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울 님은 자신을 이루는 여러 이름과 경계 사이를 부지런히 오가며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한때는 ‘보통’의 범주에 들어가기 위해 애썼지만, 이제는 이방인으로 살아온 시간과 페미니스트로서의 질문, 돌봄의 고단함과 오래된 상처까지 자신의 언어로 다시 바라보고 써 내려가는 사람. 청어람의 무지개 북클럽에서 시작된 인연을 따라, 차이를 지우지 않고도 서로 연결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지금의 자신을 다시 껴안는 연습을 하는 한울 님과 오늘 이야기 나누었습니다.

유미(유): 안녕하세요 한울 님,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한울(한):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프랑스 남부 그르노블이라는 도시 근처에 거주하며, 한국어를 강의하고, 마사지하는 외국인 노동자, 2살 아이를 키우는 박한울이라고 합니다. 큰 울타리처럼 남을 보듬을 줄 아는 사람이 되라는 뜻에서 아버지가 손수 지어주신 이름인데요. 타인을 배려할 줄 아는 사람이 되라는 부모님의 바람과, 여성인지 남성인지 짐작할 수 없는 중성적인 느낌이 담긴 제 이름을 좋아합니다. 어렸을 적에는 보통인의 범주에 들어가기 위해 노력하던 때도 있었어요. 지금은 저만의 색깔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도전중입니다. 넘어지고 일어나는 경험을 좋아해요. 최근에는 명상, 호흡, 찬물입수와 아이키도로 저의 불안을 다스리는 연습을 하고 있어요. 과거의 상처에 대해 침묵하던 시절을 지나, 저만의 언어로 세상에 균열 내는 글쓰기를 좋아하고, 뒤늦게 자신을 사랑하는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유: 한울 님과 청어람이 처음 만난 것은 [무지개 북클럽] 김비읽기: 경계를 너머 천수를 누릴 우리를 통해서였는데요. 기독교 신앙을 갖지 않은 한울 님이 청어람에서 진행하는 독서모임을 참여하는 일이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경계를 넘을 용기를 내게 된 사연이 궁금합니다.
한: 여러 포인트가 있었어요. 근본적으로 모국어인 한국어를 사용하며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하고 싶은 갈망이 컸구요. 저와 가치관이 비슷한 사람들을 찾고 싶다는 욕망도 경계를 넘어서는 데에 한몫 했습니다. 페미니즘 관련 오픈 채팅방에서 무지개 북클럽 모임을 제안해주시던 유미님의 솔직함도 저에게 용기를 주었어요. 자신의 차이를 숨김없이 드러내는 소개 글을 보면서 ‘저런 사람과 함께하는 공간에서는 나를 내보여도 안전하겠다’라는 신뢰감이 있었구요.
담장을 넘어와 달라고. 기다릴 테니까, 어떤 속도든 기다릴 테니까, 어떤 방식으로든 이쪽을 향해 다가와달라고. 그런 몸짓을 해달라고. _ 김비, <혼란기쁨>, 55p.
이 부분을 인용하며 북클럽을 소개 해주셨어요. 김비 작가님의 ‘어떤 속도든, 기다릴 테니까, 이쪽으로, 다가와달라’는 문장이 한동안 머릿속에 남아있었어요. 우리의 차이도 청어람의 담장을 넘을 때에는 그 경계가 허물어질거 같았어요.

유: 어떻게든 모임 홍보를 해보겠다는 저의 바람이 한울 님께 닿았던 거군요(웃음) 저는 프랑스에서 거주하는 한울 님이 모임에 참여하기 위해 점심시간에 줌으로 들어온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힘들지 않느냐는 제 질문에 한국어가 고파서 이 정도는 할 수 있다고 말씀하시던 모습이 선합니다. 책모임을 하는 도서 중 한 권이 전자책으로 나와있지 않아서 모임에 참여하는 것이 어려우셨을텐데도 어렵사리 책을 구해 참여해주셨던 것도 기억에 남아요. ‘한울 님이 이 모임을, 이 시간을 아끼고 계시구나’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지난 모임이 한울 님에게 어떤 의미였나요?
