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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여인의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현장 재현을 기획하는 한 남자가 있다. 소설 '아듀'에서 발자크는 남성 인물 필립의 절절한 슬픔과 사랑이 사실은 상대가 아니라 자신에게 초점이 맞춰진 것임을 곳곳에서 드러낸다. 사건을 재현하고자 하는 욕망이 대상을 앞선 순간 그 욕망은 망각 속에서만 생존할 수 있었던 자를 드디어 죽게 만든 것이다.
과거의 사건이나 누군가의 고통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는 게 가능하다는 환상이, 매끈하게 서사화해 소화하고자 하는 욕망이 정작 누락시키는 것은 무엇인가.
오카 마리는 『기억 서사』에서 프루스트의 마들렌 체험과도 유사하게 사람이 무언가를 떠올린다고 할 때 그것은 사람이 생각해내는 것이 아니라 기억이 사람에게 도래하는 것임을, 그것이 바로 기억의 속성임을 말한다. "폭력적인 사건, 그것에 대해 이야기할 수 없다는 점에 그 사건의 폭력성의 핵심이 존재하는 것과 같은, 바로 그와 같은 ‘사건’에 대해 우리는 어떻게 하면 그 ‘사건’의 기억을 타자와 나누어 가질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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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작품 속에 주변 사람들의 삶을 새겨 넣음으로써 그 사람의 실제 생활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이것은 작품의 한 존재 이유다.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꾸고, 한 사회의 현실을 변화시키는 힘이 없다면, 그 작품은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내가 살아낸 삶은 온전히 나 자신의 것이다. 그러나 그 삶에 관한 이야기는, 아무리 독특해도, 내 것이 아니다. 그것은 나와 같이 깊이 관계 맺은 사람들의 것이기도 하고, 나와 우연히 시공간을 함께한 이들의 것이기도 하고, 또 누군가에게 그 이야기를 전해 들은 사람들의 것이기도 하다.
‘홀로’인 인간이 타자와 함께 살면서 감정을 나누고, 생각을 공유하며, 이런저런 이야기의 주연과 조연으로 등장해 다채로운 이야기를 남기는 일이 곧 우리의 삶 자체이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자기 삶과 타자의 삶을 엮어 짜서 그리는 거대한 벽화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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