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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의 주인공은 우연히 늘 동경하던 1920년대의 파리로 시간여행을 하게 된다. 꿈에 그리던 예술가와 명사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데 정작 그들은 르네상스 시대를 동경하고 있었다. 고갱과 드가는 미켈란젤로를 부러워하고, 미켈란젤로는 칭기즈칸 시대를 보고 싶어 했을 것이라 한다. “현재란 그런 거예요. 늘 불만족스럽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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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관악구 봉천동에 있는 ‘밝은책방’. 책방 주인은 올해 8년차 변호사인 김소리씨(33)다. "갈등의 한복판에 있고 남의 일을 대신한다는 중압감이 컸다. 다른 직종에 비해 연봉은 높지만 스트레스가 커져서 5년차 무렵부터 퇴사를 고민했다."
특색있는 책방들이 몰려있는 홍대, 상수, 성수 등을 돌아다니며 시장조사를 해보니 책방을 채우는 게 책만이 아니라는 것을 발견했다. “책방은 하나의 형태고 그 안에는 책을 매개로 한 다양한 문화행사와 모임이 다채롭게 이뤄졌다.”
“책방이 책만 사는 곳이 아닌 지역분들을 위한 문화공간도 되고, 법률사무소도 되는 등 다양한 기능을 하는 사랑방과 같은 공간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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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글로벌 위상이 변화하고 있다. 마치 오랜 기간 저평가된 블루칩처럼, 견실한 성장세는 위기 국면에서 새롭게 조명된다. 2022년에 한국보다 높은 회복 탄력성을 기대할 수 있는 나라는 독일 정도다.
일부 서구 매체가 동아시아인의 순응적 성향을 ‘전체주의’라고까지 폄하하기도 했지만, 그들은 타인에 대한 배려가 개인 자유의 근간이자 사회적 신뢰의 원천으로 작동했던 과거 서구 사회의 역사를 까맣게 잊은 듯하다.
한국에 있어 세련된 시민의 힘은 커다란 사회적 자본이다. 지금까지 한국 시민들은 그간 숱한 대내외적 위기 속에서 첨단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고 민주주의의 가치를 정립해 왔다.
그러나 결과에는 양면성이 있고, 지속가능성에는 한계가 분명하다. 실존의 불안과 욕망의 관성 어느 중간에 서 있는, 2040세대의 갑남을녀들은 직장을 다니면서 주식과 가상화폐 투자에 열을 올린다. 열심히 일해 커리어를 쌓은 사람들이 연사로 선 학교의 강단에는, 심드렁한 채 졸고 있는 10대 학생들이 부지기수다. 그렇게 뼈 빠지게 살아봤자, 코인이든 상속이든 ‘한 방’이 없으면 미래가 없음을 이미 알기 때문이다.
한결 더 긴 생애주기의 곡선을 그리며 오래도록 안정적인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사안과 현상을 긴 호흡에서 바라보는 ‘롱보우(long bow, 거대한 활) 전략’이 절실하다.
첫째, 제도적으로 세대 간 자산과 임금이 장기간의 생애주기 속에서 금융·세제·노동 개편을 통해 어떤 식으로 배분되어야 하는가(시간).
둘째, 전국의 다양한 공간과 조직으로 인재와 자원이 확산하기 위한 경제·문화적 인센티브(공간)는 무엇인가.
셋째, 교육기관이 수행해 온 사회적 기능과 학습 경험은 어떻게 변모(경험)되어야 하는가.
지속가능한 발전, 성장 또는 시민이 객체나 도구가 아닌 주인이 되는 공동체 건설을 위해서는 이 시간-공간-경험을 유기적으로 연계하는 통합적 접근이 필요하다. 그와 함께 산업화와 민주화의 불안한 동거 속에서 유지되어 온 과거 무한경쟁과 능력주의의 신화부터 해체돼야 한다. 긴 인생 속에서, 당신과 나는 어떻게 더불어 살 것인가? 더 빠르게 도는 가속기 속에서 나 혼자 살아남아 누릴 수 있다는 착각부터 멈춰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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