한: 말씀해주신대로 저에게 굉장히 소중했던 모임이었어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내 이야기 하느라 바쁜 세상이에요. 저도 겉과 속이 다른 말을 하거나 남과 처지를 비교하느라 정신은 딴 데 가 있기 일수여서 상대방의 말을 온전히 듣는 시간이 많지 않아요. 잘 듣기 위해서는 그만큼 집중하고 에너지를 쏟아야 하잖아요.
청어람의 모임은 처음 만났음에도 서로의 성장을 응원하고 존중하고 배려하는 마음씨와 긍정적인 에너지가 가득한 모임이었어요. 내내 너무 따뜻하고 충만했어요. 그 감사함을 2차 모임 때도 듬뿍 느끼고 싶었어요. 조금 무리를 해서라도 책을 안 읽고는 참여할 수가 없겠더라구요.
당시 저는 페미니스트로 각성하던 시기인데요. 책을 읽으며 공부는 하지만 정작 젠더나 차이, 억압 또는 연대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어요. 사람들과의 연결이 간절했는데 청어람에서 타인에게 수용되는 경험을 하고 그리스도교에 대한 인식도 달라지고요. 페미니스트에 대한 정체성도 더욱 확고해졌어요. 이런 사람들과는 내가 원하는 사회를 만들어 갈 수 있겠다라는 희망이 생기더라구요.
운이 좋게도 이후로 독서모임 멤버 중 한 분이 글쓰기 모임을 제안해주셨고 그 모임을 통해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계속해서 글을 쓸 수 있었어요. 청어람에서의 만남이 저에게 또다른 인생의 문을 열어주었죠.
유: 한울 님이 이 세상에 내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일지 궁금해요.
한: 참 좋은 질문이에요. 생각하게 만드네요. 제 글들은 과거의 상처를 살펴보고 어루만지는 이야기들이에요. 그래서 언젠가 상처나 트라우마에 관한 책을 낼 수 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상처라는 말로 뭉뚱그렸지만, 그 안에는 가족 내의 폭력부터 경쟁과 비교, 정상성, 나의 몸, 성폭행, 페미니즘, 도망과 탈출, 사랑, 돌봄, 소통과 연결까지 굉장히 다양한 이야기가 있어요. 과거를 가감 없이 들여다보고, 그 경험이 지금의 나에게 어떻게 남아 있는지, 아직도 나를 아프게 한다면 왜 그런지 가만히 살펴보는 과정을 쓰고 있어요.
제가 인상 깊게 읽었던 책들도 작가들이 쉽게 꺼내기 어려운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고백한 책들이에요. 이랑 님의 <좋아서 하는 일에도 돈은 필요합니다>, 사월날씨의 <결혼고발>, 이하늬 님의 <나의 F코드 이야기> 같은 책들을 읽으며 주류 사회에서는 잘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삶의 이야기를 만났어요. 그런 자기고백을 통해 남들과 조금 다른 나도 지금 있는 그대로 괜찮다는 위로를 많이 받았고요. 제가 받은 따스함을 필요한 누군가에게도 전해주고 싶어요.
최근에 읽은 김영하 님의 <단 한 번의 삶>에서도 비슷한 위로를 받았어요. 작가님이 동시에 여러 책을 읽어서 한 권을 다 읽는 데 몇 년이 걸리기도 한다는 대목이 나오거든요. 저도 책 한 권을 끝내기 전에 다른 책에 손을 대고, 책들이 집안 곳곳에 널브러져 있으면 그런 제 자신이 싫었어요. 그런데 김영하 작가님도 병렬독서를 한다고 생각하면 이제는 슬며시 미소가 지어져요.
