 중심으로 정리된다. 다음번의 강력한 순간이 찾아오기 전까지, 우리는 그런 사건들의 결과로 혜택을 보거나 괴로워하며 그 사건들 사이의 세월을 보낸다. 한 사람의 가치는 자신이 직접 만들어낼 수 있었던, 이처럼 결정적인 상황의 수에 따라 정해진다. 늘 성공을 거둘 필요는 없다. 패배에도 위대한 영광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은 살아가는 동안 서사시든 비극이든 결정적인 장면의 주연이어야 한다.
내가 타자로 치는 단어는 늘 과거에 있는 반면, 내가 생각하는 단어는 늘 미래에 있었다. 그러므로 현재는 이상하게도 아무도 살지 않는 공간이 되었다. (…) 아버지는 일이 인생에 끼친 가장 큰 영향은 세상을 뒤집어서 보는 방법을 가르쳐준 것이라고도 했다.
키치. 이 단어의 적절한 영어 번역어가 생각나지 않는다. 원본과 가깝다는 걸 너무도 자랑스럽게 여기는 나머지 그런 유사성에 창의성 자체보다 큰 가치가 있다고 믿는 사본. “이건 정말 ……랑 똑같잖아!” 실제 감정을 압도하는, 기분의 사칭. 감성을 압도하는 감상벽. 키치는 사람 눈 속에도 있을 수 있다. “노을이 그림 같아!” 지금은 인공물이 절대적 기준이기에 원본(노을)이 가짜(그림)로 바뀌어야 한다. 그래야 후자가 전자의 아름다움에 대한 척도가 될 수 있으니까. 키치는 늘 역전된 형태의 플라톤주의다. 모방을 원형보다 값지게 여긴다.
기억의 도플러효과. 과거 사건의 주파수는 그 사건이 우리로부터 빠르게 멀어지면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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