알게 모르게 머릿속에 박힌 고정관념 때문에 스스로를 타박하고 채찍질할 때가 있잖아요. 너무 사소하고 일상적이라 친구나 가족에게조차 말하지 못했던 고민들이 다른 사람의 경험을 들으며 조금씩 달라지는 과정이 저는 참 좋더라고요. 개인의 소소한 이야기를 통해 제가 위로받고 변화한 것처럼, 제 이야기도 누군가에게 가 닿아 마음의 짐을 조금 덜어주고 어깨를 따뜻하게 덮어줄 수 있다면 정말 기쁠 것 같아요. 생각만으로도 신이 나요.
유: 한울 님은 프랑스에 거주하며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경험을 글로 연재하고 계시기도 해요. 타국에서 이방인으로 존재하는 감각은 한울 님의 일상과 시선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나요?
한: 그들과 나는 다르지만, 인간으로서는 같다는 생각을 늘 염두에 두게 되었어요. 서로 다르다는 걸 알고 있으니 오히려 사람이나 공동체에 대한 기대도 낮아졌고요. 그래서 기대하지 않았던 곳에서 유대감이나 인류애를 발견하면 감동이 훨씬 커요.
한국에 있을 때는 어떻게든 남들과 비슷해지려고 안간힘을 썼어요. 차이를 나무라기도 했고요. 비슷한 우리끼리 있으니 이 공동체는 안전할 거라는 막연한 생각도 있었는데, 그 안에서 편 가르기와 폭력을 경험하기도 했죠. 같은 언어를 사용하고 비슷한 모습과 문화 속에서 자랐더라도 결국 우리는 모두 다른 개인이잖아요. 지금은 너무나 당연한 그 사실을, 오히려 멀리 떨어져 살면서 알게 된 것 같아요.
프랑스에서는 아직 동북아시아인이 소수라 눈에 띌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저도 말과 행동을 조심하며 살아왔어요. 한국인의 정체성을 흐리게 두고, 프랑스에 녹아 드려는 노력을 많이 했죠. 주위에서도 은근히 그것을 기대하기 했고요. 아이를 낳은 뒤에는 조금 다른 경험을 하고 있어요. 오히려 주변의 프랑스 분들이 아이에게 꼭 한국어로 이야기하고 한국 문화를 알려주라고 강조하거든요. 이제는 여러 사람 앞에서도 자연스럽게 한국어를 사용하게 됐어요. 잊고 있었던 나머지 반쪽의 정체성이 공적인 자리에서도 받아들여지고, 제 목소리를 숨기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숨통이 트여요.
문화 차이는 제 말하기 방식도 바꿨어요. 한국어는 말하지 않은 맥락을 상대가 어느 정도 헤아려야 하는 고맥락 언어이고, 불어나 영어 같은 언어는 말하는 사람이 의미를 좀 더 명확하게 전달해야 하는 저맥락 언어라는 설명을 접한 적이 있어요. 프랑스에서 오래 지내다 보니 저도 점점 원하는 것을 직접 말하는 방식에 익숙해졌어요. 오랜만에 한국에 가면 부모님이 제 말투가 너무 직설적이라 조금 겁난다고 하실 정도예요. 반대로 저는 속내를 돌려 말하는 사람을 이해하기 어려워졌고요. 사람이 환경과 문화에 따라 이렇게 달라질 수 있다는 걸 새삼 느껴요.
이방인이자 어느 한쪽에 완전히 속하지 않는 경계인이라는 감각은 제 일에도 도움이 돼요.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국어를 가르칠 때는 물론이고, 마사지나 아이키도 수업에서도 다른 사람이 쉽게 지나치는 몸의 작은 움직임이나 분위기, 언어로 표현되지 않은 아픔을 비교적 빨리 알아차리는 편이에요.
그런 경험들이 성인지 감수성이나 차별을 감지하는 감각, 전체주의를 경계하는 태도에도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해요. 어느 한쪽을 당연한 기준으로 여기지 않고, 차이를 계속 바라보는 감각을 잃지 않게 해준 것 같아요.
유: 페미니즘 연극제에서 <240 245(이사공 이사오)>라는 작품을 본 적이 있어요. 발이 240(mm)보다는 크고 245(mm)보다는 작아서 어느 신발도 딱 맞지 않은 사람의 이야기였는데, 그 애매함 속에서 어떻게 자신의 역사가 쓰여졌는지를 말하는 극이었거든요. 한울 님과 연극을 함께 보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드네요. 연극을 직접 써봐도 좋고요. 이번에도 청어람에서 기획해봐야겠어요 (웃음)
SNS를 통해 ‘100일 명상 챌린지’를 이어가고 계시죠. 처음에 명상 방석 위에 앉게 된 계기가 있나요? 그 일을 100일동안 지속하는 힘도 무엇인지 궁금해요.
한: 백 일을 지속하는 힘이라면, 조금 부끄럽지만 가정 내의 평화를 위해서, 폭력을 멀리하기 위해서라고 답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돌봄노동이 장기전으로 접어들고 몸이 지치니까 아이에게 다정한 눈길과 사랑을 보여주는 시간도 줄어들더라고요. 인내심이 바닥나면 험한 말이 나오기도 했고요. 그렇게 순간적으로 올라온 분노를 아이에게 쏟고 나면 제 자신이 한없이 미워졌어요.
아이를 위해서도, 저 자신을 위해서도 그런 상태를 방치할 수는 없었어요. 마음의 근육과 체력을 같이 키워야 했고요. 저에게 명상과 운동은 정말 생존을 위한 일이에요.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조금이라도 여유 있는 인간으로 살아가려면 이 두 가지는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육아라는 시련이 없었다면 제가 이렇게까지 내면 수련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꼈을까 싶기도 해요.
저에게 명상은 아이를 돌보며 가빠진 호흡과 생체리듬을 다시 제 속도로 되돌리는 시간이에요. 육아뿐 아니라 장을 보고, 운전하고, 일하고,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하루가 제 의도와 상관없이 쏜살같이 지나갈 때가 많았어요. 하루를 마치고 나면 ‘오늘 도대체 내가 뭘 한 거지?’ 하는 공허함이 들기도 했고요. 타인을 돌보느라 제 에너지가 다 고갈될 때까지 끌려다니기보다, 제 삶의 중심에 다시 ‘나’를 놓고 싶었어요. 명상은 그걸 위한 방법 중 하나이자, 머릿속을 비우는 시간이기도 하고요.
어릴 때 <해리 포터>를 읽으며 가장 갖고 싶었던 마법 물건이 펜시브였어요. 덤블도어가 머릿속 생각을 은빛 실처럼 꺼내 펜시브에 넣어두는 장면이 나오잖아요. 생각과 기억이 너무 많아 머릿속이 복잡할 때 그것들을 잠시 밖에 꺼내놓을 수 있다는 상상이 참 좋았어요. 우리는 그런 마법은 쓸 수 없지만, 저에게는 명상이 펜시브와 비슷한 역할을 하는 것 같아요. 고민 자체가 사라지는 건 아니지만, 조금 거리를 두고 바라볼 수 있게 해주거든요. 그래서 하루 끝에 조금은 가벼워진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 수 있었어요.
이렇게 제가 정말 좋아하는 수행인데도 주변 친구들은 명상을 실제로 어떻게 하는지 잘 모르더라고요. 그렇다고 제가 전문가처럼 명상의 효과를 설명할 수도 없고요. 그래서 글보다 영상으로 보여주면 ‘어, 이 정도라면 나도 해볼 수 있겠는데?’ 하는 마음을 줄 수 있겠다 싶었어요. 저에게도 명확한 목표가 있으면 동기부여가 되겠다 싶었고요. 그렇게 시작한 게 100일 명상 챌린지예요.
그런데 막상 해보니 생각보다 정말 쉽지 않았어요. 이 글을 쓰는 오늘이 95일 차인데요. 처음에는 백 일이 지나면 명상이 꽤 자연스러운 습관이 되어 있을 거라고 기대했어요. 그런데 지금도 매일 자리에 앉는 건 어렵더라고요. 처음에는 그 사실이 좀 실망스러웠는데, 이제는 명상이 쉽게 느껴져야 한다는 기대 자체를 내려놓으려고 해요. 그냥 그날 자리에 앉아 고요를 즐기는 순간에 집중하려고요.
가장 큰 난관은 하루 중 30~40분의 시간을 마련하는 일이었어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건 아침에 일어나 스트레칭을 하고, 휴대폰을 보기 전에 명상하는 거예요. 잠과 꿈을 한 번 정리하고, 전날 힘들었던 일이 오늘은 어떻게 느껴지는지, 지금 내 머릿속에는 무엇이 떠다니는지 살펴봐요. 그리고 그날의 제 상태에 따라 하루에 쓸 에너지를 조절하고요. 어떤 날은 새로운 일을 해보고, 어떤 날은 잡힌 약속을 줄이기도 해요. 저에게는 이런 시간이 저를 저로 남아 있게 해주는 중요한 시간이죠. 하지만 일상은 그렇게 이상적으로 흘러가지 않잖아요. 아이가 아프면 밤새 곁을 지켜야 하고, 아침은 온 가족이 바쁜 시간이니까요. 결국 명상할 시간을 만들려면 배우자와 가족의 도움이 꼭 필요했어요. 제 몫의 돌봄을 누군가 대신해줘야 할 때마다 미안한 마음도 컸고요. 모두의 평화와 해방을 위해 시작한 명상이 누군가에게 부담이 되는 건 아닐까 고민하기도 했어요.
그래도 제가 뭔가 시작하면 어떻게든 끝을 보는 성격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배우자가 끝까지 응원해줬어요. 가족의 도움과 응원이 없었다면 절대 혼자서는 백 일 가까이 오지 못했을 거예요.

유: 한울 님의 명상이 제가 기도를 하는 것과 무엇이 닮아있고, 또 무엇이 다를까 생각하게 돼요. 닮아있는 점만 놓고 말해보자면, 배우자의 응원이 필요하다는 것? (웃음) 백일 명상 중 가장 좋았던 순간이 궁금해요.
한: 우선 자리에 앉았을 때 제 앞에 보이던 풍경들이 많이 생각나요.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리고 계절이 흘러가는 모습이 참 좋았어요. 백 일 동안 눈앞의 나무가 조금씩 자라고, 발코니의 포도나무에는 포도가 송골송골 열렸어요. 연녹색이던 포도알이 여름 햇빛을 지나며 보랏빛으로 익어가고, 요즘은 나무가 마른 잎을 하나씩 떨구며 겨울을 준비하고 있고요. 명상 방석에 앉지 않았다면 그냥 지나쳤을 풍경들이죠.
85센티미터쯤 되는 작은 인간이 방문을 열고 들어와 제 다리를 베고 가만히 누워 있을 때도 잊지 못할 것 같아요. 명상하다가 아무런 조건 없이 제 성장을 응원해주셨던 선생님들의 얼굴과 목소리가 문득 떠오를 때도 좋고요. 그리고 수많은 생각을 하나씩 흘려보낸 뒤 마침내 제 심장 뛰는 소리와 들숨, 날숨만 크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어요. 아마 저는 그런 순간들을 만나기 위해 계속 명상을 하는 것 같아요.
유: 저는 SNS를 통해 명상을 하고 있는 한울 님만 보았는데, 한울 님의 답을 들으니 한울 님 자리에서 보이는 풍경을 본 것 같아 좋네요. 이방인, 페미니스트, 쓰는 사람, 명상하는 사람 등 한울 님을 이루는 결이 다채롭습니다. 지금의 박한울을 한 단어나 문장으로 표현해 본다면 어떻게 정의하고 싶으신가요?
한: 권정생 선생님의 동화 <강아지똥>을 아실까요? 담벼락 구석에 태어난 똥은 모두에게 손가락질 받아요. 지나가는 참새도 똥이어서 먹을 것도 없고 지저분하다 비난하죠. 그 말에 상처받아 울고있는 똥을 보고 또다른 누군가 비웃어요. 길바닥에 떨어진 흙덩이였어요. 사연을 들어보니 원래는 다른 곳에서 농작물들에게 풍족한 영양분을 주어 열매를 맺게 했는데 작년 여름 가뭄이 왔을 때 고추를 지켜주지 못하고 말라 죽게 만들죠. 그에 대한 벌로 자신이 길바닥에 버려졌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이내 땅주인이 돌아와 자신의 소중한 흙덩이를 거둬가고 강아지똥만 혼자 남게 되죠. 그렇게 혹독한 겨울을 지나 봄이 와요. 강아지똥 앞에 풀 한포기가 자라나게 돼요. 민들레 풀씨래요. 지금은 풀만 있지만 적당한 햇빛과 비와 영양분이 있으면 이내 아름다운 꽃을 피울 수 있다고 해요. 그리고 강아지똥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하죠. 자신이 누군가에게 쓸모가 있을 수도 있다는 사실에 강아지똥은 너무나 기뻐하며 민들레풀씨를 꼭 껴안아요. 사흘 내내 비가 내리고 강아지똥이 있던 자리에 노란색 민들레꽃을 피우며 이야기는 끝이 나요.
나의 존재가 누군가에게 쓸모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에 기뻐하는 강아지똥에서 저를 봅니다. 그리고 정작 강아지똥을 비난하던 참새도, 흙덩이도 사실은 알게 모르게 강아지똥의 도움이 필요한 존재들이었다는 것을요. 우리의 삶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내게 상처를 주고 또 내가 미워하는 존재들도 크고 작게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구나. 유약한 존재들에게 서로서로 느슨하게 도움 주고, 도움 받는 그런 사회 속에 있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요.
자신을 미워하고 혐오한 시간이 길었어요. 다른 사람의 비난의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어요. 강아지똥처럼 냄새나는 나는 이곳에 왜 태어났나, 왜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사랑받을 수 없을까 이런 질문들을 오랫동안 해왔어요. 지금은 민들레처럼 제 가치를 알아주는 존재들을 하나씩 만나면서 자기연민과 혐오의 굴레에서 벗어나고 있어요. 똥이 냄새가 나는건 그 속에 많은 영양분들과 미생물들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잖아요? 그리고 그 속성 덕분에 꽃을 도와줄 수 있었구요. 이 연결고리들을 알게 되면 같은 속성도 보고 해석하는 관점이 확연히 달라진다고 생각해요.
말은 이렇게 하지만 저는 아직도 저의 못난 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게 어려워요. 특히 처음 무언가를 배울 때 서투르고 어설픈 나의 모습이 너무나 못마땅하기도 해요. 잘하고 싶죠. 그렇지만 그 어설픔과 상처의 시간 덕분에 우리가 얻은 것들이 반짝반짝 빛날 수 있는거라고 스스로 위로해요. 노력 없이 쉽게, 우연히 얻어진 것들은 그 가치를 알아보기가 그만큼 어려울테구요. 쉽지 않지만 무언가를 배우고, 새로운 일에 부딪치고 도전하며 제 안의 가치들을 재발견하고 미운 모습들도 껴안아 보려 합니다.

유: 한울 님께 저의 응원도 더해드리고 싶네요. 한울 님이 한울 님과 하는 포옹이 따뜻하고 포근하기를 제가 믿는 신의 이름으로 기도하겠습니다. 청어람 메일링 '틈'을 통해 한울 님의 이야기를 만날 독자들에게, 이번 인터뷰를 통해 건네고 싶은 다정한 안부나 메시지는 무엇인가요?
한: 제가 사는 그르노블은 아침 저녁으로 찬바람이 느껴지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햇살에는 아직 여름의 기운이 남아있어요. 여름과 가을의 속성이 공존하는 이 계절을 사랑합니다. 여러분이 사는 곳의 가을은 어떤 모습인가요?
당신에게 궁금한 점이 많습니다. 오늘 하루는 어떠셨나요? 어떤 소소한 일들이 있었고 어떤 일들이 오늘 하루 중 당신을 가장 웃게 만들었나요? 매일 별다른 일 없이 지나가는 하루도 하나하나 들여다보면 그 모습이 제각각이에요. 그 속에서 느끼는 감정도 순간순간 다르고요. 그 순간들을 지나오고 견뎌온 우리를 아무말 없이 눈을 감고 또는 거울을 보고 두 팔 벌려 꼭 안아주고 싶습니다. 잘 견뎌왔다고, 너는 너만의 최선을 다 하고 있다고. 그러니 지금의 모습도 괜찮다고. 정말로 괜찮다고요. 비난과 평가의 화살은 잠시 내려두고 이 순간까지 이렇게 나 자신을 포기하지 않고 지금까지 살아있어주어 고맙다는 말 해드리고 싶습니다.
유: 마지막으로 한울 님의 삶의 여정에 영향을 준 세 가지 ‘소스 리스트’를 들려주세요. (*소스 리스트는 2021년 1월에 시작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재미공작소의 오프라인 문학 행사의 이름입니다. 소스 리스트에서 호스트 작가는 자신의 첫 시집 혹은 첫 소설집 탄생에 영향을 준 영감의 원천 열두 가지를 '소스 리스트'라는 이름으로 소개를 해요.)
전쟁 같은 맛
그레이스 M. 조 지음, 주해연 옮김, 글항아리 펴냄, 464쪽, 전자책 있음 [도서정보보기]
저는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들, 그리고 그 이야기가 역사와 맞닿아 있을 때 희열을 느낍니다. 올해 초에 페미니즘 독서 모임으로 우연히 만나게 된 책인데요. 조현병을 앓던 어머니 군자가 돌아가시면서 작가인 딸의 입장에서 바라본 엄마의 이야기를 차근차근 풀어놓아요. 전쟁으로 인한 굶주림, 기지촌, 미국 이민, 이방인으로서의 정착기 그리고 조현병까지. 해외 살이에서 느끼는 어려움에 공감도 많이 갔지만 각각의 위기 속에서 어떻게든 재료를 구해 김치를 해먹고, 숲을 활보하며 버섯을 채취하고, 끝내 블루베리 여사가 되어가는 생명력과 생활력에 감탄이 나오기도 했어요. 책을 펼치면 그리운 한국 냄새가 생생하게 콧속으로 전달되는 착각이 들만큼 너무나 재미있게 읽은 책이에요. 겨울 아침 딸의 등교길이 춥지 않도록 겨울 외투를 오븐에 넣어 바삭바삭하게 데피는 어머니의 온기와 정성이 느껴지는 사랑이 가득 담긴 책입니다.
사회학적 탐구를 회고록의 형식으로 결합하여 서술하고, 일대기적 흐름이 아니라 어머니의 죽음으로 시작하는 그 모든 서술 방식이 저에게는 충격 그 자체였어요. 작가의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면 어느새 멀게만 느껴지던 조현병이 조금은 이해 가능한 증상으로 다가와 있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일본군 위안부에 대해서는 사회적으로 충분히 얘기를 하고 있지만 그와 연결선상에 있는 기지촌 여성들의 성매매는 왜 이토록 쉬쉬했는가라는 질문이 저절로 떠올라요. ‘자발적‘ 성매매이기에 윤리적으로 배제되었다지만 그 속에는 당시 성매매를 할 수 밖에 없었던 사회적, 역사적, 정치적 배경들도 이 책을 읽으며 알 수 있어요. 관심이 있는 분들에게는 같은 저자의 <유령연구>, 동녘도 강력 추천합니다.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었던 전쟁 직후 우리의 현대사를 적나라하게 알 수 있어 정말 흥미 진진합니다. 우리의 이야기임에도 정작 우리는 잘 몰랐던 이야기를 발굴할 수 있어요. 독서 모임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문장을 읊는 대목에서 읽는 이, 듣는 이 모두 눈물을 흘리며 서로의 감상을 공유했던 순간이 아직도 생생해요. 옆에 휴지 준비하시고 읽으시길 추천이요!
자기만의 방
버지니아 울프 지음, 박혜원 옮김, 더스토리 펴냄, 200쪽, 전자책 있음 [도서정보보기]
너무나 유명해서 소스 리스트에 올려도 될까 주저되었지만, 저에게는 아직도 현재형인 투쟁기입니다. 나만의 방과 경제적 독립을 쟁취하는 게 제 삶에서 가능할까 싶은 의심도 들어요. 오늘 현실화하지 못하더라도 가까운 어느 시일에는 저 두 대상을 성취할 수 있기를 감히 끊임없이 꿈꿔보려 합니다.
이 책을 마주한 날이 아직도 기억나요. 서점에 다양한 고전들이 미니북의 형태로 매대에 놓여있었어요. 가격도 저렴했고 무엇보다 한 손에 쏙 들어오는 크기가 매력적이었어요. 제목은 많이 들어봤지만 정작 한 번도 읽어본 적 없는 책을 들고 바닥에 누웠죠. 무엇에 홀린듯이 읽게 됐고 거의 모든 페이지마다 밑줄을 그으며 읽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당시 8년간 동거(라고 쓰고 가스라이팅이라고 읽는다)하던 애인과 헤어지고 인생 처음으로 저만의 자취방을 갖게 된 시기였기도 해요. 글을 쓰고 독립된 삶을 위해서 500파운드의 돈과 방이 필요하고, 진정한 자아 실현을 위해서는 경제적 독립이 필수요소라는 1929년 그녀의 주장은 오늘날에도 경종을 울립니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이렇게 뻔할 수도 있는 내용을 전달하는 서술방식이 저에게는 가장 놀라웠어요. 국문과를 졸업하고 입시강사로 있던 세월이 8년. 문학과 함께 보낸 세월이 적지 않음에도 이렇게 말줄임표가 많고 한국작가 이상 외에 의식의 흐름기법을 이렇게 공론적인 글쓰기에 적용한 사례가 저에게는 처음이었어요. 무엇보다 이런 글쓰기가 세계적으로 인정받아 고전이라는 반열에 들어가 있다는게 너무 인상적이었습니다. 저도 읽은지 오래돼 덕분에 다시 한 번 책을 들춰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작별하지 않는다
한강 지음, 문학동네 펴냄, 332쪽, 전자책 있음 [도서정보보기]
앞에서 말했듯 개인의 서사가 역사와 맞닿아 있을 때 저는 굉장한 희열을 느껴요. 그리고 그 목소리가 들릴듯 들리지 않는, 그래서 귀를 가까이 데고 집중해야 겨우 들릴락말락하는 그런 희미한 목소리로 자신의 이야기를 계속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좋아하고 응원해요. 그들의 존재감이 주는 안온함과 위로가 분명하기 때문인데요. 제 설명과 달리 작가 한강님은 민망할 정도로 너무 유명해서 굳이 이 분을 또 언급할 필요가 있을까 싶어도, 그래도 분명 이 인터뷰를 읽는 분들 중에 아직까지도 책을 안 읽어보신 분들이 있을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되어 언급해요. 이 기회에 아름다운 한국어의 세계에 푹 빠져보길 일독 권해 보아요.
틈 7호였던 <01년생이 생각하는 “교회에 청년이 사라진 이유”>에 댓글을 남겨주셨어요.
- 💌 전 이런 생각을 합니다. 교회가 현실과 너무 다르기 때문입니다. 청년들은 살기가 힘들고 빠쁜데 교회가 영적으로 쉼을 주지 않고 언제나 죄를 강조하기 때문입나다. 차라리 죄보다는 평화 용서 화평을 강조해야지 맨날 넌 죄인이다. 강조하고 손가락질 하면 되지 않습니다. 👉 쉼을 줄 수 있는 교회가 많아지면 좋겠네요.
선선한 바람이 부는 날입니다. 한울 님의 인터뷰처럼 마음의 담장을 넘고, 나를 껴안는 연습을 해보는 가을을 보내시면 어떨까요? 다음 호에도 우리의 눈을 좀더 선명하게 할 책 추천과 함께 돌아오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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